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함께 일하는 ‘협동 로봇’으로의 가치 커져…ABB·키노바·페스토 등의 기술 ‘주목’
산업용 로봇은 1960년대부터 제조 공정에 주로 사용돼 왔다. 구조도 다양하다. 직교형 로봇에서 스카라(SCARA) 로봇, 수직 다관절(articulated) 로봇까지 진화해 왔다. 다양한 산업용 로봇들 중에서 사람의 팔처럼 6 자유도(degree of freedom) 이상의 동작을 할 수 있는 수직 다관절 로봇은 쉽게 말해 ‘로봇 팔’로 불리기도 한다.첫 등장 이후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로봇 팔의 진화는 줄곧 힘·정밀도·속도 등의 기능 향상에 초점을 뒀다. 오늘날 ABB·화낙 등 글로벌 산업용 로봇 기업들이 만드는 로봇 팔들의 작업 중량(load capacity)이나 가반 하중(들어올릴 수 있는 최대 무게, payload), 즉 로봇이 들거나 옮기는 식으로 다룰 수 있는 물체의 중량은 수 kg대에서 최대 수천 kg대에 달한다. 화낙의 대형 산업용 로봇인 M-2000iA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맞먹는 무게인 2.3톤의 물체를 들어올릴 수 있다.
또한 로봇 팔은 같은 작업을 수없이 반복해도 정확하게 정해진 위치나 자세에 맞춰 작동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만드는 산업용 로봇 팔들이 같은 동작을 반복 수행할 때 정해진 위치에서 벗어나는 오차 범위는 ±0.01mm 이내에 그칠 정도다.사람 10명보다 무거웠던 로봇 팔, 작고 가볍게 진화 로봇 팔은 강력한 힘과 높은 정밀도 등 우수한 성능을 지녔지만 로봇 팔 시장을 확장하는 데는 몇 가지 제약 사항이 있었다. 일단 로봇 팔은 크기가 커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로봇 팔의 무게도 사람이 쉽게 옮기거나 다루기 힘들 정도로 무겁다. 그래서 공정 변화에 맞춰 로봇의 위치를 바꾸려면 충분히 넓은 공간을 새로 확보해야 하고 옮겨 설치하는 데도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
예를 들어 화낙의 작업 중량 35kg급인 로봇 팔 CR-35iA는 높이 2.8m, 폭 2.9m이고 무게는 컨트롤 박스를 제외하더라도 사람 10명보다 무거운 990kg에 달한다. 2.3톤의 물체를 들어올릴 수 있는 화낙의 로봇 팔 M-2000iA는 높이 4.7m, 폭 4.6m, 컨트롤 박스를 제외한 팔의 무게만 1.1톤에 달하는 대형 고중량 로봇이어서 웬만한 공장에는 설치하기도 힘들 정도다. 빠르고 강력하게 작동하는 거대한 로봇 팔이 안전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은 아주 높다. 그래서 산업용 로봇 팔이 설치된 대형 공간은 사람이 출입할 수 없는 로봇 전용 공간으로 설치되므로 공간 효율성도 나쁜 편이다. 대형 공장을 가진 기업 외에는 로봇 팔을 사용하기 힘들었다.
로봇 팔의 시장을 확장하기 위한 개발은 2000년대 들어 가속화되고 있다. 로봇 팔의 진화는 기존 제약 조건을 넘어설 수 있는 소형화, 성능 향상, 경량화 등에 목표를 두고 추진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로봇 팔은 사람의 팔처럼 작고 가벼우면서도 사람 팔보다 훨씬 강력한 힘과 속도를 가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께부터 보다 작고 사람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로봇 팔, 즉 협동 로봇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협동 로봇은 사람과 함께 작업할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가벼운 동시에 강화된 안전 기능을 갖췄다. 협동 로봇은 근접 센서 등을 장착해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작업할 때는 작업 속도를 늦추고 사람이 가까이 접근하면 동작을 멈추거나 로봇 팔을 접는 등 기존 로봇 팔에는 없던 안전 기능이 적용돼 있다.
