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8년 확정…“강력한 처벌 요구하는 사회적 공감대 고려”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마포구 인근에서 경찰이 음주단속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마포구 인근에서 경찰이 음주단속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8년 9월 부산 해운대구에서 휴가를 나온 한 군인이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끝내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이름은 ‘윤창호’였다. 바로 우리가 아는 윤창호법의 계기가 된 사건이다.

한 청년의 사망은 사회에 큰 충격을 줬고 국회는 사건 발생 3개월 만에 음주 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윤창호법’을 통과시켰다.

정확히는 인명 피해를 낸 운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개정안’과 음주 운전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이다. 그중 도로교통법 제148조 2의 1항은 음주 운전이나 음주 측정 거부 범죄를 2회 이상 저지른 사람을 가중 처벌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가중 처벌안은 정확한 기간에 대한 기준이 없어 논란이 됐다. 예를 들어 10년 동안 음주 운전에 2번 적발된 사람도 해당 조항에 의해 가중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해당 조항은 헌법재판소에 가게 됐다. 헌재는 해당 조항이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이에 대법원은 도로교통법 제148조 2의 1항으로 기소된 모든 사건을 파기 환송하기에 이른다.

윤창호법 위헌 결정에 따라 일각에서는 음주 운전에 대한 경각심마저 잊을까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특히 대법원에서 잇달아 음주 운전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 파기 환송 결정을 내리며 이 같은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후 판례를 보면 윤창호법의 가중 처벌 조항은 위헌이 됐을지 몰라도 음주 운전 사고에 대한 경각심과 처벌 강화라는 취지는 여전히 살아남을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 이례적으로 구형보다 높게 판결

대표적으로 윤창호법 위헌에도 원심과 같은 징역 8년형을 선고받은 ‘대만 유학생 사망’ 음주 운전자의 판결을 들 수 있다.

50대 남성 김 모 씨는 2020년 11월 6일 오후 11시 40분께 서울 강남구에서 제한 속도를 초과해 차를 몰다가 보행자 신호에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던 20대 대만인 유학생 쩡이린 씨를 치어 숨지게 했다. 당시 김 씨는 혈중 알코올 농도 0.079%로 취한 상태였고 제한 속도가 시속 50km인 도로에서 시속 80.4km로 차를 몰았던 데다 정지 신호도 무시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1심에서 징역 6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그보다 더 높은 징역 8년형을 선고했다. 김 씨가 2012년과 2017년 음주 운전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아 도로교통법 제148조 2의 1항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1심 재판에서 “사고 당시 왼쪽 눈에 착용한 렌즈가 순간적으로 옆으로 돌아갔으며 오른쪽 눈은 각막 이식 수술을 받아 렌즈를 착용하지 못한 상태였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재판부는 오히려 “눈 건강이나 시력이 좋지 못하다면 운전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도 술까지 마시고 운전해 비난 가능성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해당 판결은 2심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심 판결 이후 윤창호법의 가중 처벌 조항이 과잉 처벌이라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관들은 해당 조항이 “첫 번째 음주 운전과 가중 처벌이 되는 두 번째 음주 운전 사이에 시간적 제한이 없다”며 “과거의 위반 행위가 형의 선고나 유죄의 확정 판결을 받은 전과일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역시 이에 따라 2021년 말 김 씨의 판결을 파기했다. 해당 조항이 위헌이 됐으니 공소장을 변경해야 한다는 취지의 파기 환송이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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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운전 치사’…남은 윤창호법으로 처벌 가능

파기 환송으로 다시 열린 2심에서 검찰은 위헌 결정이 나온 도로교통법상 음주 운전 관련 가중처벌법 대신 일반 처벌 조항을 적용하는 취지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이 때문에 형량이 파기 환송 전보다 다소 감경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지만 재판부는 파기 환송 전 1·2심과 같은 징역 8년을 선고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음주 운전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침해할 위험이 매우 큰 범죄”라며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을 우선해서 고려했다”고 밝혔다.

또 “이 사건은 공소장 변경 이전에 비해 위험 운전 치사로 인한 부분이 양형에 결정적이라는 점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윤창호법으로 불리는 특가법 개정안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특가법 개정안에 따르면 음주 운전으로 인한 사망 사고에는 최고 무기 징역부터 최저 3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022년 6월 9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 운전 치사,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 씨의 재상고심에서 원심의 징역 8년형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파기환송심에서 원심 판결보다 중한 형을 선고할 수 없을 뿐이지 동일한 형은 선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돋보기]

위헌 선고에 급히 ‘보완 입법’ 나선 국회

2022년 5월 26일 헌재는 ‘윤창호법’ 두 번째 위헌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11월에는 ‘음주 운전 금지 규정을 2회 이상 위반한 사람’에게 한정해 위헌 결정이 났다면 이번에는 음주 운전과 음주 측정 거부를 혼합해 두 차례 이상 하거나 음주 측정 거부를 두 차례 이상 한 운전자에 대해서도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도로교통법 제148조 2의 1항은 그 효력을 완전히 잃었다. 다만 음주 운전 사망·상해 사고 시 처벌을 강화한 특가법이나 운전면허 정지·취소의 기준 수치를 높인 도로교통법은 그대로 남았다. 하지만 ‘음주 운전을 하더라도 사고만 안 내면 된다’는 식의 의식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보완 입법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윤창호 씨의 유족 측은 “헌재가 가중 처벌과 관련해 책임과 형벌 간 비례 원칙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것인데 이 부분은 보완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음주 운전의 재범률은 매우 높은 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적발된 상습 음주 운전자(2회 이상 적발)의 74%가 10년 이내 재범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5년 이내의 상습 음주 운전 재범률도 45%에 달했다. 윤창호법 위헌으로 음주 운전 가중 처벌자의 항소·상고도 이어지고 있다.

국회는 부랴부랴 보완 입법에 나서고 있다.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는 국민의힘 하태경, 더불어민주당 양기대·윤준병·김회재 의원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하 의원은 ‘벌금형 이상이 확정된 날로부터 10년 이내’, 양 의원은 ‘벌금형 이상을 선고받은 사람의 위반 날로부터 10년 이내’라는 조건을 붙여 가중 처벌하겠다는 내용을 발의했다.

윤 의원은 재범 기간을 5년 이내, 5년 초과 10년 이내로 나누고 징역·벌금과 가중 처벌 비중에 차이를 뒀다. 김 의원은 재범 기간과 음주 운전 횟수까지 더해 처벌을 차등화해 5년 내 2회 음주 운전자 혹은 10년 내 3회 음주 운전자를 3~5년 이하의 징역, 1500만~3000만원 이상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아직 해당 입법안 중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관위 심사를 마친 법안은 없어 개정안 마련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오현아 한국경제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