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40년 통계 살펴보니

전문가 5인의 부동산 시장 전망
집값 3~4년간 40%까지 빠질 수도
빠진 만큼 반등…비인기 지역 장기 침체 가능성

서울 아파트 아직도 부족
양극화 현상은 심해질 듯

[부동산]
서울 남산에서 내려다본 강남, 용산, 마포 등 부동산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남산에서 내려다본 강남, 용산, 마포 등 부동산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지난해만 해도 자고 일어나면 1억원씩 올랐다는 소식이 연이어 보도됐다. 집값 급등에 위기감을 느낀 3040세대는 고점에 집을 샀다. 금융감독원과 통계청의 자료를 종합해 보면 2022년 1분기 기준 3040세대 5명 가운데 1명꼴로 주택 담보 대출을 가지고 있다.

내 집 마련은 모두의 꿈이다. 2년마다 주거 고민을 하는 무주택자들은 자신 명의로 된 집을 원한다. 이미 집이 있는 유주택자들은 더 넓은 평수, 더 좋은 인프라가 갖춰진 곳으로 이동하고 싶다.

그런데 올해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억원씩 오르고 있다더니 이제는 역대급 거래 절벽이란다. 신문과 방송에선 ‘아파트 실거래가 더 떨어졌다’, ‘고금리에 꺾인 내 집 마련 꿈’, ‘강남 불패도 흔들’ 등의 뉴스가 연일 올라온다. 주변 영끌족(무리하게 대출받아 집을 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집값은 떨어지는데 금리가 상승하면서 매월 갚아야 할 이자는 늘었다.

모두가 궁금한 집값의 향방,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과거 통계도 들여다봤다.
40년간 우상향한 서울 아파트
자료 : KB부동산 가공 ※2022년1월=100, 1986년~2021년 말 기준
자료 : KB부동산 가공 ※2022년1월=100, 1986년~2021년 말 기준
먼저 통계로 살펴보자. 한국의 인기 주거 형태는 아파트다.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은 서울이다. 단순하게 가정해 보자. 60세인 A씨가 20년 전 대출을 끼고 서울 지역 아파트 한 채를 구매한 후 현재도 보유하고 있다면 이익일까.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1980년대 중반 이후 40년간 우상향했다. 부동산R114 REPS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2003년 말 3.3㎡당 1136만원에서 2021년 말 4317만원까지 올랐다. 99㎡(30평) 아파트라고 가정하면 3억4000만원 아파트가 12억9000만원이 된 것이다.

짚고 가야 할 점. 우상향 추이가 언제나 가격이 올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2020~2021년. 40년간 큰 폭으로 급등한 시기가 세 번 있었다면 1990년대 초, 1997년 말 외환 위기 이후,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등 큰 폭으로 떨어졌던 시기도 있었다.

집값을 결정하는 변수는 셀 수 없다. 주택의 수요와 공급, 경기 여건, 정부 정책은 물론 코로나19 사태 같은 외부 변수까지 집값에 영향을 준다. 변수가 무궁무진하고 지역에 따라 상황이 달라 통계를 해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오른 이유를 단순하게 정리하면 경기가 좋고 주택 수요자가 넘칠 때는 집값이 올랐다.

우선 1980년대 후반. 3저(저유가‧저환율‧저금리) 호황과 88올림픽 특수 등으로 경기가 좋았고 유동성이 넘쳐났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가 경제 활동의 중심축으로 떠오르며 주택 수요도 증가했다. 집값이 치솟았고 주택 공급 부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결국 노태우 정부가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을 발표했는데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 등 갑작스러운 글로벌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집값이 떨어졌다.

다음은 2008년. 노무현 정부의 5년 규제 시대를 막 거친 한국 부동산 시장에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가 덮쳤다. 당시 미분양 아파트는 2만 채를 웃돌았고 분양된 아파트조차 입주자들이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사례가 잇달았다. 서울 아파트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침체에 접어들었다. 강남 대장 아파트들의 실제 매매 가격도 떨어졌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2008년 초 18억6000만원이던 압구정 현대아파트(전용 면적 141㎡)는 2013년 초 13억2300만원까지 하락했다. 같은 기간 10억4500만원이던 대치 은마아파트(전용 76㎡)도 3억원 이상 빠졌다.

