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강화로 서울 외곽·경기 지역 부동산은 눈치 보기 중
지난해 시흥 배곧신도시 아파트를 매수한 최 모(36) 씨는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이자 부담은 느는 데 집값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오피스텔에서 월세로 신혼 생활을 하고 있는 최 씨는 아이가 태어나면 이사를 갈 생각에 신도시로 눈을 돌렸다. 배곧을 택한 것은 수도권 광역 급행철도(GTX) 호재와 신축 아파트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최 씨 부부는 주택 담보 대출과 신용 대출 등 ‘영끌’과 전세를 끼고 지난해 집을 마련했다. 2년 뒤 아이가 생기면 이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2%대 후반이던 대출 금리가 4%대에 가깝게 오르자 월 이자만 114만원을 내게 됐다. 오피스텔 월세까지 합치면 한 달에 집값으로만 214만원을 지출하는 셈이다. 가계 대출 평균 금리 8년 만에 4% 넘어서 최 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대출 금리가 급등하면서 ‘영끌’족도 무주택자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4월 은행권의 가계 대출 평균 금리는 8년 만에 연 4%를 넘어섰다. 한국은행이 15년 만에 기준금리를 두 달 연속 올린 데 이어 하반기에도 추가 인상 가능성이 있어 이자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대출 금리가 뛰면서 전세 대출을 받은 전세 세입자 역시 빚 상환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금리가 높아지고 대출 규제가 심해지면서 부동산 시장도 ‘파티는 끝났다’는 분위기다. 강남·용산·마포·목동·여의도 등 서울 주요 지역의 열기는 여전히 뜨겁지만 서울 외곽 지역에서는 거래 절벽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새로운 공급은 가뭄인데 매물은 넘쳐난다. 호가가 오르면서 매물은 쌓이는데 거래는 말라가고 있다. 부동산 공급자와 수요자, 매도자와 매수자 사이 눈치 게임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원자재 값 상승과 분양가 상한제로 공급이 줄었는데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로 수요 역시 위축됐다”며 “당분간은 시장 분위기가 다운된 상태에서 관망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 지난해 4분의 1 수준 지난해 중산층과 2030의 수요가 높았던 인천과 경기도 시흥·의왕·영통·광명뿐만 아니라 서울 외곽 지역인 노원·도봉·강북의 거래량이 줄어들고 있다. 매수 심리가 위축되면서 집값도 하락 중이다. GTX 호재를 타고 상승했던 신도시를 중심으로 집값이 수억원씩 떨어지는 모습도 보인다. 한국부동산원의 5월 4주(23일 기준)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따르면 경기 지역 아파트 가격은 마이너스 0.02%에서 마이너스 0.03%로 내림 폭이 확대됐다. 특히 시흥시(-0.18%), 화성시(-0.15%), 의왕시(-0.11%), 용인 수지구(-0.09%) 등 매물 적체가 지속된 곳의 하락 폭이 컸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경기 시흥시 배곧동 배곧C2호반써밋플레이스(84.9906㎡)는 2021년 9월 10억원(29층)에 거래되며 직전 신고가를 기록하고 올해 5월 7억8000만원(11층)으로 2억원 넘게 떨어졌다. 비슷한 층수인 9층의 지난해 9월 거래 가격인 9억3000만원과 비교해도 1억5000만원 떨어졌다.
지난해 집값 상승률 1위를 기록한 의왕도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경기 의왕시 포일동 ‘인덕원 푸르지오엘센트로’ 84㎡ 17층 매물은 지난 4월 12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6월 실거래가는 16억3000만원(25층)이었다. 지난해 직전 신고가보다 4억원 정도 떨어졌다.
서울 강북권 역시 인천이나 경기도 외곽처럼 눈치 보기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동향에 따르면 5월 23일 기준 서울 아파트 값은 용산을 제외한 강북 대부분의 지역이 하락했다. 특히 성북구의 올해 들어 누적 하락률은 0.71%까지 커졌고 서대문(0.51%), 종로(0.43%), 은평(0.40%), 도봉(0.39%), 강북(0.37%), 노원(0.37%) 등도 하락세다.
