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우아함 잘 표현…샤론 스톤과 함께 오스카 등 레드 카펫 드레스의 새 기준 세워

류서영의 명품이야기/발렌티노 ③
지젤 번천의 발렌티노 캠페인(사진 ①)
사진출처 : instagram realmrvalentino
지젤 번천의 발렌티노 캠페인(사진 ①) 사진출처 : instagram realmrvalentino
발렌티노 가라바니는 “내가 생각하는 패션이란 아름답고 우아한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평범한 말 같지만 그의 패션 스타일을 통해 이를 증명했다. 그가 성공한 원인은 이탈리아의 실용적인 장인 정신에 더해 화려하고 장식적인 프랑스의 쿠튀르 정신을 잘 조화시켰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원단에 프랑스 자수를 사용했고 대조와 과장의 테크닉을 통해 여성의 ‘우아함’을 표현했다. 특히 꽃을 모티브로 한 드레스와 빨강 색상으로 이뤄진 드레스 ‘레 루주 발렌티노(le rouge Valentino)’ 등은 시대를 넘어선 발렌티노의 창조성이 돋보이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발렌티노의 화려함의 극치는 빨간색뿐만 아니라 장식과 원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섬세한 비즈 장식(beading : 작은 구슬을 수놓음)과 화려한 레이스, 최고급 장인이 화려하게 놓은 자수, 펄럭이는 러플, 화려한 프린트 원단들은 발렌티노의 뛰어난 재단 기술을 통해 더욱 화려하고 우아하게 표현됐다. 의상들을 들여다보면 섬세하고 한없이 복잡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눈에 봤을 때 시각적 효과가 크고 통일된 이미지를 만드는 독특한 능력을 발견할 수 있다. 발렌티노는 여성스러우면서도 당당한, 그러면서도 자신감에 차 있는 여성의 우아함을 잘 표현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깜짝 출연
 린다 에반젤리스타의 발렌티노 캠페인(사진 ②)
출처 : instagram realmrvalentino
린다 에반젤리스타의 발렌티노 캠페인(사진 ②) 출처 : instagram realmrvalentino
지젤 번천, 린다 에반젤리스타, 나오미 캠벨 등 슈퍼 모델들과 ‘오스카 드레스’로 유명한 샤론 스톤이 발렌티노를 떠받쳐 줬다. 그는 유명인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영화에도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브라질 출신의 1980년생의 지젤 번천은 1997년 패션 업계의 큰 행사인 패션 위크에서 데뷔했다. 2008년 5월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서는 지젤 번천이 연간 3500만 달러(당시 환율로 351억원)를 벌어들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는 모델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1999~2000년 가을겨울 패션쇼에서 발렌티노 레드 가운을 입은 나오미 캠벨과 지젤 번천이 함께 걷고 있는 모습은 가히 패션의 역사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지젤 번천과 발렌티노의 협업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발렌티노 캠페인에서 햇빛 아래에서 금색 새틴 가운을 입고 서서 아기 얼룩말을 쓰다듬는 장면(사진 ①)은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아주 만족스러워하는 결과물이다. 이 밖에 지젤 번천이 찍은 2003~2004년 가을겨울의 남성복에서 영감을 받은 앙상블부터 변덕스러운 흑백 샷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발렌티노 의상은 놀랍도록 다양하다. 몇 년 전 지젤 번천은 월스트리트저널의 올해의 혁신가 시상식에서 발렌티노 가라바니와 다시 팔짱을 끼었을 정도로 두 사람의 우정은 이어졌다.

린다 에반젤리스타는 1980년대 중반 파리에서 모델을 시작했다. 그녀는 카멜레온적 성향으로 700개 이상의 잡지 표지에 출연했고 사진작가 스티븐 마이젤의 오랜 뮤즈 역할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그녀의 외모 중 일부는 발렌티노 런웨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91년 봄여름 패션쇼에서 파스텔 꽃 칵테일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곱슬한 금발로 변모해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 줬다. 1992년 검은색 업스타일의 헤어스타일에 수직 흑백 줄무늬의 끈이 없는 가운으로 촬영한 캠페인은 그녀가 팔색조의 톱 모델인 것을 증명해 줬다.(사진 ②)

오스카 아카데미 시상식에 서는 여배우들에게 드레스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레드 카펫을 밟을 때 기자들은 보통 “무슨 옷을 입고 있습니까”라고 묻지 않고 “누구의 드레스를 입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이 행사는 항상 매력적이다. 그 많은 스타들이 한 지붕 아래 모이는 것은 이 행사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여배우들에게 자신의 의상을 입히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스카-글램’은 199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샤론 스톤과 발렌티노의 협업과 도움 없이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발렌티노 가라바니와 샤론 스톤은 1992년 영화 ‘슬리버’ 촬영 때부터 인연을 맺었다. 샤론 스톤은 6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구슬로 장식된 블랙 발렌티노 가운을 선택했다. 그리고 발렌티노 가라바니와 여배우 사이의 우정은 지속됐다. 발렌티노는 1996년 골든 글로브와 오스카상 등 이벤트와 영화 ‘카지노’에서 입을 샤론 스톤의 의상을 담당했다. 샤론 스톤과 발렌티노는 레드 카펫 드레스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사진 ③).
샤론스톤(왼쪽)과 발렌티노 가라바니(사진 ③) 
출처 : Valentino garavani  museum. com
샤론스톤(왼쪽)과 발렌티노 가라바니(사진 ③) 출처 : Valentino garavani museum. com
환경 보호 패션 행사에서 권위 있는 상 받아
발렌티노와  레드 드레스를 입은 모델들.
출처 : instagram realmrvalentino
발렌티노와 레드 드레스를 입은 모델들. 출처 : instagram realmrvalentino
발렌티노 가라바니는 라 스칼라 오페라 하우스에서 개최된 ‘그린 카펫 패션 어워즈(GCFA : Green Carpet Fashion Awards)’에 참석해 상을 받기도 했다. 이 행사는 지구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환경 보호에 중점을 둔 패션 행사다. 수십 년 동안 시대를 초월한 패션으로 큰 업적을 남긴 발렌티노 가라바니를 기리기 위해 이 행사의 가장 권위 있는 상인 ‘유산(heritige)’상을 그에게 준 것이다.

상을 수여한 사람은 발렌티노 가라바니와 친분이 있는 이탈리아의 명배우 소피아 로렌이었다. 기립 박수를 받은 발렌티노 가라바니는 패션에서 유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어 “그것은 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위임장을 전달하는 동시에 패션업계에서 60년 동안 배운 것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패션의 유산은) 아름다움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에 관한 것”이라며 “이것은 내가 전 세계 여성들에게 바친 유산”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린 카펫과 에코에 대한 사람들의 노력이 이 지구를 더 좋게 만들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공헌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남겼다. 발렌티노 가라바니는 2008년 봄여름 패션쇼를 마지막으로 패션계에서 은퇴했다.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