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과 건설사 간 이해관계, 원자재 값 상승, 정부의 과도한 분양가 규제로 인한 부작용 맞물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현장 모습.[연합뉴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현장 모습.[연합뉴스]

단군 이후 최대 재건축이라고 불리는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공사가 중단된 지 두 달째 접어들고 있다. 잡음이 끊이지 않던 둔촌주공 재건축은 최근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지난 15일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이 사업비 대출 연장 불가 통보를 받으면서 조합원당 1억원을 상환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상환을 못하면 최악의 경우 조합이 파산하게 된다. 조합이 파산하면 시공사업단은 대위 변제 뒤 공사비와 사업비, 이자를 포함한 2조원이 넘는 비용에 대한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조합이 파산하고 사업 전체가 경매로 처분된 성수동 트리마제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서울숲 트리마제는 조합이 분양가 등을 두고 시공사와 갈등을 빚다 사업이 지연되며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부도난 것을 시공사가 인수해 지은 곳이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사업 부지와 분양 권리를 박탈당했다.

2003년부터 약 20년간 끌어 온 둔촌주공 재건축은 지난 4월 골조 공사가 20층 정도 마무리된 상태(공정률 52%)에서 중단됐다. 가장 큰 쟁점 된 ‘공사비 증액’둔촌주공 사태가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업계에서는 둔촌주공 재건축 사태가 현 부동산 시장의 문제점을 복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조합과 건설사 간 이해관계, 원자재 값 상승, 정부의 과도한 분양가 규제로 인한 부작용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규모 면에서도 지금까지 한국에서 시행된 재건축 단지 중 가장 크다. 둔촌주공 재건축은 기존 5930가구를 철거하고 1만2032가구를 새로 짓는 사업이다. 완공되면 송파구 ‘헬리오시티(9510가구)를 넘어 단일 단지로는 한국 최대 규모의 아파트가 된다. 언론에서 둔촌주공 재건축을 ‘단군 이후 최대’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공사 중단 사태의 중심에는 공사비 증액 문제가 있다. 둔촌주공 재건축은 규모도 어마어마하지만 최근 불거진 원자재 값 상승 이슈의 한가운데 있다.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롯데건설·대우건설)은 2020년 6월 가구 수 증가, 상가 건물 추가, 물가 인상 등을 이유로 공사비를 올리기로 당시 조합 집행부와 계약했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공급 규모를 1만1106가구에서 1만2032가구로 늘리면서 공사비를 5586억원 증액, 3조2294억원으로 2020년 6월 변경 계약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출범한 새 조합 집행부는 해당 계약이 이전 집행부의 잘못이라며 3월 증액 계약 무효 확인 소송을 걸었다. 지난 2월 2019년 말부터 공사를 해오던 시공사업단은 “조합이 공사비 증액 계약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공사를 계속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4월 15일 공사 중단’을 선언했다. 시공사업단은 일반 분양이 미뤄지면서 2년 넘게 공사비를 받지 못해 금융 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공사 과정에서 조합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았고 건설사들은 ‘공사 중단’ 카드를 꺼냈다.

이에 조합은 며칠 후 계약 무효 소송을 제기하며 맞불을 놓았다. 시공사 측은 “더 협상은 없다”며 건설 장비와 인력을 철수하고 공사를 중단했다. 둘 사이의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자 서울시가 나서 중재를 시도했다. 서울시는 ‘공사비 3조2000억원이 적절한지 한국부동산원에 재검증하고 계약을 변경하자’고 양측에 제안했다. 조합은 이를 수용했지만 시공사업단이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아 결렬됐다.
‘시계 제로’ 둔촌주공 재건축 사태를 이해하는 세 가지 포인트
둔촌주공 변수, 다른 사업에도 적용될 수 있어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 차질, 인력 부족으로 둔촌주공뿐만 아니라 많은 재개발 사업지가 난항을 겪고 있다. 건설사들이 수주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시멘트의 핵심 원료인 유연탄은 올 1분기 톤당 가격이 평균 250.55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약 3배 올랐다.

이 밖에 철근·레미콘 등의 가격도 급등했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건설용 재료 생산자물가지수는 작년 3월 113.28에서 올해 3월 138.73으로 22.46% 올랐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둔촌주공 재건축 파행과 해결 여부가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둔촌주공 재건축을 멈추게 한 변수가 수도권 1기 신도시를 포함해 다른 재건축·재개발 사업에도 똑같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분양가 규제도 둔촌주공 사태의 원인으로 꼽힌다. 둔촌주공은 문재인 정부가 아파트 값 상승을 막겠다며 2019년 분양가 상한제를 투기과열지구 내 민간 택지로 확대하면서 상한제 대상이 됐다.

분양가상한제는 택지비와 건축비, 가산비를 합한 금액보다 분양가를 낮게 책정하는 제도다. 분양 보증 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2019년 둔촌주공 일반 분양 물량의 분양가를 3.3㎡(1평)당 평균 2900만원으로 맞추라고 요구한바 있다. 당시 주변 시세는 4000만원이었고 당초 조합 측이 책정한 분양가(3.3㎡당 평균 3550만원)보다 18% 정도 낮았다. 분양가가 줄면 조합의 수익이 줄고 이는 조합원들의 추가 분담금 상승으로 이어진다.

주변 시세보다 턱없이 낮은 분양가에 조합은 분양 시점을 미뤘다. 하지만 올해 3월 한국부동산원이 택지비 감정평가액을 1860원으로 측정하면서 분양가는 3.3㎡당 3400만원으로 예상됐다. 지난 분양가 평가보다는 높아졌지만 해당기간 집값 상승을 고려하면 입장차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 개편 논의를 서두르고 있다. 원자재값 폭등으로 공사비가 오른 가운데 분양가 마저 통제하면 사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공급 가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오는 21일에는 분양가 상한제 개편 방안이 발표될 예정이다. 개편안에는 건축 자재비 상승에 따른 현실적인 공사비를 반영하고 분양가 산정 방식을 개선할 것으로 보인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5월 23일 취임 후 첫 기자 간담회를 열고 “분양가 상한제는 (아파트) 공급을 촉진하기 위해 손봐야 할 첫 제도”라며 “관계 부처와 협의해 6월 안에 지나치게 경직된 것을 푸는 방향으로 개선안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새 정부에서 분양권상한제 규제 완화 정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되자 시장에서는 공급이 줄고 있다. 업계에서는 건설사들이 규제 완화 이후로 공급을 미루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5월 수도권 아파트 분양 물량은 총 7613가구로, 지난달(1만6852가구)에 비해 54.8% 감소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더라도 43.8% 감소한 수준이다. 전국 6월 아파트 분양계획물량은 1만6000여가구로 5월 계획물량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최근 공급이 줄어든 것은 분양권 상한제 개편안 이후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에 분양 시기를 미루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공급자들이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도 생기면서 규제 완화와 함께 공사비 현실화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개선 수위는 분양가 상한제 전면 폐지가 아닌 택지비와 기본형 건축비(공사비), 가산비로 이뤄진 기준을 합리화하는 ‘미세 조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정비 사업의 특수성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가산비 형태로 분양가에 반영해 주는 등의 방식이 유력하다.

이처럼 개편이 이뤄지면 분양가가 오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무주택자 입장에서는 청약을 통한 내집마련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둔촌주공 일반 분양 물량은 4786가구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