거래량도 감소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서울의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1년 전에 비해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3336건으로 집계됐다. 1년 전인 지난해 1분기 1만3373건보다 75% 정도 줄어든 규모다.
특히 지난 5월에는 거래량이 704건에 불과했다. 지난 2월에도 거래량이 814건에 그치며 관련 통계를 집계한 지 16년 만에 처음으로 1000건 미만으로 내려간 바 있다. 이처럼 서울에서 아파트 매매 거래가 급감한 것은 대출 규제에 금리 인상이 더해지면서 생긴 일이다. 금융위원회가 7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3단계를 예정대로 도입하기로 한 만큼 수요자들의 자금 마련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1월부터 총대출액 2억원을 초과하는 대출자에게 개인별 DSR 규제가 1금융권은 40%, 제2금융권은 50%로 적용되고 있는데 오는 7월부터는 총대출액 1억원 초과 대출자로 대상이 확대될 예정이다.
거래는 줄고 있는데 매물은 1년 10개월 만에 가장 많이 쏟아졌다. 5월 29일 아파트실거래가(아실)에 따르면 온라인에 등록된 서울 아파트 매물 수는 6만1866채로 2020년 8월 2일(6만2606채) 이후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노원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매물이 늘고는 있는데 정부에서 아직 세세하고 뚜렷한 부동산 대책이 나온 것은 아니어서 거래량이 주춤하고 있다”며 “대출이 막히면서 무주택자는 쉽게 매수에 나서기 어렵고 다주택자 양도세 때문에 1주택자의 매도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거래량 감소가 당장 주택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경기 외곽 지역을 제외한 서울 주요 지역의 집값은 하락세를 그리기 힘들 것이란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지방 선거 이후 재건축 규제 완화, 보유세 경감 등 새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한 기대감에 따라 핵심 지역과 단지에 수요가 몰리는 이른바 ‘똘똘한 한 채’ 현상이 더욱 강화되면서 지역 간 양극화는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분양가 상한제 이후 집 거래량은 꾸준히 줄어들어 왔고 거래량이 감소하는 와중에도 신고가는 계속 나오고 있다”며 “금리와 취득세 등 비용이 상승하면서 거래량 자체는 감소했지만 강남구·서초구·용산구 등 서울 주요 지역의 집값은 상승세를 이어 가면서 양극화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아파트 10개 중 6개는 집값이 올랐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서울 아파트 실거래 현황’에 따르면 4월 아파트 거래 중 상승 거래가 차지하는 비율은 60.5%로 집계됐다. 전체 아파트 거래 중 최근 3개월 이내에 직전 거래가 있어 비교할 수 있는 것들을 분석한 결과다. 총 418건 중 253건이 상승 거래됐다.
이는 지난해 10월(64.9%) 이후 최고치다. 상승 거래 비율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30~40%대에 머물렀다. 반대로 하락 거래 비율은 33%로 14.2%포인트 급락했다. 이는 지난해 10월(30.1%) 이후 최저치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3월까지 하락 거래 비율이 상승 거래 비율을 앞질렀지만 5개월 만에 역전된 것이다.
지난 5월에도 ‘대장 아파트’들의 몸값 고공 행진은 이어졌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5월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면적 222.76㎡는 80억원(22층)에 거래됐다. 직전 최고가는 4월 7일 76억원(26층)이었는데 2주 만에 4억원 오른 가격에 계약이 체결됐다. ‘반포자이’ 전용 면적 216.49㎡도 같은 날 69억원(27층)에 팔리며 지난해 12월 59억5000만원(17층)보다 9억5000만원 상승했다.
임병철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이후 이들이 가지고 있던 매물이 급매를 통해 시장에 나오고 있지만 대출을 활용해 주택을 매수하려는 수요자들이 관망으로 돌아서면서 외곽 지역의 거래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대선 이후 약속했던 공약들이 지방 선거 이후 얼마나 속도감 있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시장 상황이 결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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