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후기술 기업 - 지구인컴퍼니

[ESG 리뷰]
식물성 고기 HMR로 미국 시장 도전장
“맛이 어때요.” 민금채 지구인컴퍼니 대표가 내민 2가지 떡갈비 고기를 먹어 봤지만 무엇이 식물성 고기(대체육)인지 전혀 구별하지 못했다. 사실 2개 모두 진짜 고기가 아닌 식물성 고기였다. 그중에서도 지구인컴퍼니가 최근 만든 떡갈비 샘플은 당장 출시해도 식물성 고기인지 전혀 모를 것 같은 질감과 육즙을 자랑했다.

‘고기를 뛰어넘은(more than meat).’ 지구인컴퍼니의 식물성 고기 브랜드 언리미트(Unlimeat)의 포장재에 쓰인 문구다. 브랜드인 언리미트 자체도 ‘한계가 없다(Unlimited)’는 것을 생각해 보면 식물성 고기로서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의지가 담긴 네이밍이다.

민 대표는 지구인컴퍼니를 한국을 넘어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대체육 대표 스타트업으로 키우려는 포부가 있다. 불고기감인 슬라이스 고기, 구워 먹을 수 있는 풀드 바비큐, 다짐육인 민스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떡갈비·핫도그 등 가정 간편식(HMR)에도 진출을 준비 중이다. 지구인컴퍼니는 지난해 개최한 P4G 서울 정상회의 식량·농업 세션에서 식량 손실을 줄이고 탄소 감축에 기여하는 대표 기업으로 소개됐다. 그뿐만 아니라 영국의 포워드푸딩이 뽑은 ‘푸드테크 기업 500’에 선정되고 2020년에는 국제 식품 품평회인 몽드셀렉션에서 동상을 받는 등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부산물이나 폐자재를 거듭나게 하는 지구인컴퍼니의 새활용(업사이클) 기술이 자리한다.

버려지는 농산물 업사이클 아이디어

민 대표는 창업 전 카카오와 배달의민족을 거치며 재고 농산물 사업을 경험했다. 카카오에서 가격이 폭락한 감귤을 카카오 선물하기로 소개해 팔았고 배달의민족에서는 재고 농산물을 이용한 밀키트 사업인 배민쿡을 총괄했다. 농가의 재고 농산물 문제에 눈뜬 것은 이때부터다. 민 대표는 “농수산물유통공사(aT)에서 5년마다 농산물 통계가 나오지만 재고 농산물이 얼마나 생산되고 얼마나 수출되는지 자료조차 없는 실정”이라며 “각종 과일과 채소 등 못생긴 농산물이 농가에 재고로 남는 것을 알게 돼 이를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못생긴 농산물에 ‘꽂힌’ 민 대표는 배민쿡 사업이 종료되면서 창업을 결심했다. 이번에는 과일과 채소가 아닌 곡류로 눈을 돌렸다. 곡물은 재고가 20~30% 정도 발생하는 등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곡류 중 쌀 재고가 가장 많았다. 소비자가 갓 도정한 쌀을 선호하면서 남게 되는 묵은쌀이 골칫거리였다. 민 대표는 묵은쌀을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묵은쌀은 보통 쌀과자나 선식·미숫가루 등으로 소비되는데 민 대표는 좀 더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방안을 찾고 싶었다.

