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시나리오 전망한 IMF…글로벌 경제가 복잡할 수록 ‘원칙’있는 정책 펴야
7월 말 국제통화기금(IMF)의 중간 전망을 계기로 예측 기관들의 올해 하반기 이후 세계 경제 수정 전망이 마무리됐다. 올해 상반기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경제 봉쇄 조치,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등과 같은 대형 변수들이 유난히 많았던 만큼 종전의 전망과는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첫째, 오랜만에 시나리오 세계 경제 전망이 나왔다. IMF는 7월 전망에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지난 4월 지시했던 3.6%를 3.2%로 내려 잡는 가운데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되면 2.6%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비관 시나리오를 발표하면 으레 나오는 낙관 시나리오는 제시하지 않았다.
경제 변수는 예측(관리) 가능 여부에 따라 ‘통제 변수’와 ‘행태 변수’로 나뉜다. 7월 전망처럼 시나리오 전망은 전자보다 후자가 많을 때 제시한다. 하반기 이후 예상되는 행태 변수의 실체도 낙관 시나리오를 제시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지난 상반기 못지않게 불확실한 변수가 많다는 점을 시사한다.
둘째, 경제 권역별로는 신흥국 성장률을 선진국보다 덜 낮췄다는 점이다. IMF는 올해 성장률을 4월 전망 대비 선진국은 0.8%포인트, 신흥국은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세계은행을 비롯한 다른 예측 기관들도 비슷한 폭으로 조정한 가운데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투자 관점에서 신흥국이 유망하다는 견해까지 내놓았다.
선진국 대비 신흥국 성장률 하향 조정 폭이 좁다는 것은 하반기 이후에도 공급측 요인들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에서다. 대부분 신흥국은 부존자원국인 데다 1990년대 이후 급격히 진행돼 온 글로벌 추세에 따라 의식주와 관련된 주 생산국이다. 20년 전 브릭스에 대비해 ‘뉴 브릭스’가 떠오를 것이라는 시각도 눈에 들어온다.
미국과 중국의 성장 경로 확실히 다를 것
셋째, 국가별로는 경제 패권을 다투는 미국과 중국과의 성장 경로가 확연하게 차이가 날 것이라는 점이다.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은 지난 4월 3.7%에서 2.3%로 무려 1.4%포인트 하향 조정됐다. 내년 성장률 1%를 Fed가 추정한 잠재 성장률이 1.75%인 점을 감안하면 0.75%포인트의 디플레이션 갭이 발생해 경기 침체의 골이 더 깊어진다는 의미다.
반면 중국 경제는 올해 성장률이 3.3%로 낮아지겠지만 내년에는 4.6%까지 회복돼 미국 경제와 정반대의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10월 공산당 대회를 앞두고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모색할 가능성도 있어 내년 성장률은 목표 성장률인 5.5%에 도달할 수 있다는 예상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넷째, 인도 경제의 부상이다. 지난 4월에 비해 하향 조정됐지만 올해 성장률은 7.4%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중국이 인구에 이어 성장률까지 인도에 추월당한다면 양국 간 국경 분쟁이 재현될 수 있다는 경고는 하반기 이후에는 글로벌 지정학적 위험이 세계 경제를 짓누를 가능성이 높다.
올해 상반기 대형 변수들의 부담으로 모든 국가의 성장률이 하향 조정되는 가운데 유독 성장률이 상향 조정된 국가가 있다. 지난 4월 마이너스 8.5%까지 추락할 것으로 예상됐던 올해 러시아 성장률이 2.5%포인트 상향 조정된 마이너스 6.0%로 제시됐다. 하향 조정 폭이 가장 큰 국가가 미국인 점을 감안하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경제 제재 대결에서 승자를 ‘러시아’, 패자는 ‘미국’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다섯째, 세계 경제 최대 현안인 인플레이션은 올해 3분기를 정점으로 꺾일 것으로 예상한 점은 각국 중앙은행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미국은 이미 지난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9.1%를 계기로 인플레 정점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공급측 인플레 요인의 개선 속도가 빠르지 않아 세계 인플레가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까지 회복하려면 2024년 말에 가서야 가능할 것으로 봤다.
세계 인플레가 올해 3분기를 정점으로 안정된다면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속도는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3월 회의 이후 숨 가쁘게 금리를 올려 왔던 Fed는 7월 회의 때 0.75%포인트 인상을 고비로 9월 회의에는 0.5%포인트 인상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내년 성장률이 1%로 낮아진다면 금리 인상보다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시각까지 나온다.
여섯째, 지난해 10월 전망 이전까지 회원국에 ‘재정 폭주 열차’가 돼줄 것을 주문했던 IMF가 7월 전망에서는 ‘재정 준칙’을 강조한 점도 주목된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에 대비한 세계 총부채가 260%에 이를 만큼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인플레만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다간 디폴트에 빠질 회원국들이 급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가 부채 관리와 경기 부양을 동시에 추진하는 방안으로 ‘페이 고’와 같은 제3의 정책을 제시했다. 페이 고는 재정 지출 총량은 늘리지 않고 부양 효과가 적은 일반 경직성 경비 세목을 줄이고(pay) 부양 효과가 큰 투자성 세목은 늘려(go) 경기를 회복시키는 방안을 말한다.
7월 전망의 특징 가운데 IMF의 재정 주문은 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2020년 10월 문재인 정부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한국형 재정 준칙’을 발표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유튜브에 등장해 재정 준칙 개인 교습까지 해봤지만 여당과 야당이 모두 반대해 국회를 통과하기도 전에 사실상 자동 폐기됐다.
재정 준칙을 뜬금없이 발표한 그 자체부터 문제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매년 슈퍼 예상 편성과 수시 추경 편성을 통한 재정 지출로 국가 채무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주무 부서인 기획재정부는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다른 국가에 비해 낮은 점을 들어 재정이 건전하다고 반박해 왔기 때문이다..
때가 아닌 만큼 재정 준칙을 발표했다면 강도 있는 재정 건전화 의지를 담았어야 했다. 이마저도 지키지 않는다면 ‘무늬만 준칙’, ‘맹탕 준칙’이란 비판과 함께 테크니컬 디폴트에 빠져 있는 아르헨티나가 뒤늦게 재정 준칙을 도입하겠다고 해 ‘방만한 재정 지출의 면피용이 아니냐’는 국민의 원성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에서 ‘준칙(rule)’을 도입하는 것은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자유 재량적 여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의도에서다. 이 때문에 첫째, 법적 근거는 가능한 최상위법에 둬야 하고 둘째, 관리 기준은 엄격히 규정하고 적용해야 하며 셋째, 위반할 때에는 강력한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
홍남기팀이 남겨 놓은 재정 부담을 안고 추경호팀이 재정 준칙을 발표했다. 세계 3대 평가사가 한국의 국가 채무 위험성을 일제히 경고한 상황에서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준칙이 가져야 할 3대 원칙도 지키려는 의지가 역력히 배어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IMF의 재정 주문은 그 어느 회원국보다 우리가 참고해야 한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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