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내부 고발로 소송 승기 잡은 엘론 머스크…내부 고발 활발한 이유는 천문학적 보상금
[글로벌 현장]
트위터는 졸지에 ‘이익에 눈이 멀어 개인 정보 유출을 방치한 부도덕한 기업’으로 낙인 찍히게 됐다. 비싼 몸값을 받고 머스크 CEO에게 인수돼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한 상황에서 되레 코너에 몰리게 됐다. 내부 고발자 한 명이 거대 소셜 미디어 기업과 세계 최대 부자인 머스크 CEO가 벌여 온 공방의 판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트위터, 스팸 많다” 폭로한 전 임원
트위터 내부의 깊숙한 부조리를 끄집어낸 인물은 올 초까지 트위터에서 보안책임자로 일했던 피터 자트코다. 고위 임원이었던 자트코 전 보안책임자는 7월 비영리 법무 회사인 ‘휘슬블로어 에이드(내부 고발자 조력)’를 통해 연방 당국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연방거래위원회(FTC), 연방 법무부 등이다. 고발장은 총 84쪽 분량이다.
트위터가 당국을 상대로 줄기차게 거짓말을 해왔다는 게 골자다. 해커와 스팸 계정이 발을 붙일 수 없도록 완벽한 보안 대책을 갖춰 놓았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이 아니란 얘기다. 트위터 간부들이 당국을 속이기 위해 기만적인 수법을 썼다는 것을 공공연히 얘기했다고 한다.
단기적 성장에만 치중한 채 트위터 이용자 정보를 위험에 노출시켰고 러시아·중국 등 해외 정부와 정보 기관들의 정보 탈취 시도에도 무방비 상태였다고 부연 설명했다.
자트코 전 보안책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기 수 개월 전에는 파라그 아그라왈 트위터 CEO가 러시아 당국의 요구를 (비밀리에) 수용하자고 제안했다”고 폭로했다. 다만 아그라왈 CEO의 제안이 어떤 내용이었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자트코 전 보안책임자는 꽤 실력 있는 해커 출신이다. 해커로 활동하면서 ‘머지’란 별칭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트위터가 개인 사생활 및 보안과 관련해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었지만 외부엔 완벽한 것처럼 포장했다”며 “회사 서버의 절반 정도는 시대에 크게 뒤떨어진 모델이어서 외부 공격에 더욱 취약했지만 수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트위터가 스팸 계정이 전체의 5% 미만이라고 꾸준히 주장해 온 것과 관련해 자트코 전 보안책임자는 “트위터는 스팸을 파악할 의사나 능력이 아예 없다”고 강조했다.
자트코 전 보안책임자는 고발장이 공개되자 머스크 CEO 변호인단은 반색하고 나섰다. 스팸·가짜 계정을 문제 삼아 트위터 인수 중단을 선언한 상황에서 승기를 잡게 됐다는 판단에서다.
머스크 CEO는 ‘트위터가 가짜·스팸 계정에 대한 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며 440억 달러(약 59조3000억원) 규모의 인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자트코 전 보안책임자의 이번 폭로는 머스크 CEO에게 확실히 힘을 보태 줄 것으로 관측된다. 트위터가 스팸 계정이 얼마나 되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부 보안 전문가 출신의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발장이 공개되자마자 머스크 CEO 변호인단은 자트코 전 보안책임자를 상대로 소환장을 전달했다. 증언대에 세우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고발은 머스크 CEO의 트위터 인수 논란과 관계가 없다고 자트코 전 보안책임자 측은 주장한다. 휘슬블로어 에이드 측은 “고발장을 접수하기 전에 머스크 CEO 쪽과 한 번도 접촉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궁지에 몰린 트위터는 자트코 전 보안책임자의 고발장 내용을 즉각 반박했다. 아그라왈 CEO는 전체 직원에게 보낸 e메일에서 “보도된 기사를 보면 모두 모순되거나 오류투성이”라며 “거짓 정보를 불식시키고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모든 일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부 고발자에 대해서도 평가 절하했다. 트위터는 보도 자료에서 “자트코 전 보안책임자는 성과가 떨어지고 리더십도 모자랐기 때문에 올 1월 해고됐던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트위터의 바람과 달리 정치권은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해외 정보 기관들의 공작과 연루됐을 가능성이 제기된 때문이다. 상원 정보위원회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공화당 간사)은 “검열에서 보안에 이르기까지 트위터는 오랜 기간 좋지 않은 결정을 내려 왔다”며 “이번 사안을 자세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딕 더빈 상원의원(법사위원장)은 “청문회를 통해 추가 조사하는 한편 필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상원은 9월 13일 트위터의 허술한 보안을 따져보는 의회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이날은 트위터가 머스크 CEO에게 회사 매각을 강제하는 방안에 대해 표결하기로 한 주주 총회일이다.
