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우수 투자 동아리 선정해 연 1000만원 장학금 수여…올해 상반기 11곳 뽑혀
[비즈니스 포커스] 황성환 타임폴리오자산운용 대표, ‘미래금융’ 위한 통 큰 결정 “배고픈 대학 동아리를 지원하고 싶었습니다.”한국 1위 헤지펀드인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을 이끄는 황성환 대표가 의미 있는 결정을 내렸다. 전국 대학의 우수한 투자 동아리를 선발해 각 동아리당 연간 1000만원의 장학금을 주기로 한 것. 그를 따라다니는 출신 꼬리표이자 금융권의 대표 파워 하우스로 알려진 서울대 투자 동아리 ‘스믹’을 넘어 전국 대학의 투자 동아리로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대학 투자 동아리가 활성화되면 더 많은 인재들이 여의도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란 게 그의 예상이다.
스믹 출신 청년의 통 큰 투자
7월 6일 오후 1시 50분, 서울 여의도에 있는 타임폴리오자산운용 사무실. 앳된 얼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과 소속이 적힌 명패를 목에 걸고 사뭇 긴장한 얼굴로 하나둘 자리에 앉았다. 서울대 투자 동아리인 ‘스믹’을 비롯해 서울대 ‘스누밸류’, 고려대 ‘큐빅’과 ‘리스크’, 연세대의 ‘YIG’, 성균관대 ‘스타’, 서강대 ‘SRS’, 한양대 ‘스톡워즈’, 이화여대 ‘EIA’, 카이스트 ‘KFAC’, 부산대 ‘SMP’ 등 한국 9개 대학의 11개 투자 동아리 회장단 36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 대학 투자 동아리의 금융 새싹들은 ‘제1회 타임폴리오 아이비(IVY) 클럽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해 여의도에 모였다. 행사가 시작되자 황 대표가 인사말을 했다. “환영합니다. 아이비는 ‘소중한 청년들을 위한 투자(Investment for Valuable Youth)’란 뜻의 약자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금융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이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훌륭한 금융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황 대표는 고령화 시대에 노후 자금을 운용해야 할 금융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 과정에서 미래 금융인의 역할이 중요하고 이날 참석한 투자 동아리의 회원들이 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황 대표와 대학 동아리는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는 서울대 경영대학 소속 학술 동아리 ‘스믹(SMIC)’ 1기다. 졸업한 지 1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수식어에 스믹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황 대표 역시 동아리에 각별하다. 1기였던 그가 졸업 후 현재 44기가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후배들의 학술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사실 동아리는 학점 관리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아요. 물리적인 시간 한계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금융업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이들 중에 동아리 출신이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무언가에 몰두해 열중했다는 증거이니까요. 저 역시 동아리 혜택을 많이 봤습니다.” 지금은 투자업계의 거물들을 배출한 곳으로 알려졌지만 스믹의 시작은 단출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로 한국 증시가 요동치던 1998년 주식에 관심을 가진 청년들이 하나둘 모여 주식 투자를 공부하기 위해 동아리를 만들었다. 한국 최초의 주식 투자 대학 동아리 1호의 탄생이다.
황 대표도 창립 멤버 중 한 명이다. 지금이야 투자 동아리 가입이 곧 취업으로 연결되며 입회 경쟁률이 치열하지만 그때만 해도 회원 모으는 게 일이었다. “등산 갈 사람 모집하는 것처럼 그냥 수시로 뽑았어요. IMF 다음 해라 주식 투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좋지 않았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1기예요. 지금은 시조새죠(웃음).”
황 대표의 동기인 스믹 1기의 면면은 화려하다. 한국 최초 행동주의 펀드로 이름을 날린 강성부 KCGI 대표, 한국 글로벌 투자의 선두로 꼽히는 목대균 케이글로벌자산운용 대표, 박진호 NH아문디운용 주식운용1본부장, 이의섭 현대모비스 IR담당 상무, 또 지금 그와 함께 일하고 있는 이주상 타임폴리오자산운용 전무까지…. 25년 전 ‘주린이’들이 지금은 업계를 주름잡는 여의도 핵심 인사들이 됐다.
“같은 고민을 함께 하니까 외롭지가 않았죠. 스믹이 아니었다면 (그 시절을)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대학 시절 전세금을 탈탈 털어 주식에 투자한 그의 일화는 유명하다. 군에서 갓 제대한 그는 사촌형이 코스닥으로 대박을 쳤다는 얘기에 옥탑방 전세금 1600만원을 주식 투자에 올인했다. 모 아니면 도였지만 스믹 활동에 전념하며 투자를 배웠다.
1600만원의 종잣돈은 1년 새 3000만원으로 배 늘었다. 2001년부터 동원증권 실전대회 등에서 괄목할 만한 수익률을 보였고 상금은 고스란히 주식 투자금에 다시 쓰였다. 종잣돈 1600만원이 20억원으로 불어나는 데까지 5년도 걸리지 않았다. 2004년 입사한 대우증권을 나와 타임폴리오자산운용(당시 타임폴리오앤컴퍼니)을 설립했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 살 때였다. 이후 성장을 거듭하며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의 규모도 커졌다. 한국 1위 헤지펀드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의 자기자본은 1534억원, 운용 자산 규모는 6월 30일 기준 4조2864억원이다.