“쌀 퓌레에 과일을 넣어 스무디를 만들어 봤어요. 그런데 시음회를 해보니 쌀에서 밍밍한 맛이 난다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아무래도 못 팔겠다 싶어 곡물로 또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러다 시장 조사 차 간 미국에서 임파서블푸드의 오마이버거를 먹은 것이 큰 전환점이 됐죠.“
쌀 단백질, 감자 전분, 완두콩, 콩 뿌리 추출물 등 곡물과 두유를 베이스로 만든 패티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고기와 똑같은 맛을 냈다. ‘고기 없이 못 사는 사람’이던 민 대표는 이 정도 퀄리티면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식물성 고기로 사업을 전환했지만 민 대표는 여기에 처음 생각한 업사이클링을 접목했다. 현재 언리미트가 생산하는 불고기용 고기 슬라이스는 처음에는 원하는 맛과 육질을 내기 위해 렌틸콩 등 대부분 수입산 재료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국내 곡류 재고와 부산물의 비율을 10~11% 수준으로 높였다. 부산물은 콩기름을 짜고 남은 대두박과 쌀겨 중 가장 속겨를 일컫는 미강 등을 가루로 만들어 배합해 사용한다. 이처럼 국내산 농산물을 활용한다는 점을 높게 평가 받아 올가홀푸드에도 입점할 수 있었다. 곧이어 입점이 까다로운 농협 하나로마트에도 진출했다. 민 대표는 “초록마을·한살림·올가홀푸드·농협 등은 국내산 농산물을 사용하지 않으면 잘 들여놓지 않는다”며 “그런 점에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민 대표는 식물성 고기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회사의 미션이자 비전은 여전히 ‘업사이클링’에 있다. 사명에 지구를 넣어 지구인컴퍼니라고 이름 지은 것도 지구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민 대표는 “처음에 무엇을 팔아야겠다는 생각보다 버려지는 농산물을 업사이클링해 부가 가치를 높이고 싶다는 생각으로 창업했다”고 말했다.
식물성 고기 HMR로 미국 시장 도전장
맛있는 고기=식물성 고기 인식돼야

한국에서 식물성 고기는 여전히 낯선 상품이다. 민 대표는 “처음에는 ‘이 제품을 왜 먹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말했다. 식물성 고기의 B2B 시장 크기나 예상 매출을 묻는 질문도 많았다. 한국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시장이라 시장 규모나 매출을 추정하기 어려웠다. 소비자를 설득하는 것은 더 어려운 과제였다. 민 대표는 식물성 고기가 채식주의자(비건)만 먹는 식품이라는 편견을 깨는 데 주력했다. 식물성 고기는 콜레스테롤 제로, 트랜스 지방 제로인 데다 착색료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건강한 식사를 원하는 이들에게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민 대표는 “식물성 고기가 고기 먹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만 영양학적으로 몸에 부담이 더 적은 고기”라는 점을 강조한다. 현재 언리미트의 주요 고객 중 60%는 고기도 먹고 식물성 고기도 즐기는 플렉스테리언(flexi-vegetarian)이고 40%가 채식주의자다. 채식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고기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민 대표의 비전이다.

그동안 식물성 고기의 대명사는 콩으로 만든 콩고기였다. 콩고기는 특유의 콩 비린내가 있어 거부감을 갖는 이도 있다. 민 대표는 콩고기와 언리미트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그는 “식물성 고기도 콩고기처럼 맛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콩으로만 만든 콩고기는 콩 특유의 맛과 향이 남아 있지만 언리미트의 식물성 고기는 여러 곡물을 배합해 식감과 풍미·맛·질감·육즙 등이 고기에 가깝고 갈비 맛이나 마늘·양파 등 소스의 풍미도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식물성 고기가 단순히 육식을 피하기 위해 식물성 단백질을 먹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더 진화된 형태로 건강하게 먹는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다.

경기도 광주에 공장을 둔 지구인컴퍼니는 6월 충북 제천에 둘째 식물성 고기 제조 공장을 완공할 예정이다. 이 공장은 식물성 고기의 조직감과 식감·육즙·풍미를 고도화한 특수 공정 설비를 갖췄다. 고기 같은 식감을 지닌 ‘조직 식물 단백질(TVP : Textured Vegetable Protein)’을 만들기 위해 온습도와 압력 등의 최적 값을 찾는 것이 공정의 핵심이다. 제천공장이 완공되면 두 공장을 합쳐 한 달에 식물성 고기 500톤 정도를 생산할 수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식물성 고기 제조 공장이다. 민 대표는 “대체육 공장은 보통 992~1653㎡(300~500평) 규모지만 제천공장은 부지 1만4545㎡(4400평), 공장 면적 3967㎡(1200평) 규모”라며 “확신이 있어 가능한 투자”라고 말했다.
식물성 고기 HMR로 미국 시장 도전장
HMR로 스케일 업 나선다