협동 로봇 시장은 유니버설 로봇이 모델 UR5를 필두로 가반 하중 3~10 kg급의 소형 로봇 팔들을 출시하면서 시작됐다. UR의 로봇 팔들 중에서 가장 작은 UR3e는 가반 하중이 3kg에 불과하지만 크기가 사람 팔보다 짧은 50cm 수준이고 로봇 팔의 무게도 11.2kg에 불과하다. 컨트롤 박스, 티칭 펜던트를 포함한 총무게도 24.8kg에 그쳐 비록 사람 팔보다는 무겁지만 기존 로봇 팔들보다는 훨씬 가볍다. 작고 가벼워 일반 책상에도 설치할 수 있게 된 덕분에 로봇 팔의 수요처는 중소기업에서 심지어 소규모 작업실만 가진 개인으로 확장됐다.
비록 소형화와 안전 기능 덕분에 고객 확장성 측면에서는 우수한 협동 로봇이지만 성능상의 취약점은 또다른 제약 조건으로 작용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협동 로봇의 가반 하중은 10kg대에 그쳐 무거운 물체를 다룰 수 없었고 작업 정밀도도 0.03~0.05mm 수준이어서 고정밀 작업에는 사용하기 힘들었다. 2차 변화의 초점은 힘·정밀도·속도의 향상 최근에는 가반 하중·정밀도·동작 속도 등 작업 성능의 향상을 중심으로 로봇 팔이 진화하고 있다. 먼저 가반 하중 10kg의 벽을 넘어선 로봇 팔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유니버설 로봇은 2019년 가반 하중을 16kg으로 높인 UR16e를 출시한 데 이어 2022년 6월 20kg급의 UR20e를 출시했다. 유니버설 로봇의 로봇 팔들은 가반 하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0.03mm의 작업 정밀도와 초속 1~2m의 동작 속도는 기존 로봇 팔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산업용 로봇 수준의 작업 정밀도와 동작 속도를 갖춘 로봇 팔도 등장했다. 2021년 ABB가 출시한 가반 하중 4kg의 로봇 팔인 스위프티 CRB 1100은 작업 정밀도 0.01mm, 동작 속도 초속 5m를 자랑하는 고정밀 고속 로봇 팔이다.
로봇 팔은 소형화에 이어 성능 향상 측면에서도 진화했지만 여전히 너무 무거운 편이다. 로봇 팔보다 가벼운 사람의 팔은 20kg 중량의 물체도 들 수 있지만 가반 하중 20kg급인 로봇 팔 UR20의 무게는 사람만큼 무거운 64kg에 달하고 컨트롤 박스를 포함한 총중량은 사람보다 무거운 76kg에 이를 정도다.
최근에는 성능 향상과 함께 경량화도 추진되고 있다. 키노바는 탄소 소재 등을 이용해 UR보다 더 가벼운 로봇 팔을 개발했다. 가반 하중 4kg, 팔 길이 89cm인 키노바의 로봇 팔 젠 3의 무게는 7.2kg에 그쳐 가반 하중 3kg의 UR3e(총중량 24.8kg)보다 훨씬 가볍다. 가반 하중 2.6kg, 팔 길이 99cm인 젠 2의 무게는 4.4kg에 불과해 사람의 팔보다 가볍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로봇 팔의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유체 에너지를 이용해 기계적인 작업을 하는 기기)의 경량화도 추진되고 있다. 액추에이터는 사람의 근육처럼 로봇 팔, 다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원이다. 로봇 팔에 사용되는 전통적인 액추에이터는 전기 모터와 감속기의 조합으로 구성되는데 전기 모터를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액추에이터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독일 페스토는 지난 5월 협동 로봇보다 더 가벼워진 로봇 팔을 공개했다.
페스토의 가반 하중 3kg, 팔 길이 67cm의 로봇 팔은 컨트롤 장비를 포함한 총중량이 불과 17kg라고 한다. 동등한 가반 하중의 UR3e보다 팔이 더 길면서도 무게는 30%나 줄인 것이다. 경량화의 비결은 다이캐스트 알루미늄과 새로운 방식의 액추에이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페스토는 전기 모터, 감속기 대신 공기압을 이용한 원형 챔버 방식의 드라이브를 사용했다고 한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데니스 홍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 교수가 이끄는 로멜라연구소는 ‘베어(BEAR : Back-drivable Electric Actuator for Robotics)’라는 신개념 액추에이터를 개발하고 있다. 동물 근육처럼 탄성을 이용해 위치와 힘을 조절하므로 걷고 뛰는 동작에 적합할 것으로 기대 받는 베어는 로봇 팔의 경량화에도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진석용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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