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 시장 발전사에 획 그은 1세대부터 열정 돋보이는 중견 애널리스트까지

[2022 상반기 베스트 증권사·애널리스트]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사진=한국경제신문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사진=한국경제신문
새벽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에 퇴근하는 것은 예삿일이다. 보고서 작성에 기관투자가들과의 연이은 미팅, 기업 세미나까지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애널리스트들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애널리스트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끊임없이 시장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정보를 취합하고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밤낮도 없이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망신 당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쁜 애널리스트들 가운데서도 시장과 소통하는 데 열정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동료들의 존경을 이끌어 내는 애널리스트들이 적지 않다. 특히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의 중요성은 한국 주식 시장에서 두드러진다. 개인 투자자들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만큼 기업과 투자자 간의 정보 비대칭 문제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 자본 시장이 오늘날까지 성장하는 데도 ‘끊임없이 공부하는’ 애널리스트들의 역할이 컸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오랫동안 애널리스트로 일하며 한국 자본 시장의 성장 과정을 지켜봐 온 한국 증권사 현직 리서치센터장들에게 물었다. 시장과 투자자들 간의 정보 공백을 채우고 숨은 투자 기회를 발굴하는 데 열정을 다하고 있는 대표적인 애널리스트들을 추천받아 소개한다. 한국 자본 시장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전설적인 1세대 애널리스트들부터 젊은 패기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신진 애널리스트까지 다양한 이들이 이름을 올렸다.

잊지 못할 그 이름 전병서·이종승·김영익

한국의 1세대 애널리스트들 가운데 대표적인 ‘스타 애널리스트’를 꼽자면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을 빼놓을 수 없다. ‘리서치 종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대우증권에서 반도체·정보기술(IT) 분야의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종목 애널리스트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에 발탁됐고 이후 한화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리서치센터장을 역임했다. 투자은행(IB)업계에 몸담으며 중국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베이징의 칭화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경제 수도인 상하이의 푸단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중국 경제 전문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리서치센터장들 가운데 전 소장을 언급한 이들은 한결같이 그를 ‘내러티브가 강점인 애널리스트’였다고 평가했다. 한 리서치센터장은 “복잡하고 생소한 개념이 많은 IT업계의 시장 변화를 내러티브를 통해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강점을 지닌 분이었다”고 답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사진=한국경제신문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사진=한국경제신문
한국 1세대 스타 애널리스트에서 기업홍보(IR) 컨설팅 업체의 대표로 변신한 이종승 IR큐더스 대표를 언급한 이들도 많았다. 이 대표는 1990년 대우경제연구소 기업분석팀을 시작으로 조선·기계 업종을 분석하는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대우증권(현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 우리투자증권 기업분석팀장을 거쳐 NH농협증권(현 NH투자증권)에서 6년간 리서치센터장을 맡았다. 다수의 리서치센터장들은 이 대표에 대해 “애널리스트의 교과서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대우증권에 재직할 당시 ‘애널리스트의 사관학교’로 유명세를 떨쳤는데 당시 신입 애널리스트들은 이 대표에게 ‘기업의 밸류에이션 평가’를 배우는 것부터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 리서치센터장은 “당시 애널리스트 중에 회계학회 회원으로 활동했던 것은 이 대표가 유일했다”며 “인품도 훌륭했지만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의 격조를 한 단계 끌어올린 인물”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닥터 둠’으로 잘 알려진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대신증권과 하나대투증권 리서치센터장, 하나경제연구소 소장, 창의투자자문 대표 등을 거치며 한국의 리서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2001년 9·11 사태 직전의 주식 시장 폭락과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거품 붕괴를 예고하며 ‘한국의 닥터 둠’이란 별명을 얻었다. 리서치센터장들은 그를 “철저히 데이터를 기반으로 본인만의 시장 예측 모델을 통해 주식 시장과 경제 전반에 걸친 분석을 제시한 애널리스트”라고 기억했다. 한 리서치센터장은 “시장의 대세와 의견이 맞지 않더라도 소신 있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애널리스트였다”며 “시장을 무작정 쫓아가기보다 합리적 판단에 근거해 시장을 전망하고 예측하는 애널리스트의 기본적인 역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 선배였다”고 기억했다.

한국의 1세대 채권 애널리스트로 이름을 날렸던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상무를 꼽은 이들도 많았다. ‘여의도 채권의 전설’로 일컬어지는 김 상무는 굿모닝신한증권(현 신한증권)에서 채권 애널리스트로 첫발을 내딛고 1년이 채 안 돼 채권 부문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한 리서치센터장은 김 상무에 대해 애널리스트로서 “통찰력이 넘치는 분석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는 “마켓 참여자들이 존경할 수 있는 ‘시장의 어른’ 같은 분”이라며 “특히 시장이 어려울 때 적극적으로 나서 의견을 말해 줄 때 위로가 되곤 한다”고 말했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열정 불태우는 베테랑 애널들