미국은 왜 ‘대형 고발자’ 천국이 됐나
트위터만 곤욕을 치르는 게 아니다. 더 큰 SNS 기업인 페이스북에선 작년 9월부터 내부 폭로가 이어졌다. 내부 고발자는 뒤늦게 프랜시스 하우겐 전 프로덕트 매니저로 밝혀졌다.
하우겐 전 매니저는 잇단 언론 인터뷰에서 “소셜 미디어 애플리케이션인 인스타그램 사용이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에 유해하다는 연구 보고서를 갖고서도 계속 감춰 왔다”고 공개했다. 그는 “검색 알고리즘을 이용자들에게 더 안전하게 바꾸면 이용자들이 사이트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고 광고가 감소할까봐 우려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방 당국은 즉각 페이스북 조사에 나섰고 의회는 청문회를 열고 하우겐 전 매니저가 증언대에서 발언하도록 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내부 고발 사례는 미국에서 드물지 않다. 배경은 의외로 단순하다. 내부 고발을 장려하는 보상금과 내부 고발자를 적극 보호하는 시스템 때문이다. 내부 고발이 활성화되면 기업 투명성과 공공 이익을 높일 수 있다는 취지다.
미국에서 내부 고발자는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추징하는 액수의 10~30%다. 정보 가치에 따라 SEC가 보상액을 늘릴 수도 있다. 1986년부터 2018년까지 내부 고발자에게 내준 보상금은 누적 기준 590억 달러(약 79조5000억원)나 됐다.
역대 최고 기록은 작년 10월 경신됐다. 투자은행들의 리보(LIBOR) 금리 조작을 고발했던 도이치뱅크 직원에게 2억 달러(약 2700억원)가 지급됐다. 투자은행들은 은행 간 초단기 거래 금리인 리보를 수십년 동안 조작했다가 들통이 났다. 은행들이 납부한 벌금은 총 30억 달러(약 4조원)에 달했다.
2009년 스위스의 투자은행 UBS 직원은 고발 보상금으로 1억400만 달러(약 1401억원)를 챙겼다. UBS 내에 비밀 계좌를 갖고 현금을 예치해 놓은 미국인 고객 명단을 미 국세청(IRS)에 제보했다. 국세청은 미국인 4500명을 상대로 세금 4억 달러(약 5400억원)를 추징하고 UBS에도 벌금 7억8000만 달러(약 1조510억원)를 부과했다.
현대차·기아도 내부 고발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2020년 11월 “현대차·기아가 세타2 GDi(직접 분사) 엔진에 대한 결함을 숨겼다”며 8100만 달러(약 109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민사 위약금도 2억1000만 달러(약 2830억원)에 달했다. NHTSA는 내부 고발자 김광호 씨에게 2400만 달러(약 323억원)를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에서 내부 고발은 더 활발해질 가능성이 있다. 속속 제정되고 있는 침묵중단법 덕분이다. 비밀유지협약(NDA)을 이유로 직원들의 내부 고발을 막지 못하도록 명시한 법이 유행처럼 확산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가 올 1월 시행에 나선 데 이어 워싱턴 주 의회도 최근 관련 법을 통과시켰다.
기업들은 윤리 경영을 강화해 애당초 고발의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 퇴직 직원들의 정서 관리에도 신경을 더 써야 하는 상황이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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