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과 비관 팽팽히 맞서는 주식 시장…불확실성 커지며 ‘시간을 이기는 투자 전략’ 중요
[스페셜 리포트] 2020년과 2021년은 주식 투자자들에게는 최고의 시기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던 주식 시장은 2020년 3월 이후 서서히 반등하기 시작했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에 따른 경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막대한 유동성이 투입된 결과였다. 2021년 한 해 동안에만 코스피지수가 30% 상승하며 한국은 팬데믹으로 타격을 입은 주요국들 가운데 증시 회복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들 중 하나가 됐다. 한국 증시의 호황이 이어지자 점점 더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다. ‘동학개미 운동’의 시작이다. 한국 증시에 하나의 큰 흐름이 된 ‘동학개미 운동’은 강세장을 견인하는 동력이 됐고 2021년 1월 6일 코스피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3000선을 돌파했다.화려했던 ‘주식의 시대’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공급망 차질, 높아지는 인플레이션 압력, 미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까지 지난해 연말 이후 하락세를 보였던 주식 시장은 최근 반등세로 돌아선 듯 했다. 7월 2300까지 주저앉으며 연중 최저점을 찍었던 코스피지수 또한 최근 한 달여간 상승세로 돌아서며 ‘동학개미’들에 기대감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기대감이 커지는 만큼 신중론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당장 8월 23일 이후 긴축 우려가 높아지며 미 증시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한국 또한 환율 급등에 코스피지수가 하락하는 등 시장은 여전히 불안정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낙관과 비관이 혼재하는 시장 상황에 개인 투자자들의 선택 또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한국도 미국도 더 뜨거워지는 ‘바닥 논쟁’
8월 15일까지 나스닥지수는 7월 저점과 비교해 24% 정도 상승하며 최고점 대비 하락 폭의 50% 이상을 회복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또한 저점에서 19% 상승하며 최고점 대비 하락 폭의 60% 정도를 되돌렸다. 글로벌 증시의 반등세에 힘입어 한국 증시 또한 반등세로 돌아섰다. 나스닥이나 S&P500과 비교해 반등 폭은 좁았지만 코스피지수는 2500선을 회복했고 특히 ‘태조이방원(태양광·조선·2차전지·방산·원자력)’으로 일컬어지는 주도주는 큰 폭으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식 시장에서 ‘바닥론’이 대두된 배경이다. 경기 침체 와중에 상승 랠리에 대한 기대감에 불을 붙인 것은 미국 CNBC의 대표 앵커인 짐 크레이머였다. 골드만삭스 펀드매니저 출신으로 잘 알려진 그는 지난 7월 월가의 베테랑 투자자인 래리 윌리엄스의 ‘윌리엄스 패닉지수’를 들어 “최근의 반등세가 긴 상승 랠리의 시작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윌리엄스 패닉지수는 투자자가 보유 자산을 대량으로 매각할 때 매수 신호를 보내는데, 올해 6월 그 매수 신호가 나왔다는 것이다. 이는 시장이 강세장 편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또한 시장의 투자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를 근거로 “안도 랠리의 가능성이 높다”며 낙관론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다시 주식의 시대’를 기대하기에는 여전히 섣부르다며 낙관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최근 시장의 반등세는 약세 랠리이고 아직 증시가 바닥을 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간스탠리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긴축 속도 조절을 시사한 제롬 파월 Fed 의장의 발언에 월가가 흥분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연말 전에 한 차례 하락장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최근 기업들의 이익 추정치가 하향 조정되고 있는 데다 인플레이션이 아직 고점에 다다르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증시는 전쟁이나 금리 인상 등 외부 변수가 높을 때 미국 증시와 등락을 같이하는 ‘동조화 현상’이 강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올해 들어 한국 증시가 미국 증시와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의 ‘증시 바닥 논쟁’이 한국 증시의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은 이유다. 한국 증시 전문가들도 향후 증시의 흐름과 관련해 긍정론과 부정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과거에도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시기에는 경기 침체 우려에도 주식 시장은 오르는 경향을 보였다”며 “중·장기적으로는 한국 증시에 긍정적인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단기적으로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는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추가 하락의 가능성을 낮게 본 것이다.
이웅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주까지 주식 시장의 상승을 이끌었던 에너지는 다 소진됐고 상승 속도도 가팔랐던 만큼 이제는 주식 시장이 한동안 쉬어 갈 때가 됐다”며 “추가 반등세는 끝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이번 랠리의 동력은 인플레이션 피크아웃과 미국의 긴축 정책의 속도 조절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8월 25~27일 미국의 잭슨홀 미팅을 전후로 긴축 경계감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조정 기간을 거치는 중이라는 분석이다. 이 연구원 역시 한국 증시가 다시 하락 추세로 돌아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은 “향후 한국 증시가 본격적인 상승장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달러 약세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실제 8월 23일 코스피지수가 하락한 데는 미국의 공격적 금리 인상 전망이 강화되면서 환율이 급등한 영향이 컸다. 이날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340원을 돌파했는데, 이는 13년 4개월 만의 최고치다. 조 연구원은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 변화와 함께 유럽 경제가 바닥이라는 인식이 나와야 하는데 아직은 유럽 경제의 바닥론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지 못했다”며 “현재의 상황은 상승장보다 약세장 속 일시적인 상승세인 ‘베어 마켓 랠리’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기다림’이 가장 중요한 투자 전략 됐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혼돈의 시기 개인 투자자들은 어떤 전략으로 투자에 임해야 할까.
