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트 쿠튀르부터 캐주얼, 액세서리, 화장품, 향수까지 '베르사체 제국' 건설

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베르사체 ①

지아니 베르사체는 1946년 12월 이탈리아 레조디컬러브리아에서 재봉사였던 어머니와 세일즈맨인 아버지 사이에서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누나는 열두 살에 사망했고 형 산토는 훗날 베르사체 브랜드를 만들고 경영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했다. 여동생 도나텔라는 지아니가 ‘완벽한 여성’이라고 칭송할 정도로 섹시했다. 지아니는 파티 걸인 여동생을 뮤즈(muse)로 삼아 디자인 작업을 했다고 한다.

지아니 베르사체가 죽은 뒤 동생 도나텔라는 지금까지 브랜드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다. 재봉사였던 어머니는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고 있던 크리스찬 디올의 드레스를 복제해 판매했다. 지아니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드레스를 만들고 나면 남은 천들로 인형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패션 디자인과 가까워졌다.
베르사체의 메두사와 그리스 격자 무늬. 사진출처=인스타그램 versace
베르사체의 메두사와 그리스 격자 무늬. 사진출처=인스타그램 versace
모델 나오미 킴벨(왼쪽)과  지아니 베르사체. 사진출처=나오미  인스타그램
모델 나오미 킴벨(왼쪽)과 지아니 베르사체. 사진출처=나오미 인스타그램
어머니 아틀리에에서 견습생으로 시작

일설에 따르면 지아니가 아홉 살 때 첫 드레스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지아니의 어린 시절의 경험들은 그가 훗날 뛰어난 재단 실력을 발휘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지아니는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어머니의 아틀리에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는 게 더 적성이 맞았다. 어머니가 그의 패션 첫 스승인 셈이다.

작업실에서는 원단과 장식에 쓰이는 부자재를 만지면서 재단 기법을 배웠다. 그는 매장에서 손님들과 상담하면서 판매에 대한 노하우를 하나하나 쌓아 나갔다. 그가 26세 되던 1972년은 하나의 분기점이 됐다.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패션의 본고장인 밀라노로 이주했고 플로렌틴 플라워즈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이어 제니·컴플리체·컬러강과 같은 이탈리아 유명 브랜드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는 중에도 지아니는 자신의 브랜드를 갖고 싶어 했다. 경영 파트너로 그의 형 산토를 생각했다. 1976년 경영을 전공한 형 산토 베르사체가 밀라노로 이주하면서 그의 꿈이 실현됐다.

형의 도움으로 1978년 밀라노의 대표적 쇼핑가인 비아 델라 스피가에 쇼룸을 열었다. 전설적인 미국의 패션 사진작가로 불린 리샤르 아브동과도 함께 일하게 됐다. 그해 말 팔라조 델라 페르마넨테 아트 뮤지엄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여성복 패션쇼를 진행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지아니 베스사체의 여동생 도나텔라 베르사체. 사진출처=인스타그램 versace
지아니 베스사체의 여동생 도나텔라 베르사체. 사진출처=인스타그램 versace
첫 패션쇼에서는 몸매의 곡선을 살리는 관능적이고 섹시하면서도 모던한 의상들을 선보였다. 그는 하루아침에 패션계의 스타로 부상했다. 이듬해인 1979년 남성복 컬렉션을 시작한 뒤 성공 가도를 달렸다. 세계 곳곳에 부티크를 설립하고 오트 쿠튀르 라인인 ‘아틀리에’, 대중을 위한 비교적 저렴한 라인인 ‘이스탄테’, 남성복 라인인 ‘브이 투 바이 베르사체’, 마담 사이즈 브랜드 ‘베르사틸’, 캐릭터 캐주얼 ‘베르수스’, 진 브랜드 ‘베르사체 진’ 브랜드를 잇달아 선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액세서리, 화장품, 발레 의상, 가죽, 모피, 향수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했고 라이선스 사업을 확장해 베르사체 제국을 하나하나 건설했다.

지아니는 “사람들은 섹시함에 대해 수치스럽게 생각하거나 죄책감을 느낀다”며 “하지만 섹시함과 관능은 인간의 천성이며 나는 천성을 거스르는 것들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의 디자인 이미지는 섹시하고 육감적인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있었다.

지아니는 원단과 실루엣의 조화를 가장 완벽하게 연출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하고 화려한 컬러들을 트렌드와 관계없이 사용했다. 사업가 기질이 뛰어난 지아니는 할리우드 톱스타나 슈퍼모델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쌓으며 눈부시게 성장하며 베르사체 신화를 만들어 나갔다.

베르사체 패션에 나타난 여성성의 특징은 재단에서 흘러내리는 듯한 드레이프를 활용한 것, 비치는 시스루 소재의 사용, 반짝이는 시퀸 소재의 사용, 다양한 수공예적 장식 등을 꼽을 수 있다. 베르사체에 나타난 관능성의 특징으로는 여성의 성적 부위 노출, 칼로 자른 듯한 슬릿 디테일의 활용을 들 수 있다.

지아니는 “역사에 대한 지식은 사물을 그대로 볼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그의 디자인은 또한 예술사와 역사주의 개념이 의상에 많이 반영됐다. 지아니의 역사주의 개념의 의상은 단순히 한 시대의 스타일이나 패턴을 도용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디자인 뿌리는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
베르사체의 바로코 프린트. 사진출처=인스타그램 versace
베르사체의 바로코 프린트. 사진출처=인스타그램 versace
여러 시대의 서로 다른 예술 양식과 패턴들을 자유자재로 혼용해 새로운 포스트모더니즘 패션의 형태로 만들었다. 그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주의와 르네상스 시대를 섞어 새로운 문양을 만들기도 했다. 바로크 시대와 미래주의를 혼합해 새롭고 대담하고 기하학적인 문양을 만들어 실크 원단에 아름답게 프린트해 이브닝드레스, 원피스, 스커트 등 각종 의류에 사용했다.

지아니는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그가 수집한 고대 그리스·로마 예술품은 미술관을 하나 차릴 정도로 많았다. 초기 베르사체의 로고는 설립자인 지아니의 이름만 사용했다. 이후 1993년 디자인 하우스의 로고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에서 아테네 여신의 저주를 받은 괴물인 메두사(여왕이란 어원을 가지고 있고 메두사의 얼굴은 너무나 무시무시해 사람들이 그 얼굴을 보기만 해도 돌로 굳어버린다는 전설이 있는)와 그리스의 격자무늬 조합으로 만들었다.

이 로고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디자인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아니는 고대 그리스의 고유한 전통이 있는 크레타 문명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크레타 시대 도자기들의 문양을 사용하기도 했고 고대의 동전을 금속 단추나 브로치, 핀과 같은 장식으로 사용해 의상에 포인트를 주기도 했다. 이 밖에 비잔틴 시대의 십자가인 렐리쿼리나 모자이크 문양은 가죽 소재와 인조 보석으로 사용해 화려함의 극치를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료 : ‘베르사체 패션에 나타난 섹슈얼리티의 미적 특성. 도나텔라 베르사체 작품을 중심으로(이원미, 숙명여대 학위 논문)’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