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때 손잡은 어제의 동지, 향후 대선 가도에선 경쟁자로 만날 가능성
6·1 지방선거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대선 주자들의 성적표였다. 여야 주요 주자들은 지방선거 또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차기 대선을 향한 1차 관문인 셈이다. 성적표를 보면 국민의힘의 승리다. 서울시장 최초로 4선이 된 오세훈 시장, 대구시장에 당선된 홍준표 당선인, 성남 분당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안철수 의원 등이다. 내각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박진 외교부 장관이 있다. 당에선 김태호 의원, 원외의 나경원 전 의원도 있다. 국민의힘에선 대선 후보 풍년을 맞았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등장 이전 대선 주자 가뭄을 겪던 때와는 딴판이다.대선 후보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언제 어느 후보가 불미스러운 일로 낙마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경선 흥행 측면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국민의힘 주자들은 당장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당 소속 현직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여밖에 안 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집권 초반부터 대선과 관련한 행보를 보이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지금은 각자 맡은 일에 성과를 내면서 내실을 쌓는 시기다. 가장 유리한 고지에 오른 주자는 오세훈 시장이다. 그는 지방선거에서 당내 서울 구청장 후보 선거도 도왔다. 국민의힘은 서울 25개 구청장 중 17곳에서 이겼다. 오 시장은 자연스레 당내 기반을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더욱이 오 시장은 25개 구와 424개 동 모두에서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했다.
오세훈·안철수 등 대선 주자 풍년 맞은 국민의힘
다만 그가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역시 정권 초반이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시장이 대권 못지않게 훨씬 더 중요한 자리”라고 했다. 그의 한 측근은 “지난 1년간 계획했지만 못한 일들을 추진해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할 때”라고 했다. 서울 시정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대선 가도에서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의원도 분당갑에서 25.01%포인트 큰 차이로 당선되면서 대선의 디딤돌을 마련했다. 단일화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 대선 승리에도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안 의원과 단일화가 없었다면 윤 대통령이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겨뤄 0.73%포인트의 신승을 거두기 힘들었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맡아 윤석열 정권의 안정적 출범에도 기여했다.
안 의원은 당권 도전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다. 국민의힘 내엔 자신의 세력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다. 대선 경선을 감안하면 당세를 넓히는 게 급선무다. 그러기 위해선 2년 뒤 총선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표에 오르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만만치 않다. 정진석 전 국회부의장, 김기현 전 원내대표, 나경원 전 의원 등 국민의힘의 쟁쟁한 터줏대감들이 출마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표 경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지역구 의원과 당협위원장 등 지원군을 확보하는 게 필수인데 안 의원은 아무래도 이들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구름이 낀 가운데 희비가 갈린다.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재명 의원은 자신은 이겼으나 당의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론에 휩싸여 있다. 그의 계양을 출마는 애초부터 자신을 둘러싼 수사를 의식한 ‘방탄용’이라는 비판이 많았던 터다. 대선 패배자가 승리한 후보가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전에 정치판에 복귀하는 것 자체가 상식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의원이 선거 막판 느닷없이 들고나온 김포공항 이전 카드가 당 후보들의 선거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당장 친문재인계 의원들에게 거센 공격을 받으면서 대표 선출→당 장악→차기 대선 재도전 플랜에 차질이 생겼다.
민주당 내에선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만이 경기지사에 신승을 거두며 차기 대선 주자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은혜 국민의힘 후보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단숨에 체급을 높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 당선인이 부총리를 그만둘 때만 해도 대선판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김 당선인은 부총리직에서 내려온 뒤 비영리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을 이끈 이후 기자와 단독으로 여러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그는 “내가 하는 말과 일, 활동 하나하나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니 조심스럽다”면서 정치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2020년 7월 김종인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당 밖에 꿈틀꿈틀거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고 당 안팎에선 김 당선인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을 때도 그는 기자에게 “금시초문이고 어리둥절하다”고 말했다. 그러던 그가 대선에 의욕을 보인 것은 지난해 6월이다. 그는 경북 안동 지역 상공인과 농민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를 마치고 기자와 단독으로 만났을 때 다산 정약용 선생의 ‘경세유표’ 서문을 인용해 “병든 나라를 고쳐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가·격차·불신 과잉을 해결하기 위해 승자 독식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진영 금기 깨기를 주창하며 기존 거대 양당 체제를 갈아엎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대선 출마 선언이었다.
이재명-김동연, 정치 개혁 공감 불구 정책 큰 차이
그런 그가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의원(당시 대선 후보)과 손잡은 것은 의외였다. 그는 당시 기자와의 통화에서 “의미있는 가치를 추구했지만 지지율이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거대 양당을 깨겠다고 했지만 현실 정치의 높은 벽을 실감한 것이다. 김동연·이재명 단일화 명분은 정치 개혁이었다. 김 당선인이 분권형 대통령제와 책임총리제를 담은 개헌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담은 선거제 개편 △주택과 교육 정책 결정을 위해 여야·진영을 뛰어넘는 독립적 의사 결정 체계 구성 △공통공약추진위원회 설치 등을 제안했고 이 의원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 개혁을 위한 일종의 공유”라고 했다. 대선 뒤 지방선거에서 이 의원은 김 당선인이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로 확정되는 데 뒤에서 지원했다.
관건은 향후 두 사람의 관계다. 두 사람 모두 차기 대선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어제의 동지가 내일의 적으로 마주칠 수 있다. 정책을 놓고도 부딪쳤다. 과거 김 당선인은 이 의원을 향해 “말은 현란하지만 정책은 빈껍데기”라며 “백 미러 정치를 하고 있다”고 거세게 비판한 적이 있다. 또 이 의원의 기본소득 공약에 대해 “기본소득의 기본 철학도 모르고 있다”며 “기본소득은 원래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발달하면서 장기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시대에 대비한 것인데, 이걸 보편적 복지나 재난지원금 차원에서 얘기하고 있다”고 날을 세운 적도 있다. 이 후보의 국채 발행을 통한 전국민재난지원금 주장에 대해서도 “무식한 얘기”라고 공격한 바 있고 부동산 대책도 시각차가 뚜렷하다.
그런 만큼 김 당선인이 차기 대선을 위해 이 의원은 극복해야 할 벽이고 넘어야 할 산이다. 김 당선인이 지방선거에서 두각을 보인 것은 인물 경쟁력 때문이었다. 민주당의 강경 이미지를 탈색하고 중도층에게 지지를 확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각된 것이다. 당장은 민주당 내에선 세력이 없다는 것은 약점이다. 전임인 이 의원의 기본소득을 비롯한 포퓰리즘성 정책과 얼마나 선을 그을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김 당선인은 이 의원을 딛고 넘어설 수 있을까.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