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ESG 최전선

[ESG 리뷰]
모빌리티 혁신 가능성 보여준 ‘9유로 티켓’
독일에서는 지금 9유로 티켓이 장안의 화제다. 독일 연방 정부가 에너지 부담 경감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한 대중교통 정책이다. 저렴한 티켓으로 대중교통 이용을 독려하면서 에너지 절감은 물론 긍정적 기후 영향을 목표로 한다. 주말마다 독일 근거리 기차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근교나 휴양 도시로 가려는 시민들이다.

지난 5월 19일 독일 연방의회는 9유로 티켓 정책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 고유가와 물가 상승에 직면해 독일 정부가 내놓은 부담 경감 패키지(entlastungspaket)다. 해당 정책에는 난방비 보조금, 장거리 통근자 통근 수당, 에너지 보조금 등 다양한 지원책이 포함되지만 9유로 티켓이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독일은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간 대중교통 티켓을 월 9유로에 판매하고 있다. 월 9유로로 버스·지하철·트램·도시철도·근거리 기차까지 모두 이용할 수 있다. 한국으로 치면 KTX 같은 고속열차와 장거리 고속버스를 제외하고 모든 대중교통을 탈 수 있는 셈이다. 9유로 티켓은 독일 전역에서 유효하다. 근거리 기차를 이용하면 도시 간 이동도 가능하다. 수도 베를린에서는 대중교통 한 달 티켓 가격이 86유로다. 9유로 정책이 독일 전역에서 유효하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다.

독일 연방 정부는 “대중교통 사업자는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면서 대중교통 이용의 장점을 보여주고 지역 정부는 대중교통 가격에 따른 이용자 규모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시민은 기존 이동 습관을 재고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다. 결국 3개월은 기후 친화적 모빌리티를 실제로 테스트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9유로 티켓을 타고 갈 수 있는 ‘여행 코스’도 등장했다. 근거리 도시 간 기차를 여러 번 환승하면서 휴양지까지 도달하는 코스다. 정책 적용 기간이 딱 여름휴가 기간인 점도 작용했다. 예를 들어 베를린에서 독일 최고 휴양지 질트섬까지는 8~9시간, 뮌헨에서 질트섬까지는 16시간 걸린다. 독일에서 출발해 근교 오스트리아나 프랑스·폴란드까지 가는 기차도 이용할 수 있다.

9유로 티켓은 판매를 시작한 지 한 시간 만에 20만 장이 팔렸다. 독일철도(DB) 티켓 시스템에서만 집계한 수치다. 독일철도 측은 “운영 시스템에 역사적 규모의 접속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수요가 많을 것으로 보이는 노선에는 추가 기차를 배치하고 운영 인력도 늘렸다. 주말마다 기차가 과부화되자 독일철도는 주말 ‘여행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독일 연방 정부 디지털 및 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6월 14일 기준 전국적으로 1600만 장 이상의 티켓이 판매됐다. 연방 정부는 “티켓 구입 이유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의 70%가 저렴한 티켓 비용, 50% 이상이 자가용 사용 중지, 12%가 대중교통 이용 테스트라고 답했다”며 “9유로 티켓 정책은 이미 큰 성공을 거뒀다”고 자평했다.

모빌리티 재구성의 기회

이 정책은 사실 에너지 절감 정책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중교통 이용 확대에 따른 기후 정책적 요소도 크다. 독일은 현재 지역별 통근자 데이터를 모두 보유하고 있어 이동 습관의 변화에 따른 환경적 결과를 산출하는 것도 빠르다.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독일 직장인의 68%가 자동차로 출퇴근하고 있다. 14%는 지하철·트램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10%는 자전거, 6%는 도보로 이동한다. 연방환경청의 데이터에 따르면 자동차를 이용하는 통근자가 모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하루에 탄소 2130만 톤이 감축된다.
독일 정부에서 에너지 부담 경감 패키지로 내놓은 9유로 티켓.사진=이유진 기자
독일 정부에서 에너지 부담 경감 패키지로 내놓은 9유로 티켓.사진=이유진 기자
독일 전체 교통량 중 자동차의 비율은 57%이지만 교통에 따른 전체 탄소 배출의 75%를 차지한다. 전기차 전환의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자동차 이용에 따른 탄소 배출의 비율이 높다. 연방환경청은 중부독일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중교통이 지금 모든 통근자의 수요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앞으로는 통근길에 전기로 움직이는 개인 교통수단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연방 정부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0% 이상이 자동차 운행 대신 9유로 티켓을 선택했다고 답했다. 단기간이지만 9유로 티켓의 효과가 기대되는 이유다.

