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 장비 시장 된 중국…한국, 미국‧일본‧ 대만과 협력 시급

[경제 돋보기]

미국 트럼프 행정부부터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꽃으로 표현되는 반도체의 지속 가능한 생산과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충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국내 지원 정책과 동맹국과의 협력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국과 일본 순방,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의 출범 선언 등이 이러한 미국의 노력을 대변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일본과의 협력 외에도 반도체 강국인 대만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비록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의 기본적인 가치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대만이 IPEF에 참여하는 것이 무산됐지만 6월 초 미국은 대만과의 다양한 경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구상을 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중점 사안인 반도체 공급망, 수출 통제, 비시장 무역 관행 등이 포함돼 IPEF의 협력 의제보다 구체성이 높다고 평가되고 있다. 첨단 반도체의 70% 이상을 대만에서 수입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대만과의 협력 강화가 4차 산업혁명이 주도하는 기술 패권 경쟁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동맹국과의 협력 강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국내 상황은 녹록지 않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의 국내 정치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해 온 다양한 첨단 산업 육성 방안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6월 초 미국 상원은 미국 혁신경쟁법(USICA)을 찬성 68, 반대 32로 통과시켰고 하원은 이미 지난 2월 미국 경쟁법(America COMPETES Act)을 찬성 222, 반대 210으로 승인했다.

문제는 두 개의 법안이 일관적이지 않아 격차를 조정하는 수정안이 논의돼 올여름까지 대통령에게 제출할 계획이지만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공방이 격화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올여름까지 수정안 제출이 긍정적이긴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 집권 후 18개월이 지났음에도 아직 공식적인 대중국 종합 전략이 나오지 않아 미국 국내외 우려와 논란이 높아진 상태다.

미국의 민주적 시스템에 따라 미국 행정부의 시기적절한 대응이 지체되는 동안 권위주의 체제인 중국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생산 장비 조달을 막으려는 미국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세계 시장에서 반도체 생산 장비를 쓸어 담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해외 반도체 생산 장비 업체에 대한 중국의 장비 주문이 급격히 증가해 중국은 2021년에 이어 2년 연속 세계 최대의 반도체 생산 장비 시장이 됐다. 미국이 언제 추가적인 제한을 가할지 알 수 없어 미국의 구체적인 제한 조치가 마련되기 전에 생산 장비를 구매하도록 중국 정부는 중국 반도체 생산 업체에 권고하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미국의 민주적 정책 기획 절차는 시간이 소요되고 관련 정보가 이미 중국 정부에 사전에 노출돼 중국이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의 권위주의적이고 불투명한 정책 결정 과정은 미국에 불리하게 작동하고 있다.

물론 중국이 생산하는 반도체는 최첨단 기술과 비교해 몇 세대 뒤처졌을 뿐만 아니라 장비에 대한 해외 의존도 역시 높아 크게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은 중국이 생산하고 있는 후행 기술로 만들어진 제품 중심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의 반도체 생산 능력 성장은 세계가 중국의 반도체 공급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중국의 반도체 생산 역량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한국은 그동안 축적해 온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국에 이어 필요하다면 일본·대만과의 협력을 통해 반도체의 비교 우위 격차를 더욱 벌려야 한다.

강문성 고려대 국제대학 학장
숨 고르기 들어간 미국의 반도체 지원 정책 [강문성의 경제 돋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