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하락장, 2018년 상황과 달라…‘머니 레고’ 근간 된 담보 자산 흔들려

코인판 서브프라임 사태? 비트·이더 급락에 사색 된 암호화폐 시장[비트코인 A to Z]
2020년 탈중앙화 금융(DeFi·디파이) 서비스가 인기를 끌며 ‘머니 레고(money lego)’라는 단어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머니 레고는 디파이 시장의 여러 프로토콜이 제공하는 금융 서비스를 마치 레고를 쌓아 올리듯 조합하는 일을 지칭하는 단어로, 자본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프로토콜 간 상호 연결성을 강화하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서비스 이용자는 이더리움 담보 대출 서비스 메이커다오(MakerDao)에서 이더리움을 담보로 맡기고 스테이블 코인인 다이(DAI)를 대출받을 수 있다. 여기에서 대출받은 DAI를 대출 플랫폼 아베(Aave)와 같은 또 다른 프로토콜에 예치하면 한 번 더 대출을 실행할 수 있다. 여기에서 대출받은 암호화폐는 마찬가지로 다른 프로토콜에서 담보로 사용할 수 있다.

위와 같이 디파이 프로토콜들은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짜맞춰져 있고 이 때문에 동시에 서로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었다. 이러한 디파이 머니 레고의 특성은 상승장 시기 TVL(Total Value locked : 디파이에 예치된 자산 규모의 총합계)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디파이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담보로 맡겼던 담보 자산의 가격 상승은 곧 자신이 맡긴 담보 자산의 가치 증가를 의미했고 이는 곧 더 많은 암호화폐를 대출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렇게 추가로 대출된 더 많은 양의 암호화폐는 또 다른 프로토콜에서 사용되며 더 큰 승수 효과가 나타났고 결과적으로 이는 더 큰 폭의 TVL 증가를 야기했다. 실제로 디파이 데이터 플랫폼 디파이라마(DeFilama)에서 TVL 규모 통계를 살펴보면 2020년 1월 약 6억 달러에서 21년 12월 약 2540억 달러로 420배 수준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크립토 약세장이 도래하며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차곡차곡 쌓아 온 머니 레고의 근간이 됐던 담보 자산의 가격이 흔들리자 암호화폐 시장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과담보 모델이 불러온 ‘죽음의 소용돌이’
20일 서울 서초구의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 고객센터 스크린에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시세가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20일 서울 서초구의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 고객센터 스크린에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시세가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대부분의 디파이 프로토콜은 과담보 모델을 차용하고 있다. 이더리움을 맡기고 DAI를 대출받았을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자신이 맡긴 이더리움의 가치가 하락해 그 담보의 가치가 대출한 DAI의 총액보다 낮아질 조짐이 보이면 프로토콜은 담보물로 잡은 이더리움을 시장가에 매도해 담보 계약을 청산시킨다. 이때 시장가에 매도된 이더리움으로 인해 가격이 하락하고 이 가격 하락은 또 다른 담보 계약의 청산을 야기한다. 마치 도미노처럼 한 번의 큰 하락이 또 한 번의 더 큰 하락을 야기하는 죽음의 소용돌이가 디파이 시장에 몰아치고 있다.

이에 저마다 각자의 머니 레고를 쌓아 가며 자산을 운용하던 투자자들은 이번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큰 피해를 봤다. 이번 피해는 비단 개인 투자자들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기관들 역시 디파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그 결과 마찬가지로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캐나다 퀘벡주연기금(CDPQ)의 주도하에 4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던 암호화폐 핀테크 기업 셀시우스 네트워크가 대표적이다. 셀시우스는 메이커다오에 약 1만8000개의 wBTC를 예치하고 2억7800만 개의 DAI를 대출해 자산을 운용하며 자산 규모를 키워 나갔다. 하지만 최근 시장 급락으로 청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 현재 셀시우스 측은 1700만 이용자의 출금·스와프·전송을 중지시킨 후 계속해 담보금을 보충하며 청산 금액을 낮추고 있지만 당분간 회복이 쉽지 않아 보인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셀시우스의 파산을 예측하고 있다.

