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해진 콘텐츠 생산 주체와 장소…‘풀랫폼 시장’ 열리고 인플루언서 소속사도 생겨

단오에 산에 올라 추천하고(그네 타고).[독일 MARKK 소장]
단오에 산에 올라 추천하고(그네 타고).[독일 MARKK 소장]
화가 김준근은 생전에 조선 화단에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다. 그런 그의 작품 1000여 점이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 해외 유명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외국인이 가장 자주 접하는 조선 풍속화가가 바로 김준근이다. 왜 일까. 그는 조선 최초 개항지인 제물포와 부산에서 그림을 그렸다. 배를 타고 입국·귀국하던 외교관·선교사들은 여기에서 조선 그림을 사갔다. 조선의 혼례·그네뛰기·널뛰기·씨름·풍경 그림은 이렇게 해서 세계 각국에 퍼지게 됐다. 그의 이름을 달고 말이다. 포지셔닝이 이렇게 중요하다.

미디어 산업도 새로운 먹거리,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등장하고 있다. 4차 산업학명, 정보기술(IT)의 큰 파도에 몸을 실을 때다. 이 중요한 시기에 미디어 콘텐츠는 지금 어디에 포지셔닝하고 있을까, 어디에 자리를 잡아 장사를 하고 있을까. 1.프로그램이 아니라 프로그램 제작 노하우를 판다
Mnet의 음악 예능 ‘너의 목소리가 보여’ 포맷은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18개국에 판매됐다.[CJ ENM]
Mnet의 음악 예능 ‘너의 목소리가 보여’ 포맷은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18개국에 판매됐다.[CJ ENM]
요즘은 방송 프로그램 그 자체뿐만 아니라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노하우도 사고판다. 프로그램 포맷 바이블은 특정 방송 포맷에 대한 제작 과정 노하우와 각종 관련 분야의 음악·세트·의상·자막을 어떻게 만드는지 정리한 제작 매뉴얼이다.

프로그램 안에 쓰인 각종 디자인·그래픽·아이템·음악·예산안·편성 기획·마케팅 저작권·홍보·캐스팅 등 디테일한 가이드가 다 모여 있다. 포맷을 구매하면 그 프로그램 PD가 프로그램 제작을 관리·모니터링·지원해 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프로그램도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가 된 것이다.

그렇다. 이제는 결과물뿐만 아니라 결과물을 제작하는 전 과정, 기획, 회의 방식, 자료에 녹여진 노하우도 수익을 발생시키는 자산이다. 프로그램·기사·작품 등 콘텐츠를 완성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정확한 기록으로 잘 남겨 둬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2. 콘텐츠를 만드는 주체도 다양, 콘텐츠를 활용하는 장소도 다양
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다…미디어 산업의 새 먹거리 4[테크트렌드]
TV 시절에는 연출자가 출연자를 섭외해 방송을 만들었다. 작가도 따로 있고 촬영 팀도 따로 있다. 유튜브 시대는 출연자가 연출자·편집자를 섭외해 콘텐츠를 만들거나 혹은 스스로 연출·편집·촬영을 다 한다. 어디 그 뿐일까. 광고도 스스로 따온다.

1인 크리에이터는 기획·제작·유통을 다 혼자 한다. 전문성이 부족하고 완성도가 낮을 수 있다는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다. 1인 크리에이터가 콘텐츠를 제작하는 전 과정을 이해하고 알게 된다. 자기 전문에만 매몰되지 않고 다른 여러 분야도 얕게나마 배울 수 있다. 콘텐츠 제작자의 브랜드가 플랫폼 역할을 하는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거대 회사에 얽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 스스로 브랜드가 돼 사업 범위를 자유롭게 확장할 수 있다.

방송 제작을 하던 제작사들은 유튜브·소셜 미디어 채널을 별도로 개설하기도 한다. 정규 TV 방송 후, 방송 말미에 이런 메시지가 종종 보인다. ‘못다 한 이야기는 유튜브 라이브에서 이어집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는 유튜브에서’, ‘감독판은 유튜브에서’, ‘메이킹 포토는 인스타그램을 보세요.’ 같은 소스지만 보다 자유롭고 캐주얼한 이야기들은 소셜 미디어판에서 ‘재향유’된다.