삼림의 목장화, 가축 분뇨의 메탄 발생 등을 유발해 고탄소 산업으로 꼽히는 축산업과 비교하면 식물성 고기의 탄소 저감 효과가 도드라진다. 지구인컴퍼니는 최근 제품의 탄소 발자국을 더 줄이는 ‘렛츠 제로’ 캠페인을 시작했다. 제품 개발과 생산 과정에서 탄소 저감 기회를 더 찾아보자는 취지다. 민 대표는 “유엔식량농업기구에서 2006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축산업이 온실가스 배출의 18%를 차지한다”며 “식물성 고기를 만들고 있지만 탄소 발자국을 더 줄이기 위해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우선 국내산 원료 업사이클링과 리사이클링을 늘렸다. 해외에서 원료를 수입하면 운송 등 과정에서 탄소 발자국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사용을 줄인 포장 용기를 사용하고 제품 표지에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 인증을 받은 종이와 콩으로 만든 잉크를 사용한다. 제천공장에는 전기 충전소를 2개 설치하고 기존 물류차도 하반기 전기차로 교체할 예정이다. 공장 내 설비도 전기 사용량과 물 사용량을 20~40% 절감한 설비만 선택했다. 오는 9월 매출의 일부를 떼어 ‘언리미트숲’을 조성할 계획이다. 지구인컴퍼니는 법인 설립 이후 현재까지 30년 된 소나무 178만 그루가 흡수하는 양의 탄소 배출을 저감했다.

식물성 고기와 탄소 저감에 관심 있는 고객을 ‘찾아가는’ 활동도 펼친다. 최근 지구인컴퍼니의 렛츠 제로 캠페인을 통해 대체육을 알게 된 초등학교 학생의 편지를 받고 직접 학교를 방문해 강연하고 채식 급식을 위한 식물성 고기도 제공했다.

해외에서 식물성 고기는 ‘플랜트 베이스드 미트(plant based meat)’라고 불리며 고기의 한 종류로 인정받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대체육 기업 비욘드미트는 미국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하며 주목받았고 임파서블푸드도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다. 아마존프레시 등 미국 대부분의 주요 마트는 플랜트 베이스드 미트 코너가 따로 있다. 민 대표는 “미국 전역의 일반 마트에서는 보통 식물성 고기 관련 냉장과 냉동 쇼케이스가 6~8개 구비돼 있다”며 “식물성 고기뿐만 아니라 곁들여 먹는 유제품 대체유와 소스류 등을 다양하게 갖췄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일부 마트에 ‘채식주의존’이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냉동고 한 개 규모로, 아직 갈 길이 먼 상태다.

최근 HMR 제품을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론칭하기로 한 것도 아직 한국 시장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구인컴퍼니는 미국 법인 설립을 끝내고 세일즈를 하고 있다. 지구인컴퍼니에 올해는 HMR을 통한 스케일 업(scale up)의 원년이다. 글로벌 시장에 식물성 고기 버전의 K-푸드를 내놓겠다는 포부다. 지난 4년간 식물성 고기의 연구·개발(R&D) 역량과 제조 기술을 고도화하면서 서브웨이·도미노피자·파리바게뜨·로봇김밥·퀴즈노스 등 프랜차이즈에 B2B로 재료를 제공했다면 이제는 가정에서 먹을 수 있는 반조리 식품인 떡갈비·핫도그·육포·만두·돈가스 등 다양한 HMR 제품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지구인컴퍼니는 7월부터 아마존·홀푸드·트레이더스·코스트코 등 미국 대형마트에서 식물성 고기 HMR 제품을 판매한다. 로컬 리테일 마트 일부는 물론 비건파라다이스 등 식물성 제품 전문 이커머스 온라인 몰에도 입점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홈플러스 전 점포, 롯데마트 70여 곳, 이마트 10곳에서 본격 HMR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언리미트 홈페이지를 통해 판매해 ‘완판’되며 인기를 입증했던 식물성 고기 육포도 여름부터 일반 편의점에서 판매한다. 민 대표는 “올해 미국 주요 유통 채널에서 가시적 성과가 나오면 C라운드 투자 유치를 준비할 계획”이라며 “지난 4년간 기본 기술을 잘 만들어 HMR 시장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5년 후에는 글로벌 회사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1388호와 국내 유일 ESG 전문 매거진 ‘한경ESG’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더 많은 ESG 정보는 ‘한경ESG’를 참고하세요.)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