암호화폐 자산 운용사 역시 큰 피해를 봤다. 운용 자산 규모만 100억 달러(약 13조원) 정도인 3애로캐피털(3AC : 3 Arrows Capital) 역시 아베를 이용한 레버리지 투자를 단행했다. 3AC는 자세한 피해 규모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이들의 채권을 보유한 블록파이(Blockfi) 측은 3AC가 이미 4억 달러 수준의 청산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암호화폐 트레이딩 회사 8블록스캐피털(8Blocks Capital)의 트레이드 팀장인 대니(Danny) 역시 3AC가 8BC가 맡긴 자금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인출 요구를 묵살했다는 트윗을 올리며 3AC 파산설에 힘을 실었다.

블록체인 미디어 우블록은 3AC가 다수의 기업들에서 대출받은 이력이 있다고 보도한 바 있는데, 시장에서는 3AC의 파산이 곧 또 다른 암호화폐 기업들의 연쇄 도산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비록 디파이 대출은 아니지만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기업으로 유명한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역시 실버게이트 은행에서 2억500만 달러를 대출받아 비트코인 레버리지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2022년 1분기 퐁 러(Phong Le)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1분기 실적 발표에서 비트코인 가격이 약 2만1000달러에 도달하면 마진콜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는데, 이 내용이 재조명받으며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역시 마진콜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이 같은 우려에 마이클 세일러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최고경영자(CEO)는 대출을 통해 구입한 비트코인은 일부일 뿐 기존에 보유하던 비트코인을 비롯한 추가 담보를 제공할 용의가 있고 청산될 가능성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시장은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다.
비트·이더 하락은 근간이 흔들리는 셈현재 암호화폐 시장 하락은 마치 2008년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도 미국 부동산 가격을 담보로 한 채권담보부증권(CBO)·부채담보부채권(CDO)·지급보증증권(CDS)·주택저당증권(MBS)과 같은 수많은 상품이 등장했지만 결국 그 근간이었던 미국 부동산의 가격이 무너지자 시장 자체가 무너져 내렸다. 코인 시장 역시 과담보 대출,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담보 대출, 합성 자산 프로토콜, 디파이 2.0, 보험 프로토콜 등 수많은 모델이 등장했지만 결국 그 근간이었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가격이 무너지자 시장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그 무엇보다 시장 참여자들을 더 두렵게 하는 것은 추세 반전의 트리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테라·루나 사태로 인해 촉발된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해 있다. 과거 2018년 하락장은 매크로가 아닌 암호화폐 시장 내부의 이슈였다면 2022년 현재의 하락은 암호화폐 내부 이슈는 물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안보 불안,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우려 리스크, 소비자 물가 폭등,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전염병 확산과 같은 매크로 이슈 역시 동반돼 있어 더 어둡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번 크립토 겨울이 끝나고 난 이후 시장은 더 성숙해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크립토 시장 투자 규모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암호화폐 규제 법률 역시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가상 자산 규제 가이드라인이 오늘 10월 발표될 예정이다. 이 규제안을 다른 국가들도 신속히 따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서도 가상 자산 자율 규제안을 신설하고 가상 자산 과세 2년 유예안을 논의하는 등 가상 자산 시장의 규제권 편입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또한 네이버·카카오·나이키 등을 비롯한 수많은 대기업들 역시 가상 자산 관련 사업 영위를 시도하고 있으므로 비록 지금은 힘들지만 결국 시장은 성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자연의 소용돌이가 그러하듯이 한없이 세차 보이는 코인판 죽음의 소용돌이도 언젠가는 결국 멈추는 시점이 올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소용돌이가 멎은 후에는 고요하고 따뜻한 바람이 맞이해 주는 것처럼 암호화폐 시장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남겨본다.

이휘원 디스프레드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