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프리 IPO 투자 규모 전년비 60% 줄어
버킷플레이스 · 쏘카 ·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 ‘최상위’

[비즈니스 포커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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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투자 시장에 혹한기가 다가오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등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 스타트업 투자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며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을 탄생시켰던 유동성 잔치가 끝나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테크 스타트업의 파티는 끝났다”고 분석했다. 세계 최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YC)는 창업자들에게 “최악에 대비하라”며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 세계적인 투자 위축 분위기에 상장을 추진하던 한국의 스타트업들도 기업공개(IPO) 일정을 연기하는 분위기다. 새벽 배송 이커머스 업체인 오아시스도 지난해 상장 주간사 회사 선정을 마쳤지만 아직 상장 예비 심사 청구는 하지 않고 있다.

마켓컬리 운영사인 컬리는 올해 3월 말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 심사를 청구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아직 투자액이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시장 분위기가 워낙 좋지 않아 IPO 일정을 내년으로 미루는 곳들도 있다”고 전했다.

얼어붙은 투자 심리, IPO 시장에도 찬물

한경비즈니스가 스타트업 투자 데이터베이스 더브이씨(The VC)와 함께 2022년 상반기(1~6월 16일) 한국 스타트업 투자 단계별 투자 규모 현황을 분석한 결과 IPO를 앞둔 스타트업이 진행하는 프리 IPO 투자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60% 감소했다. 2021년 상반기 프리 IPO 투자 규모는 총 1조496억원(21건)이었던 반면 올해 상반기에는 4222억원(16건)으로 대폭 감소했다.

스타트업 인수·합병(M&A) 시장도 얼어붙었다. 지난해 상반기 스타트업 M&A 건수는 52건에서 올해 상반기 72건으로 증가했지만 총금액은 5조230억원에서 1조630억원으로 약 78.8% 감소했다.

최근 몇 년간 스타트업 투자 붐을 주도해 온 타이거글로벌과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타이거글로벌은 올해 5월 말까지 주력 헤지펀드가 52% 손실을 기록했고 소프트뱅크비전펀드는 지난해 3분기 230억 달러(약 29조9000억원) 투자로 최대치를 기록한 이후 4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투자 규모가 크게 줄었다.

투자 건수도 3분기 65건에서 올해 2분기 25건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창업자는 올해 5월 실적 발표회에서 “신규 투자 규모를 작년 대비 절반 또는 4분의 1(25%)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들은 생존을 위한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 전 세계 스타트업에 감원의 칼바람이 불어닥쳤다. 전 세계 스타트업 정리 해고 현황을 집계하는 레이오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스타트업에서 정리 해고된 인원은 9700명으로 전 분기 3292명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 5월 해고된 스타트업 인원은 1만4708명에 달한다.

한국 스타트업들도 스케일업에서 수익성 확보로 전략을 선회하고 있다. 무신사는 최근 일본 패션 전자 상거래 플랫폼 ‘디홀릭’을 운영하는 디홀릭커머스를 인수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업계에선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가 옥석을 가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최인혁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대표파트너는 올해 6월 스타트업 생태계 콘퍼런스에서 “좋을 때는 모두가 투자하려고 하고 모두가 꺼릴 때는 더 좋은 투자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쿠팡·크래프톤·우아한형제들 등 유니콘 기업의 초기 투자자 미국계 벤처캐피털인 알토스벤처스의 김한준 대표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좋은 회사들은 어려운 시기에 탄생하고 이럴 때 더욱 강해진다”며 “2001년 닷컴 버블이 꺼진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빨리 성장해 2004년 상장한 기업이 구글이고 그때 가장 큰 덕을 본 회사가 아마존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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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플레이스·리벨리온, 불경기 뚫고 투자 유치

올해 상반기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에도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한 스타트업들도 있다. 더브이씨에 따르면 버킷플레이스(2350억원), 쏘카(1832억원),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1746억원), 두나무(1700억원) 등 10곳이 1000억원 이상을 유치했다.

인공지능(AI) 기반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회사) 스타트업 리벨리온은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의 자회사인 파빌리온캐피털을 비롯해 KDB산업은행·카카오벤처스·KT인베스트먼트 등에서 62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해 기업 가치 3500억원을 인정받았다.

2021년은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한 스타트업이 또 다른 스타트업을 인수·합병(M&A)하거나 글로벌 기업에 인수되는 사례가 늘면서 스타트업 M&A 시장이 역대급으로 활발했다.

하이퍼커넥트는 지난해 틴더 운영사인 매치그룹에 17억2500만 달러(약 2조2500억원)에 인수됐다. 웹소설·웹툰 플랫폼 타파스미디어와 래디쉬를 인수한 카카오는 지그재그 운영사 크로키닷컴,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그립컴퍼니도 인수했다.

스타트업 간 M&A도 활발해 오늘의집 운영사인 버킷플레이스가 지난해 집수리 업체 집다를 인수했고 토스 운영사인 비바리퍼블리카는 타다를 운영하는 VCNC의 지분 60%를 인수하기도 했다. 컬리는 올해 1월 여성 커리어 성장 지원 커뮤니티 헤이조이스 운영사인 플래너리를 인수했다.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사례도 늘었다. 스타트업이 중견기업이나 대기업 사업부를 인수하는 경우다. 야놀자가 인터파크를, 직방이 삼성SDS의 사물인터넷(IoT)사업부를, 런드리고 운영사인 의식주컴퍼니가 아워홈 자회사인 크린누리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들은 투자금을 바탕으로 사업 영역 확장, 인재 확보, 기술 확보, 시장 선점을 위해 원천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들을 인수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스타트업 간 M&A는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스타트업은 M&A를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면서도 “자금 경색 상황이 지속된다면 M&A 시장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