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구 없는 난관’에 빠진 현대인들…‘소중한 생각의 싹’을 튀우려는 희망 찾는다

느릿느릿 ‘슬로 콘텐츠’에 빠지는 이유 [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속도’란 단어와 콘텐츠가 이토록 밀접한 관계였던가. 최신작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속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빠른 스토리 전개와 다양한 반전의 연속으로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2016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가 한국에 들어온 이후 장르물이 늘어나며 벌어진 현상이다. 여기에 한국 OTT와 방송사도 잇달아 장르물 경쟁에 뛰어들고 있어 속도전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모두가 ‘빨리빨리’를 외치는 분위기지만 정작 ‘대박’이 났다고 할 만한 작품들은 속도와 무관해 보인다. 오히려 느릿느릿하게 흐르는 ‘슬로 콘텐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 제주도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등이 그렇다.

영상 시장만의 얘기가 아니다. OTT의 급속한 확산과 맞물려 사람들은 책과 더 멀어졌다. 하지만 이 와중에 몇십 만 부씩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나오고 있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슬로 콘텐츠에 속한다. 잠이 들면 입장해 원하는 꿈을 사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 서울 청파동 골목의 작은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 ‘불편한 편의점’, 동네에 독립 서점을 열고 꾸려 나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이하 휴남동 서점)’ 등은 모두 느리게 흐른다.

그렇다면 이 작품들은 왜 다 같이 폭주하듯 펼쳐지는 속도전에 동참하지 않는 것일까. 달리는 경주마 위에 한참 동안 올라타 있던 사람들은 왜 멈춰 서 슬로 콘텐츠에 빠져들고 있는 것일까.
느릿느릿 ‘슬로 콘텐츠’에 빠지는 이유 [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찬찬히 ‘얼굴들’을 비추다

요즘 사랑받는 슬로 콘텐츠엔 공통점이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공간’적인 특징이다. 그런데 깊이 들어가 보면 그 안엔 ‘친근한 얼굴들’이란 한 겹의 비밀이 더 숨어 있다.

앞서 말한 베스트셀러들의 배경인 백화점·편의점·서점을 떠올려 보자. 무언가를 사고파는 공간이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곳엔 주인과 직원 그리고 손님 등 다양한 인물들이 오간다.

드라마 속 공간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특징이 녹아 있다. ‘우영우’의 배경이 되는 법정에는 각종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형제의 배신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 나쁜 남자를 사랑하게 된 장애인 여성, 마을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는 이장 등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우리들의 블루스’의 배경인 제주도에는 해녀와 수산물 시장 상인 등 바다의 이야기를 품은 지역 주민들이 있다. 휴식과 여행 차 들른 사람들도 많다. 슬로 콘텐츠는 결국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특정 공간을 설정해 두고 그 안에 모인 얼굴들을 차례로 비추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얼굴은 왠지 쓸쓸하고 고독하다. 직원이나 상인은 돈을 벌기 위해 힘들어도 자리를 지키며 고단한 하루를 보낸다. 손님도 마찬가지다. 돈이 별로 없어 편의점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면접 시험에서 돌아오는 길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씁쓸하게 맥주 한 캔을 따기도 한다. 매우 소중한, 하지만 종종 소중함을 잊고 살았던 우리의 가족 또는 친구의 얼굴이다.

물론 작품들에는 주인공이 엄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주인공에 한정되지 않고 폭넓게 확장된다. 우영우가 중심이지만 그가 맡은 사건 속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와 감정이 한데 어우러져 펼쳐지는 것을 떠올려 보면 된다. ‘불편한 편의점’도 편의점 주인 할머니와 서울역 노숙인 ‘독고’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편의점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생을 비롯해 다양한 인물들을 두루 비춘다. 아예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새로운 방식을 선보이기도 한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매회 다른 인물들을 집중 조명하는 ‘옴니버스’ 방식을 내세웠다. 1회에선 조연으로만 나왔던 인물이 2회엔 주연이 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의 전체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여러 사건들이 휘몰아치는 요즘 콘텐츠의 전개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느린 만큼 알차다. 주인공이 여러 얼굴들과 마주하고 찬찬히 경유하는 과정이 차곡차곡 쌓인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사유를 거듭하고 점차 성장하게 된다. 시청자와 독자들도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며 세상 이야기를 보고 듣게 된다. 그러다 자신도 알게 모르게 깨달음을 하나씩 얻는다. 돌탑을 쌓을 때 올리는 작은 돌멩이 같은….