이 사이 스믹 역시 성장했다. 1998년 발족한 이후 25년간 스믹은 현재 활동하는 44기를 포함해 지금까지 총 477명의 회원을 배출했다. 역사적인 1기를 시작으로 인재들이 줄지어 나왔다. 타임폴리오자산운용과 함께 잘 알려진 VIP자산운용의 최준철·김민국 대표, 머스트자산운용의 김두용 대표가 그의 스믹 후배들이다.
스믹이 이처럼 한국 금융 투자업계의 사관학교로 발돋움한 데는 체계적인 커리큘럼과 인적 네트워크에 그 배경이 있다. 특히 매년 홈커밍데이(모교 방문 행사) 등 행사를 개최하는데 기라성같은 선배들이 멘토로 참여해 후배들의 투자 보고서를 지도하거나 투자 인사이트에 방향성을 제시한다. ‘돈 주고도 못 살’ 현직 멘토들의 강연이자 그 어떤 유인책보다 확실한 동기 부여의 장이다.
이 중심에 황 대표가 있다. 황 대표는 후배들의 행사에 바쁜 시간을 쪼개 기꺼이 참여한다. 보고서 작성에 날카로운 피드백을 하기도 하고 비용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탄탄한 유대는 외부 눈총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아무래도 스믹 출신이 스믹 출신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보니 업계에선 “5년 뒤엔 스믹 출신이 금융권을 채우겠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물론 스믹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대학마다 투자 동아리가 유행처럼 생겼고 그 대학 출신이 금융권 인사가 되면 인적 네트워크의 토대가 됐다. 대학생들 역시 투자 동아리 가입 기준을 ‘졸업생의 아웃 풋’으로 결정했다. 그들의 아웃 풋이 곧 등용문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리그’ 비판 넘어 모두의 선배로
황 대표도 일찍이 스믹을 넘어 더 많은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지만 회사를 키우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다. “금융의 선순환을 바라는 마음에서 배고픈 동아리를 지원하자고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이제야 형편이 좀 좋아졌네요.”
그는 각 대학 동아리에 주어지는 연간 1000만원의 장학금이 동아리의 가치를 강화하는 데 쓰이길 바란다. 공동 주식 투자를 통해 자금을 불리거나 수익률을 내 성적표를 만들기보다 일선에서 근무하는 전문가를 모아 현장의 경험을 듣고 리포트를 제본하거나 기념품을 제작해 동아리에 대한 로열티가 생기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의견이다.
“동아리 시절 제일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겁니다. ‘산 경험’을 듣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런데 사회에 갓 진출한 친구들은 자금이 많지 않아요. 후배들을 한 번 만나러 갔다가는 거덜나기 쉬우니 모임이 부담스럽죠. 동아리 예산으로 선배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 거예요. 동아리 출신의 가장 큰 특권을 잘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1기에 선발된 투자 동아리의 각오도 남다르다. 특히 지방 소재 대학은 이번 장학금이 기회이자 자극제다. 부산대의 투자 동아리 ‘SMP’ 소속 김도균 학생은 “지방 대학 특성상 서울권 대학과의 교류나 여의도에 있는 현직자들과의 소통이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장학금이 SMP에는 큰 기회의 문이자 연 1000만원이라는 큰 장학금을 받은 만큼 동아리 회원들의 사기와 실력 증진에 아주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대학의 학술 동아리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동아리를 보다 객관화된 시선으로 보고 그 상태에서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일지 고민해 볼 수 있는 큰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전 소재 카이스트의 투자 동아리 KFAC를 이끄는 채우진 학회장 또한 “(장학금으로) 그간 여러 이유로 연락하기 어려웠던 현업의 선배들과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며 “기존에 비용 부담이 커 구매하지 못했던 양질의 금융 자료와 고급 정보를 구독하는 데도 자금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은 앞으로 장학금 대상 투자 동아리의 수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매년 1월과 7월 초 두 차례 수여식을 개최하며 1개 동아리에 연간 1000만원의 장학금을 수여한다. 1기는 타임폴리오 차원에서 선발했지만 2기부터는 공모다. 행사 2개월 전 이 회사 홈페이지 공모를 통해 전국 대학생 금융 관련 동아리를 대상으로 참가 신청을 받는다. 1차 서류 전형과 2차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최종 수상자가 선정되는 방식이다.
황 대표는 이제야 숙원 사업의 첫발을 뗀 기분이다. “금융 발전을 위해 마중물을 뿌린 것 같은 기분입니다. 소중한 청년으로, 이후엔 훌륭한 금융인으로 여의도에서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장학금의 취지를 그다음 기수 또 다음 기수에 전달해 주길 바랍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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