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가벼워 트럭으로도 이동 가능…연료 교체 기간 길어 유지·보수도 간편
[테크 트렌드] 2022년 2월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에너지 안보는 모든 국가들에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그 여파로 러시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원전), 일본 후쿠시마 원전 등의 대형 사고 이후 외면 받았던 원자력 발전에 눈을 돌리는 국가들이 많아졌다.특히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은 출력 300MW 이하의 소형 원자로(SMR : Small Modular Reactor)다. SMR은 기존 대형 원자로(1000 MW 이상)나 중형 원자로(300~1000 MW)의 고질병인 안전 문제와 핵폐기물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고 관리하기도 쉽다고 여겨진다.
또 중대형 원자로보다 건설비가 적게 들고 공기 냉각을 할 수 있어 내륙에 설치할 수 있는 등 범용성 측면에서도 우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 안보 차원의 추가 수요까지 예상되는 SMR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한국을 포함해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많은 기술 강국들이 SMR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10MW 이하 출력 내는 초소형 원자로SMR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최근에는 초소형 원자로도 재조명받고 있다. 초소형 원자로(MMR : Micro Modular Reactor)는 통상 10MW 이하의 출력을 내는 원자로를 말한다. MMR은 SMR보다 더 많은 이점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일단 더 작고 더 가벼워 트럭·기차·배 등 일상적인 운송 수단으로도 운반할 수 있다. 그래서 MMR은 범용성 측면에서 SMR보다 더욱 낫다고 평가된다. SMR조차 설치하기 힘든 산간 지역이나 남극 등의 극한지나 자주 옮겨 다녀야 하는 전쟁터 등에 설치해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MMR은 연료 교체 기간이 기존 원자로보다 2~5배 긴 5~10년에 달해 유지·보수 비용도 훨씬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MMR은 주로 사용처 인근에 설치되기 마련이므로 다른 원자로보다 송전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는 부수적인 이점도 있다. 더군다나 개발 속도가 SMR보다 더 빠를 것이란 의견도 나올 만큼 MMR의 기술적 가능성을 비교적 낙관적으로 평가받는다.
일각에서는 MMR이 우주 탐사 경쟁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우주선에 실어 보낼 수 있을 만큼 작고 가벼운데다 기존 원자로의 냉각재로 사용되는 물과 중력을 고려한 안전 시스템 없이도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고 탐사선의 기존 동력원이 가진 사용 시간 제약이나 출력 부족 등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달 탐사선이나 화성 탐사용 로봇의 발전원으로 태양광 패널은 밤이나 겨울에 사용할 수 없고 방사성동위원소열전지(RTG)는 발전량이 불충분하다는 결정적인 단점을 안고 있다. 그 덕분에 우주 탐사용 로켓으로 운반해 달이나 화성 등의 우주 탐사 기지에도 설치할 수 있는 1MW 이하급의 MMR은 우주형 원자로로 불리기도 한다.
MMR 개발 프로젝트는 국방이나 우주 등 특수 전문 분야에서 먼저 진행돼 왔다. 앞으로는 선행돼 온 개발 프로젝트들을 통해 확보된 기반 기술을 바탕으로 한 민수용 개발도 차츰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미국, 군·우주용 개발도 활발 1950년대부터 한동안 SMR을 사용했던 미 국방부에서는 2010년대에 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중심으로 MMR 개발을 추진했다. 당시 개발 계획은 한동안 중단됐다가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현재 미 국방부는 원전 기업인 웨스팅하우스·BMX테크놀로지스·엑스에너지와 함께 ‘프로젝트 펠레(Project PELE)’라는 이름의 MMR 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최종 개발 목표는 수명 3년 이상, 무게 40톤대, 출력 1~5MW 수준의 MMR이다. 신형 원자로는 전 세계 어느 전장에서도 설치, 사용할 수 있도록 트럭·C-17수송기·배로 운반할 수 있고 3일 이내 설치, 7일 이내 해체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한다. 미 국방부의 계획상으로는 2024년 말까지 원자로의 가동·수송·설치 등의 기본 테스트가 완료될 예정이다.
2018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로스앨러모스국립연구소와 함께 진행한 MMR 킬로파워의 기초 기술 테스트에 성공했다. 킬로파워는 미국 에너지부 산하 핵안보청(NNSA)의 관리하에 NASA 웨스팅하우스·BWX테크놀로지스와 글로벌 방산 업체인 록히드마틴 등의 민간 기업들과 함께 2015년부터 연구하기 시작한 우주용 원자로다.
킬로파워는 지름 11cm, 높이 25cm 수준의 노심을 장착하고 한 번 연료를 넣으면 최대 15년 동안 1~10k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히트 파이프형 원자로다. 히트 파이프형 원자로는 별도의 순환 장치나 중력의 도움 없이 원자로 노심의 열을 전기 발생 장치로 전달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무중력이나 중력이 낮은 우주 공간에서도 열 전도가 잘 되므로 우주용 원자로에 적합하다고 평가받는다. 게다가 구조적으로도 강제로 순환되는 냉각 방식을 채택한 기존 원자로보다 단순해 생산, 유지·보수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NASA는 킬로파워의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MMR을 2028년까지 달에 설치할 계획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도 한국형 발사체에 탑재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우주 탐사용 MMR ‘열전도관원자로(HPR : Heat Pipe Reactor)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하는 출력 1kW급의 원자로는 지름 3m, 높이 5m, 무게 1.2톤에 원자로 노심의 크기는 대형 참치 캔과 비슷한 지름 30cm, 높이 30cm 수준이고 수명은 최대 10년이라고 한다.
다양한 민수용 개발도 진행 중이다. 킬로파워의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웨스팅하우스는 당시 실증된 기술을 바탕으로 히트파이프 방식의 MMR ‘이빈치’를 개발하고 있다.
이빈치도 다른 MMR처럼 트레일러·기차·배 등의 일반적인 운송 수단으로 수송해 현장에서 간단히 조립해 설치할 수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2023년까지 이빈치의 기초 기술 개발을 완료하고 2025년 상용화할 계획이다.
미국의 아이다호국립연구소도 ‘MMR 응용 연구와 검증’을 줄여 마블(MARVEL : Microreactor Applications Research Validation and Evaluation)이라고 이름 붙인 MMR을 개발하고 있다. 아이다호국립연구소의 개발 목표는 컨테이너에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연간 수백 개씩 생산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한 원자로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MMR이 소규모 지역 사회용 청정 에너지 그리드의 핵심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아이다호국립연구소는 2023년까지 미국 최초의 시제품을 만들 계획이다.
이 밖에 로스앨러모스국립연구소도 킬로파워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2MW급의 MMR 메가파워의 개념 연구를 추진하고 있고 오클로·제네럴아토믹스 등의 민간 기업들도 MMR을 개발하고 있다.
진석용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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