한편 독일도시학연구소 위르겐 기즈 연구원은 “9유로 티켓은 대중교통 인프라가 이미 탄탄한 지역에서 높은 수요를 얻을 것”이라며 대중교통 인프라가 열악한 농촌과 변두리 지역에서는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단기간의 정책이 아니라 장기적 투자를 통해 소도시와 농촌 지역의 대중교통 인프라를 더욱 향상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처럼 독일은 9유로 티켓을 계기로 전 국토의 모빌리티 이용 습관과 정책·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돌아보고 있다. 특히 에너지 효율적이고 환경 친화적 도시 모빌리티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이번 3개월은 훌륭한 시험대다.

공유 모빌리티에는 마케팅 기회

9유로 티켓 열풍을 타고 공유 모빌리티 플랫폼 마케팅도 주목받았다. 사실 공유 모빌리티 플랫폼에는 9유로 티켓 출시가 치명적이다. 단기적으로는 사용자 감소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독일 자동차 공유 플랫폼은 2명 이상 사용 시 대중교통보다 저렴하다는 것이 큰 강점이었지만 그 장점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전기스쿠터·전기오토바이·전기자전거 등 공유 플랫폼인 프리 나우(Free Now)는 오히려 9유로 티켓 열풍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9유로 티켓 시작 전날과 당일 베를린에서 대대적인 홍보 행사를 열었다. 알렉산더 묀히 프리 나우 사장은 “9유로 티켓 출시는 대안적 이동 수단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완벽한 기회”라며 “자동차 소유에 대한 모든 종류의 대안은 도시의 부담을 덜어 준다”고 말했다. 대중교통과 공유 모빌리티의 시너지 효과를 강조한 것이다. 사용자 감소가 예측됨에도 전체 모빌리티 플랫폼의 전환을 이끄는 장기적 안목을 나타냈다. 대중교통도 어떤 면에서는 ‘공유 모빌리티’인 셈이다.

과부하 기차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있지만 9유로 티켓에 대한 시민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특히 환경 영향에 고유가로 자동차 유지를 망설이던 시민들에게 전환의 좋은 기회가 됐다는 평가다. 일부 정치권과 환경 단체 등에서는 저렴한 대중교통 티켓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365유로 티켓이다. 하루 1유로로 1년간 독일 전역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베를린 기준 성인 1인의 1년권 가격은 약 706유로다.

독일 환경단체 ‘독일환경지원(Deutsche Umwelthilfe)’은 지난 5월부터 이미 9유로 티켓에 이은 365 티켓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독일환경지원은 “기차·버스·트램은 장기적으로 저렴해야 한다. 또 연방 정부는 수십 년 동안 방치된 지역의 대중교통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주정부와 지방 당국을 지원해야 한다”며 “우리는 더 많은 버스와 기차, 더 적은 수의 자동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65 티켓 도입을 위한 청원에 12만 명 이상이 서명하는 등 시민의 호응도 또한 높은 상황이다. 독일환경청도 저렴한 연간 티켓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9유로 티켓이 독일 모빌리티 변화를 위한 마중물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1393호와 국내 유일 ESG 전문 매거진 ‘한경ESG’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더 많은 ESG 정보는 ‘한경ESG’를 참고하세요.)

베를린(독일)=이유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