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적자 확대와 신재생에너지 등 환경 관련 지출로 인플레 압력 부추길 수 있어
단기적 인플레 감축 기여 미미
미국에 수백억 달러 투자 추진한 한국 전기차 메이커만 날벼락
지난해 초 대통령에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더 나은 재건(BBB : Build Back Better)’ 구상을 국정 운영의 목표로 제시했다. BBB 구상은 크게 미국 구조 계획, 미국 일자리 계획, 미국 가족 계획 등 세 부분이다. 10조 달러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 ‘강한 미국’을 만드는 거창한 목표를 제시한 것이었다.
‘미국 구조 계획’은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시민들을 지원하면서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고 ‘미국 일자리 계획’은 고속도로·인터넷망·상수도 등의 인프라 확충과 재생에너지 개발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 창궐하던 지난해 3월 11일 미 의회는 1조9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구조 계획을 통과시켰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유사한 법안(CARES법)이 검토된 바 있었기 때문에 반발이 있었지만 조기 입법이 가능했다.
노후화된 미국 인프라 투자를 반대하는 정치인이 없으므로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지지했지만 예산 사용처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와 전기차 보조금 지급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자고 한 반면 공화당 의원들은 일자리를 늘리는 데 노후화된 인프라 개선이 우선이라고 주장했
다. 당초 민주당이 제시했던 2조3000억 달러의 예산을 1조2000억 달러로 줄여 지난해 11월 초 ‘인프라 투자와 고용법’이 제정됐다. 대부분의 예산을 인프라 확충에 투입하고 기후 변화 대응, 전기차 충전 시설, 신재생에너지 등에 대한 지출은 전체 예산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
셋째 사항인 ‘미국 가족 계획’은 중산층 재건을 목표로 공교육 투자와 육아 보조금 확대에 맞춰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인프라 계획에서 포함되지 못했던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보조금 등을 대거 포함시켜 3조5000억 달러의 초안을 마련했다. 민주당이 다수당인 하원 통과는 문제가 없겠지만 공화당과 민주당이 동수인 상원에서 문제가 됐다. 민주당의 조 맨친(웨스트버지니아 주)과 키어스틴 시네마(애리조나 주) 상원의원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초안 예산의 절반 수준인 1조8500억 달러로 예산을 축소했지만 맨친 의원과 시네마 의원은 연방 정부의 재정 적자 확대와 신재생에너지 등 환경 관련 지출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부추기게 될 것이란 점을 들어 반대했다. 석탄의 주산지인 지역구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그의 반대로 금년 상반기 동안 가족 계획법안은 진전을 보지 못했다. 척 슈머 원내대표를 위시한 민주당 지도부는 맨친 의원을 상대로 비밀 협상을 수차례 벌여 미국 대기업에 세금을 올리고 고령자에 대한 의료보험(메디케어) 한도(연간 2000달러) 설정으로 총 7370억 달러를 정부가 거둬들이고 4370억 달러 예산 지출을 내용으로 협상을 타결하면서 생뚱맞게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이름을 붙였다.
2021년 하반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연말에 7%대에 접근한 미국의 인플레이션 비율은 금년 들어 더 높아졌고 6월에는 지난 30년 이내 최고 수준인 9%대를 기록했다. 예산 지출 규모보다 유동성을 회수하는 규모가 훨씬 크다는 점을 이유로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이름을 붙여 홍보했고 이 법의 발효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 감축에 기여할 수 있는 내용은 약값 한도 설정뿐이다. 내년부터 추가될 광물 요건으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업체가 아예 없을 것이라고 한다. 중국에 대한 의존을 차단하기 위해 비현실적인 요건을 붙인 것인데, 미국에 수백억 달러 투자를 추진해 온 한국의 전기차 메이커들은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았다.
무리한 입법에 무리하게 발효시켰기에 부작용이 적지 않다. 미 당국은 현재 관련 시행령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중국 견제를 위한 232조 발동이 한국 철강 업체에 막대한 피해를 줬던 사례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과 통상 외교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