조윤남 대신경제연구소 대표는 한국 퀀트 애널리스트의 ‘전설’이다. 우리투자증권·신한금융투자·대신증권 애널리스트를 거쳤다. 대신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을 역임할 당시 국제 공인재무분석사(CFA) 한국협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한 리서치센터장은 “조 대표는 한국 퀀트 분석의 기초를 마련하고 증권 분석의 한 분야로 뿌리내리게 한 애널리스트”라고 평가했다.
조윤남 대신경제연구소 대표. 사진=한국경제신문
조윤남 대신경제연구소 대표. 사진=한국경제신문
또 다른 전설적 퀀트 애널리스트인 이원선 트러스톤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언급한 리서치센터장도 있었다. 이 리서치센터장은 대우증권에서 경력을 시작해 토러스증권과 트러스톤자산운용에서 리서치센터장을 역임했다. 이 CIO를 언급한 리서치센터장은 “이원선 CIO는 한국 최초의 여성 리서치센터장이었다”며 “계량 분석은 숫자를 분석하며 전략을 세우는 특징이 있는데 이 CIO는 숫자 만으로 읽을 수 없는 변화를 사회·경제 트렌드와 접목해 전략을 수립해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보고서에 담아내 무릎을 탁 쳤던 적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원선 트러스톤자산운용 CIO. 사진=한국경제신문
이원선 트러스톤자산운용 CIO. 사진=한국경제신문
지금은 고인이 된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를 언급한 리서치센터장들도 다수였다. 곽 애널리스트는 시황 부문에서 여러 차례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오른 바 있다. 한 장짜리 보고서인 ‘곽현수의 생각해 볼만한 차트’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 리서치센터장은 그를 “와이셔츠가 늘 땀에 젖어 있을 만큼 열심히 뛰는 애널리스트”였다고 기억했다. 그는 “서울대를 졸업한 똑똑한 친구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던 태도가 훌륭했던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또 다른 리서치센터장은 “길 가다 마주치면 늘 힘들다고 소주 한잔 사달라고 했는데 너무 빨리 잃게 돼 슬프고 황망하다”며 “항상 시장에 대해 고민하고 몸이 힘들어도 머리로 대응해 왔던 훌륭한 후배였다”고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언급됐다. 한 리서치센터장은 “2018년 리서치센터장에 선임된 이후 지금까지도 자동차 부문에서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며 “본인의 전공 섹터를 계속 발전시키며 전문성을 유지하는 모습이 동료와 후배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고 추천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사진=한국경제신문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사진=한국경제신문
김성인 키움증권 애널리스트와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도 존경받는 애널리스트로 리서치센터장들의 추천을 받았다. 한 리서치센터장은 “김성인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 출신으로 늦깎이로 애널리스트에 입문해 수년간 베스트 애널리스트 차지한 입지전적 인물”이라며 “산업과 기업에 대한 정보력에서 월등했고 기관투자가 대상 마케팅의 달인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리서치센터장은 “이상재 애널리스트는 6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끝까지 열정을 유지하며 자료와 세미나도 열심히 하신 분”이라며 “한국도 선진국처럼 열정적인 베테랑들은 충분히 애널리스트로서 오랫동안 시장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분이고 그 덕분에 최근 비슷한 분들이 늘고 있다”고 강조했다.

화학·정유 업종을 분석했던 이응주 전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기관투자가들에게 A부터 Z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기초 세미나에 특별한 강점을 보유한 애널리스트로 꼽혔다. 그를 추천한 리서치센터장은 “산업과 기업의 기초 세미나는 애널리스트들의 노력이 가장 많이 투자되는 부분임에도 근무 기간 동안 꾸준히 여의도 자본 시장업계의 화학·정유 업종 가정 교사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며 “산업과 기업 분석에서 해당 산업만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전공인 경제학 분야의 거시적 흐름을 해당 산업과 기업의 분석에 활용했다는 점에서 새로 시작하는 애널리스트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동료”라고 말했다.

또 다른 리서치센터장은 “통신 분야에서 오랫동안 ‘베스트 애널리스트’를 지키고 있는 김홍식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후배들에게 늘 본받으라며 예를 들어 언급하는 분”이라며 “통신업의 특성상 많지 않은 커버리지에도 불구하고 사내 최고 수준의 양적인 리포트를 발간하고 있고 특히 마케팅 적인 측면에서도 고객과의 접점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KB증권 김효진 애널리스트는 경제와 기술의 변화를 아우르는 명작을 많이 남긴 애널리스트로 추천 받았다. 한 리서치센터장은 “김 애널리스트의 보고서 중 ‘중국산 대 미국산(Made in China vs Made in America), 헤게모니 전쟁의 시작’은 2018년 4월 미국과 중국의 기술 전쟁이 단순한 무역 전쟁이 아니라는 것을 분석한 시대를 앞서간 보고서였다”며 “일반적인 이코노미스트의 수준을 넘어선 깊이 있는 분석으로 애널리스트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 밖에 최남곤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와 지인해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 또한 동료들에게 귀감이 되는 애널리스트로 리서치센터장들의 추천을 받았다. 이들은 업무 열정과 논리력·문장력·발표력 등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다는 평가와 함께 동료 애널리스트들에게 좋은 자극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