“나는 시장의 흐름을 예측하는 데 애를 쓰지 않는다. 다만, 언제나 시장에서 저평가된 주식을 찾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I make no attempt to forecast the market --my efforts are devoted to finding undervalued securities).”
투자 대가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남긴 말이다. 지금과 같은 시기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워런 버핏의 투자 전략이다. 주식 투자하기 좋은 타이밍을 맞추려고 하기보다는 좋은 종목을 찾는 ‘시간을 이기는 투자’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2020~2021년과 비교하면 당분간은 시장이 좋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장기적으로 보자면 낙관적인 편”이라고 운을 띄웠다. 현재로서는 시장이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당장 시장이 하락세로 돌아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주가 지수는 대체로 강한 복원력을 보여 왔다. 김 센터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가 지수는 경제성장률에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을 이어 갔다. 대한민국 경제 개발 이후 역성장했던 것은 오일쇼크 때와 외환 위기, 코로나19 초기를 제외하고는 웬만해서 뒷걸음질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당장 주식 시장이 좋아질 가능성은 낮지만 아주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코스피 3000’ 또한 오르지 못할 고원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경제의 흐름과 비교해 주식은 공포와 탐욕에 의해 움직이는 시장인 만큼 ‘진폭’이 크다는 점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김 센터장은 “주식 시장이 언제 ‘바닥’을 찍고 또 언제 ‘코스피 3000’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며 “지금과 같은 시점에서는 시간을 이기는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투자하는 자산의 성격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장 조급증을 갖기보다 오랜 시간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는 여유 자금을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는 기본적인 원칙의 강조다. 김 센터장은 “‘기다리는 것’ 또한 주식 투자에 내재된 중요한 속성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금 이 시기에 오히려 여유를 갖고 주식 시장을 관망하며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좋은 종목’을 골라낼 수 있는 지식과 분석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만약 2020년과 2021년 사이에 자산의 상당수를 주식에 투자한 이들이라면 조급함이 가장 큰 적이 될 수 있는 시기이니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버텨 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주식 자산의 비율이 낮은 이들에게는 지금이 ‘저가 매수’의 기회가 될 수 있을까. 김 센터장은 “주식 투자에 좋은 시기는 없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적립식으로 투자를 늘리는 게 나쁘지는 않다”며 “주식 투자는 투자 기간이 길어질수록 위험을 경감시킬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돋보기> ‘태조이방원’이 주도했던 상반기, 하반기 주도주는?
고물가·고금리에 고환율까지 ‘3고(高) 현상’으로 금융 시장의 불안감 또한 커지고 있다. 주식 투자자들의 고민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매력적인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매력적인 종목을 제대로 선별해 내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상반기 한국 주식 시장을 주도했던 ‘태조이방원’은 하반기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장기 하락 추세는 일단락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추가 하락 가능성에 대해서는 덜 두려워해도 될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단기적인 관점에서 향후 박스권에서 등락을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지금 당장 추가 매수에 나서는 등 더 과감해질 필요는 없다”고 분석했다.
백두희 메리츠증권 도곡금융센터 부장 또한 비슷한 조언을 건넸다. 백 부장은 “현재 한국 주식 시장이 바닥을 찍고 올라가는 국면이라고 한다면 지금 당장 종목을 정하는 것보다 시장을 관망하는 것도 좋은 전략일 수 있다”며 “미국의 긴축 강화 움직임에 따라 시장의 색깔이 정해지고 주도 섹터가 나타나는 시기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로서는 그 누구도 ‘태조이방원’을 포함해 어떤 섹터가 주도주로 떠오를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힌트는 있다. 김성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과거 베어마켓 랠리의 경험에 비춰 봤을 때 낙폭 과대와 자율 반등의 유효 기간은 3개월 남짓이고 이후 다시 차별화에 기반한 업종이나 종목이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차별화되는 종목을 선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실적’이 될 수밖에 없다. 베어마켓 랠리 후반부의 수익률 격차는 실적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이를 기준으로 했을 때 두 개의 테마에서 두드러진 이익 전망 개선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바로 태양광과 전기차다. 두 업종 모두 최근 정책 모멘텀이 동반되며 향후에도 실적이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자동차와 화학을 유망 섹터로 꼽았다. 이 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지속되면서 한국의 제조업의 역량이 재부각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최근 미국이 제조업 리쇼어링에 힘을 주고 있지만 모든 제조업을 미국 내에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현재 유럽은 에너지가 없고 중국은 밸류 체인에서 이탈하고 있다. 서방에 제조업 역량을 공급할 수 있는 국가가 몇 남지 않은 상항에서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한국의 제조업 능력이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이 연구원은 “비싸지 않고 유럽의 제조업 차질이 호재로 작용할 수 있는 섹터가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며 “자동차·화학·기계·헬스케어 산업 등에서 주도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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