그러다 2020~2021년 집값이 큰 폭으로 뛰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한 각국의 저금리 정책과 넘쳐나는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에 몰렸다. 부동산R114 REPS에 따르면 2019년 말 3.3㎡당 2905만원이던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이 2021년 말 4317만원으로, 48.6% 상승했다. 같은 기간 소득 대비 집값도 빠르게 올랐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중위값(3분위)을 기준으로 한 서울의 소득 대비 주택 가격(PIR)은 2019년 말 13.6에서 2021년 말 19.0으로 뛰었다. 2021년 말을 기준으로 해석하면 서울에서 중간 소득 가구가 평균적인 가격대의 주택을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19년 걸린다는 의미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언제까지 얼마나 떨어질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이 오랜 격언이 최근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보여지고 있다. 역대급 물가를 잡기 위한 각국 정부의 금리 인상 정책과 경기 침체 우려 등이 부동산 경기 둔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락기에 접어든 것은 알겠다. 언제 다시 오를까. 한경비즈니스가 부동산 전문가 5명에게 ①언제까지 얼마나 떨어질지 ②고려해야 할 변수는 무엇인지 ③서울 아파트 공급량은 충분한지 ④실소유자의 매수 적기는 언제인지 등 4가지 질문을 던졌다.

조사 결과 “아파트 가격이 30~40% 정도 떨어지고 다시 반등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지난해와 올해 달라진 변수는 금리밖에 없다. 금리는 영원히 오르지는 않는다. 일반 아파트는 30% 정도 떨어진 후 반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하락 속도가 빠르단 얘기는 하락 기간이 짧아지고 반등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금리 등 변수에 따라 1년 만에 빠르게 떨어지느냐, 3년에 걸쳐 30%가 떨어지느냐의 차이만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종합부동산세 과세 체계가 주택 수 기준에서 가액 기준으로 전환되면서 다주택자의 세금 부담이 줄어들고 금리 인상과 집값 조정에 대한 기대감이 매수 심리를 저지하고 있다”며 “향후 1년 정도는 조정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이어 “물가 인상기엔 금리가 올라 부동산은 단기적으로는 약세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부동산은 물가만큼 오른다”고 설명했다.

반면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아파트 가격의 하락선이 30~40% 정도인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브이자(V) 반등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의견을 보였다. 그는 “상승 추세가 꺾이고 있어 4~5년 정도는 하락 국면으로 판단한다”면서도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일본처럼 L자형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의 잠재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고 일본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지방의 아파트 가격은 제자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셈”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금리 외에 다른 변수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향후 정부가 아무리 금리를 내려도 다른 변수가 나빠지면 집값은 반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 회복 기대감이 낮고 수요가 공급보다 적으면 금리가 낮아져도 집값은 오르지 않는다.

김영익 교수는 잠재 성장률·인구·소득 등을 주요 변수로 꼽았다. 그는 “한국의 잠재 성장률이 떨어지면 임금 상승률도 낮을 수 있다”며 “아파트 가격이 아무리 하락해도 30~40%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과 같은 소득 수준으로는 미래에도 서울 아파트를 사기 쉽지 않다. 즉 주택 수요가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시장에 대한 세 가지 시각들
서울 아파트, 충분한가?
서울의 아파트 공급량에 대해선 “부족하다”며 용적률을 올려주고 임대 아파트 공급을 늘리는 등 방법으로 “재건축‧재개발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김인만 소장은 “서울 인구가 1000만 정도인데 주택은 2만 호 정도만 공급된다. 인구가 비슷한 경기도가 10만 호, 인구 300만 명인 인천이 2만~3만 호 공급되는 것과 비교하면 서울의 공급은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은 “새정부에서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정책을 펴면 어느 정도 공급이 이뤄지겠지만 지금 계획한 것은 공공이 아닌 민간 주도의 개발이기 때문에 예측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은 신축 빌라, 1동짜리 도시형 생활주택‧오피스텔만 늘어나고 있다”며 “단기에 대단지 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하기가 쉽지 않다. 공급 부족이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돈 빌려 집 살 시기 아니지만, 강남은 괜찮다?
전문가들은 “돈을 빌려 집 살 시기는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김영익 교수는 “채권, 주식, 부동산 시장이 차례로 붕괴되고 있다. 내년에 세계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 빠질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5년간은 관망하기를 권했다.

김인만 소장과 박원갑 위원은 “금리 인상에 대한 시장의 불확실성이 제거됐을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면 서진형 교수와 이은형 연구위원은 서울 주택 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더 두드러질 것이라고 예상하며 강남 등 지역에 대해선 “현재 부동산 가격이 가장 낮다”고 주장했다. 인기 지역의 주택은 ‘안정 자산’으로 인정받아 금리 인상이나 경기 침체기에도 오히려 가격 강세가 나타날 것이란 분석이다.

이은형 연구위원은 “강남 고가 아파트 인근 부동산에 가 보면 사려는 사람들이 줄 서 있다”며 “강남권 일부 지역에 걸린 토지거래허가제, 대출 규제 등으로 매매 거래 자체가 억눌렸을 뿐 강남 집값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양극화 현상에선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