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에 따라 원자재 비율이 다르고 원자재 범위 차이 커
법제화에 따라 국내 하도급 거래 위축 우려도
시범 운영 통해 시행착오 겪어야
납품 단가 연동제 도입에 대한 새 정부의 공약 실천과 그에 대한 중소기업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회에서 납품 단가 연동제 입법화가 추진되고 있고 한편으로 정부는 법제화에 앞서 납품 단가 연동제 시범 운영을 통한 민간 자율 상생 문화의 확산을 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소업계는 납품 단가 연동제 도입에는 찬성하면서도 법제화가 아닌 자율 상생 방식의 실효성에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납품 단가 연동제는 원자재 가격의 변동분을 납품 단가에 반영해 중소기업 납품 업체의 수익 손실을 일정한 수준에서 막아 준다는 제도다.
납품 단가 연동제는 지난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 원자재 값 폭등에 따른 납품 원가 인상을 납품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중소기업계의 목소리에 정치권도 귀를 기울이고 대선 공약에까지 들어가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여야 모두 납품 단가 연동제 입법에 대해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며 민생경제안정 특별위원회를 합의 가동시키며 입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납품 단가 연동제의 법제화에는 많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품목에 따라 원자재 비율이 다르고 원자재의 범위 또한 차이가 많고 법제화에 따른 국내 하도급 거래가 위축될 수 있다는 등의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법제화를 바로 도입하기보다 시범 운영을 통해 시행착오를 살펴보면서 자율 상생이 과연 이뤄질 수 있는지, 만약 일정한 기간 동안 자율 상생이 성과가 나타나지 못한다면 그때 법제화로 가는 단계적 접근이 합리적인 방안으로 보인다.
앞서 납품 단가 연동제는 글로벌 금융 위기에 따른 중소기업계의 어려움 호소와 함께 2009년 납품 단가 조정협의제가 도입된 바 있다. 하지만 이 조정협의제는 유명무실했고 제도 시행 이후 조정 협의 실적이 없었다. 이는 거래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조정 협의를 도마 위에 올려놓기는 납품 중소기업으로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9월 1일부터 시행하려는 시범 운영이 이러한 우려를 반영해 보다 실효성이 있도록 대기업의 적극 참여를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이 적극 참여하기 위해서는 참여 대기업에 대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하도급 거래에서의 상생이 결국에는 납품 업체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고 이는 원청 대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믿음과 함께 능동적인 상생의 문화가 확산되고 정착돼야 한다.
현재 중기부는 관련 부처들과의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와의 협력에서 납품 단가 연동제를 도입하는 기업들에 대해 공정 거래 제도에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 하도급 거래 모범 업체를 선정할 때도 납품 단가를 연동한 업체에 가점을 부여하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청년층의 일자리 부족이 국가 과제인데,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에 그 원인이 있다. 중소기업 임금 수준은 대기업의 약 50% 수준이다. 그 격차 해소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중소기업은 늘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성장에 한계가 올 것이다.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를 좁혀야만 중소기업의 인재 확충과 인력난이 해소될 것인데, 그 해법의 하나가 납품 단가 연동제다.
중소기업의 경영 능력에 따른 원가 인상이 아니고 시장 상황에 따른 인상이라면 원가 인상이 납품 단가에 반영되도록 해 납품 중소기업이 그 피해를 모두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즉 하도급 거래에서 납품 단가 책정이 공정하고 적정한 수준으로 반영되므로 중소기업도 임금을 올려 줄 수 있는 여력이 되고 차츰 임금 격차도 좁혀질 수 있다.
국회에서 납품 단가 연동제 입법화가 논의되고 있는 중에 정부가 마련한 시범 운영을 통한 민간 자율 상생이 성과를 보이려면 먼저 과거 조정협의제의 실효성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중소기업의 문제가 잘 나타나 있는 임금 격차가 좁혀지고 중소기업에도 인재가 몰릴 수 있는 비전을 정부가 잘 제시하고 실현시켜 주기를 바란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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