속도전을 펼치는 장르물에서도 다양한 인간 군상을 확인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의 결 자체는 슬로 콘텐츠와 확연히 다르다. 장르물에선 인간의 거대한 탐욕과 이기심, 복수심 등이 주로 다뤄진다. 반면 슬로 콘텐츠는 각자 품고 있는 소소한 행복과 슬픔, 거친 껍데기 안에 숨겨 둔 여린 마음 등을 슬쩍 꺼내 보인다.

그래서인지 평소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할 생각도 없었던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엔 아예 꿈속에서 타인의 삶을 살아 보는 장면이 나온다. 마냥 화려하고 좋아 보였던 인물이 직접 돼 보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의 삶 속에 들어가 보니 그 이면에 남모를 고통과 부담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스스로 인생의 정답을 잘 안다고 과신했던 사실에 대해서도 슬로 콘텐츠를 통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휴남동 서점’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영주(책 속 주인공)는 정답을 안고 살아가며, 부딪히고 실험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안다. 그러다 지금껏 품어왔던 정답이 실은 오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정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인생.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안에서 정답은 계속 바뀐다.’ 자신만이 정답을 가진 줄 알았던 것이 오만이었음을, 결국 또 다른 정답을 찾고 또 찾는 여정이 인생임을 곱씹어 보게 된다.
슬로 콘텐츠는 이 과정에서 그동안 소외됐던 이들에 대한 관심도 환기시킨다. ‘우영우’는 사회에 만연한 자폐인에 대한 차별을 지적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우영우는 이렇게 말한다.

“80년 전만 해도 자폐는 살 가치가 없는 병이었습니다. 지금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면 국가적 손실’이란 글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그게 우리가 짊어진 이 장애의 무게입니다.”

‘우리들의 블루스’에도 다운 증후군을 가진 배우 겸 화가 정은혜 씨가 출연했다. 장애인 배우가 한국 TV 드라마에 주·조연급으로 등장한 것은 처음이었다. 많은 시청자들은 그의 연기에 호평을 보냈다. 혼자만의 연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 배우들과 함께 호흡을 맟춰 가며 연기를 훌륭히 소화해 냈다. 그렇게 슬로 콘텐츠는 누구나, 모두가 빛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준다.

이같이 슬로 콘텐츠가 동시다발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아포리아(aporia)’ 상태인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아포리아는 ‘탈출구가 없는 난관’을 뜻하는 용어다. 잦은 전쟁으로 지쳐 가던 고대 그리스 시대에 생겨났다. 그렇다고 전쟁만이 아포리아 상태인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길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다면 이 또한 아포리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요즘이 딱히 그런 것 같다. 저성장·고물가 시대에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조차 쉽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고독과 절망은 일상이 됐다. 하지만 아포리아 상태에서도 누군가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기쁘게 해 줄 소중한 생각의 싹을 틔운다. 슬로 콘텐츠가 그 싹이 아닐까.

찰리 채플린이 했던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이 말을 둘로 쪼개 무게를 달아 보면 아마도 ‘멀리서 보면 희극’에 무게가 더 실렸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 와닿는 것은 비극이다. 인생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큰소리 내어 웃는 날보다 꾸역꾸역 견디고 있는 날이 더 많다.

슬로 콘텐츠도 이를 놓치지 않는다. 오히려 콘텐츠가 다루는 개별 사건은 비극에 가깝다. 하지만 사람들이 망각한 단어 ‘희극’을 틈틈이 떠올리게 해준다. 인생은 비극이지만 분명 희극이기도 하다고, 가던 길을 멈춰 서서 세상을 둘러보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면 가끔은 희극의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김희경 한국경제 문화부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