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간 공방에 빈손으로 끝난 MC12…새로운 합의인 수산 보조금도 4년짜리 시한부
[경제 돋보기]5년 만에 세계무역기구(WTO) 제12차 각료회의(MC12)가 개최됐다. 각료회의는 WTO 회원국 통상장관이 모두 참석하는 WTO 최고 의사 결정 기구로, 2년마다 개최돼 왔지만 WTO를 이끌어 왔던 미국의 관심 약화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으로 올해 6월 5년 만에 열리게 됐다. 당초 4일짜리 회의로 예정됐지만 회원국 간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이틀 더 협의해 겨우 각료회의 선언문을 채택했다.
2017년 제11차 회의(MC11)에서는 각료회의 선언문조차 채택하지 못했고 심지어 임기를 1년 남겨둔 WTO 사무총장이 돌연 사표를 낼 정도로 WTO 위기론이 심화됐다. WTO 회원국들은 2013년 무난한 내용으로 구성된 무역원활화협정을 도출한 것 외에 이렇다 할 실적이 없었다.
MC12는 WTO 위기론을 극복하고 다자 무역 체제 복원 동력 확충에 매우 중요한 회의였지만 성과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사실상 선언문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없었고 ‘빈손’으로 끝난 회의였다.
국내외 언론은 전자적 전송물 모라토리엄 연장 결정, 코로나19 백신 특허 사용 허용, 식량 위기 대응 조치, 수산 보조금 금지 등에서 성과를 냈고 다자 무역 체제 재건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전자적 전송물 모라토리엄 연장은 회의마다 해 오던 관행적인 것이어서 성과로 보기 어렵다.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특허 면제 승인 역시 기존 WTO 규범인 강제실시권을 인용한 것에 불과하다. 식량과 에너지 등에 대한 보호 무역 조치 중단 및 원상 복귀는 선언적 의미 외에 실행을 담보하는 내용이 없다.
다만 수산 보조금에 대해서는 합의가 있었다. 2013년 이후 처음으로 WTO가 새로운 합의에 도달한 것이다. 불법 어업(IUU)과 남획된 어종 어획에 대한 보조금을 금지 보조금으로 지정했지만 면세유, 원양 보조금, 개도국 특혜 등 수산 보조금 관련 민감 쟁점에 대해서는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이번에 합의된 2가지 금지 보조금도 개정 보조금 협정 발효 후 4년 내에 이들 쟁점에 합의하지 못하면 자동 폐기하는 것으로 조건부 일몰 조항으로 합의했다. 현재 상황으로 보면 합의 타결이 가능성이 낮아 이마저도 없던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한국 수산업계는 이번 WTO MC12 결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통상 당국이 보도 자료를 낼 수 있었다. 따라서 새로운 합의를 했지만 4년짜리 시한부 규정이다.
지난 5월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한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은 6월 각료회의에서 잘해야 한두 개의 합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그 길이 매우 험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5년 전에 열린 직전 회의인 MC11 당시에 비해 세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번 각료회의 직전에 열린 기자 회견에서도 “악화된 통상 환경에 대해 더 좋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복합 위기(polycrisis)로 확실히 더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복합 위기의 예로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식량과 에너지 위기를 들었다.
지난 수년 전부터 WTO는 파행적으로 운영돼 왔다. 전통적으로 WTO는 주요 무역 규범에서는 선진국과 개도국 간에, 농산물에 대해서는 수출국과 수입국 간에 의견 차이가 컸다. 더구나 중국·인도·브라질·러시아 등은 미국이 주도하는 현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분명히 밝힘에 따라 합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WTO 사무총장은 개막식에서 WTO 정상화를 위해 이번 MC12에서 합의 달성을 촉구했지만 회의 초반부터 WTO 분열의 조짐이 나타났다. 러시아 대표가 발언하자 다수 통상장관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항의 표시로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 그 대신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표명하는 국가들이 적지 않았다.
WTO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만 분명 한계가 있음을 기정사실화하고 우리 정부는 대외적 ‘복합 위기 대응’ 통상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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