콘텐츠를 처음 기획할 때부터 원 소스 멀티 유스를 감안해야 하고 다양한 하드웨어 디바이스도 고려해야 한다. 특정 콘텐츠를 좋아할 소비자가 많이 이용하는 플랫폼·디바이스마다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콘텐츠를 유통시키는 능력도 콘텐츠를 만드는 능력만큼이나 중요해졌다. 3. 플랫폼 저널리즘인플루언서와 팬을 연결해 주는 플랫폼 서비스도 늘고 있다. 팬 층이 두꺼운 대기업 제품 디자이너, 특정 언론사 회사 울타리 안에 있던 기자들이 콘텐츠 소비자와 직접 만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광고 감소, 구독자 침체, 경기 침체가 이어지자 인플루언서들이 직접 구독자·팬과 소통하려는 니즈가 늘었다. 이들은 ‘뉴스레터 플랫폼’에서 서로 직접 만난다.

플랫폼 저널리즘은 뉴스레터를 보낼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는 크리에이터와 이들에게 생생한 뉴스를 받고 싶은 독자를 연결해 준다. 플랫폼 안에 광고도 탑재해 수익성도 키운다. 미국의 뉴스레터 플랫폼인 서브스택(Substack)은 프리랜서 기자나 작가들에게 일정 수수료를 받고 뉴스레터를 제공할 유통망을 열어 준다. 미국의 유명 기자들이 많이 합류하고 있다. 전문성과 필력이 있는 기자나 작가들은 콘텐츠 작업에 몰두하고 플랫폼은 광고 유치, 독자 관리, 인프라 제공을 협업한다. 이미 여러 미국 테크 저널리스트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이 치열하다.

이제 점점 더 기자 개인의 전문성·개성·스타성·고유성이 중요해진다. 매체가 아니라 ‘기자’를 구독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4. 인플루언서 소속사연예인들이 소속사에 들어가듯이 유명해진 인플루언서들도 소속사에 들어간다. 소셜 미디어 시대, 이제는 모든 국민이 연예인이자 작가이자 PD다. 원래 학생이었더 사람, 회사원이었던 사람, 기자였던 사람, 교수였던 사람, 의사였던 사람 등 할 것 없이 ‘인플루언서’가 되면 꼭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소속사가 생길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인플루언서 매니지먼트 비즈니스가 이미 큰 사업이다. 핫 인플루언서들은 회사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하고 창작 활동을 이어 간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에이전트와 매니저들은 비용을 절감하려는 광고주와 협상하고 취소된 행사를 대체할 다른 수익원을 찾아 준다. 팬들을 관리하고 규모 있는 아이템을 기획하고 TV나 다른 매체 진출 전략을 수립하는 등 인플루언서의 업무를 적극 지원해 준다.

할리우드의 유명 에이전트인 UTA의 디지털 매니지먼트 부분 공동 대표였던 그레그 굿프리드도 2020년 10월 회사를 옮겨 유명 인플루언서의 매니지먼트 사업을 이끌고 있다. 인플루언서 비즈니스가 미국 미디어 시장에서 얼마나 가능성을 높게 평가 받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인류가 전염병과 싸우는 시기에 꼭 다양한 새로운 것이 탄생했다.
흑사병이 유행했던 1590년 극장 폐쇄 시기에 셰익스피어는 왕성한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흑사병이 재유행한 17세기 케임브리지가 휴교하자 뉴턴은 시골 고향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거기에서 만유인력의 원리를 발표했다. 코로나19 사태와 싸우느라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 지금, 사람들이 미디어를 향유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절호의 기회다. 미디어 산업의 새 비즈니스 기회에 에너지를 쏟아 보자.

정순인 ‘당신이 잊지 못할 강의’ 저자·IT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