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시사회서 ‘안전핀 이브닝 드레스’로 일약 스타로
“아르마니는 부인들이 입을 옷을 만들고 베르사체는 情婦의 옷을 만든다”
검은색의 깊게 파인 가슴 라인과 스커트의 긴 슬릿(slit)으로 허벅지가 드러났다. 상의의 앞과 뒤를 금색의 큰 안전핀으로 연결해 노골적이고 도발적인 느낌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무명 배우에서 전 세계적인 섹시 심벌로 떠올랐다. 이후 베르사체의 안전핀 드레스는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른 헐리는 이후 에스티로더 화장품 회사의 광고 모델이 됐다. 헐리는 휴 그랜트와 13년 동안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다가 2000년 결별했다.
지아니 베르사체는 당시 “배꼽·허벅지·등과 같은 여성의 신체의 일부를 드러내는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르사체의 스커트 슬릿은 허벅지를 노출시켰고 깊게 파인 목선의 라인은 가슴을 훤히 드러냈다. 그리스 로마 예술·신화에서 모티브 얻어
베르사체는 다양하고 폭넓은 분야에서 풍부한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어 활용했다. 기발하고 창의적인 발상으로 각 요소들을 자유롭고 독특하게 혼합·변형·재구성함으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완성하는 게 그의 디자인 특징이었다. 그의 디자인 발상의 원천은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역사적 요소들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해 자신의 작품에 골고루 반영했다. 특히 그리스 로마 시대의 복식 스타일과 예술·신화에서 많은 모티브를 찾아 이를 프린트나 자수 기법을 통한 문양과 입체 재단에 의한 드레이핑의 형태로 디자인에 적용해 많은 인기를 끌었다.
20세기 중에는 특히 1920년대와 1930년대의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마들렌 비오네(1876~1975년)와 마담 그레(1903~1993년)의 영향을 받아 고도의 테크닉을 활용한 의상 디자인을 시도했다. 비오네는 그리스풍 드레스의 창시자로, 바이어스 재단을 여성복에 사용해 이름을 알렸고 패션의 기하학자로 불린다. 그레는 그리스 신화 속의 여신들을 연상하게 하는 주름 드레스로 유명했다.
베르사체는 고전주의 모티브를 통해 관능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매춘부는 복식사에서 다리와 허벅지를 드러낸 로마 시대의 노예 소녀로 간주되면서 그레의 우아함에 관능성을 조합하기도 했다.
가죽 끈과 금속 버클, 본디지(bondage) 패션을 많이 응용한 것도 관능의 표현이다. 성적 쾌감을 얻기 위해 밧줄·쇠사슬 등으로 몸을 묶는 본디지에서 착안해 몸에 착 달라붙게 입고 가죽·고무·비닐의 옷에 하이힐의 롱 부츠 차림을 한 것은 관능을 패션 예술로 승화하려는 시도였다. 가죽과 메탈의 반짝거리는 PVC 소재, 가죽 끈, 금속 징 장식, 금속 버클, 족쇄(shackles), 안전핀 등의 사용은 성적 일탈을 암시하고 있다. 이 결과 혹자들은 그의 패션을 ‘매춘부들의 쿠튀리에’ 혹은 ‘상류층 매춘부 스타일의 왕’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베르사체가 죽은 뒤 1997년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회고전를 기획한 리처드 마틴은 베르사체의 울트라 섹시룩에 대해 이런 논평을 남겼다. “지아니 베르사체는 매춘부들의 허세 넘치는 태도, 눈을 사로잡는 옷차림과 노골적인 성행위를 관찰하고 이를 하이 패션에 소개했다. 그는 단순히 매춘부를 살롱과 런웨이에 그대로 전달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거리에서 영감을 받아 패션이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노골적인 매춘부 스타일” 비난 받기도
베르사체의 노골적인 매춘부 스타일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당당한 자신감을 가진 사람들이 입을 수 있는 패션인 것은 틀림없다. 베르사체의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의상들은 여성을 학대하거나 비하하려는 의도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오히려 여성들이 본인이 여성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를 원했다.
그는 금기시돼 왔던 인간의 본성, 성적인 욕구를 하이 패션으로 승화해 새로운 패션의 역사를 썼고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성적 매력을 부여하고 즐길 수 있는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현대 여성을 위한 패션을 제시한 것이다. 미국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가 이탈리아 출신의 두 패션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지아니 베르사체에 대해 논평한 게 눈에 띈다. “아르마니는 부인들이 입을 옷을 만들고 베르사체는 정부(情婦)의 옷을 만든다(Armani dresses the wife and Versace the mistress),”
베르사체는 사회 전반의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을 수용해 디자인에 반영했는데 1980년대 초반부터 발레와 오페라 무대 의상을 꾸준히 제작했다. 로큰롤 뮤지션들과의 교류 및 그들의 의상 디자인 경험에서 자유롭고 예술적인 영감을 얻기도 했다. 오페라와 발레를 좋아하고 각종 문화 행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를 중요시했던 그는 1987년 리처드 스트라우스의 살로메 무대 의상을 시작으로 몇 해 동안 라 스칼라의 여러 공연 의상을 디자인했다. 음악·미술·무용 등 폭넒은 예술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을 더해 자신의 작품 세계를 넓혀 베르사체만의 오리지널한 패션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이다.
특히 아르마니가 사실적인 영화 의상에 관심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환상적인 무대 의상의 창작에 심취했던 1980년대의 베르사체는 무대 의상을 위해 여러 다른 문화와 과거의 예술 사조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습득한 분석적 방식을 도입해 의상 자체 혹은 컬렉션 전체를 특징 짓는 과장법을 사용해 새로운 실루엣을 만들어 냈다.
참고 문헌 : ‘지아니 베르사체의 패션 디자인 발상 연구(오윤정·김지영, 복식 Vol. 61(8))’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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