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가입자 이탈 방지와 신규 가입자 확보 전략…유료 멤버십에 스포티파이·OTT 결합

[테크 트렌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월마트 외관[AFP=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월마트 외관[AFP=연합뉴스]
수천 개의 매장을 소유한 오프라인 유통업의 최강자 월마트가 세계 최대 전자 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에 새로운 도전장을 던졌다. 언뜻 보기에는 미국을 넘어 글로벌 유통업계에서 군림하고 있는 두 공룡의 경쟁이 새롭게 보이지 않지만 특이한 것은 도전장을 내민 서비스가 일반인들의 눈에는 유통이나 전자 상거래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라는 점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월마트는 미국의 영화 스튜디오이자 배급사인 파라마운트와 협력해 자사 멤버십 프로그램인 월마트 플러스에 OTT 서비스를 추가로 제공하기로 했다. 월마트 플러스는 월마트가 2020년 아마존에 대항하기 위해 내놓은 유료 멤버십으로, 고객에게 무료 배송을 제공하는 아마존 프라임과 유사한 멤버십 서비스다.

현재 월마트 플러스 상품은 월 12.95달러(약 1만7400원)이고 여기에는 무료 배송, 주유 할인, 프리미엄 음악 서비스 스포티파이 6개월 무료 구독이 포함돼 있다. 이번 OTT 서비스 제공으로 월마트 플러스 구독자들은 9월부터 월 4.99달러(약 6700원)의 ‘파라마운트 플러스 에센셜’ 구독 서비스를 추가 비용 없이 제공받게 된다.

이번 OTT 서비스 제공으로 가장 수혜를 보는 것은 물론 월마트 플러스 가입 고객이다. 월마트 플러스의 연간 회원비가 98달러(약 13만1600원, 월 12.95달러)인데 여기에 연간 59달러(약 7만9200원, 월 4.99달러)인 파라마운트 플러스 에센셜 플랜 상품을 무료로 추가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아마존 프라임은 연 139달러(약 18만7000원)이고 월로 계산하면 14.99달러(약 2만200원)로 다소 비싼 편이다.

파라마운트 플러스 에센셜은 3만 개 이상의 최신 영화, 시리즈, TV 쇼,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미국 내셔널풋볼리그(NFL)나 유럽 챔피언스 리그(UEFA) 등 라이브 축구 경기를 시청할 수 있다. 다만 광고가 붙고 생방송인 CBS 채널 시청은 할 수 없고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아 시청하려고 하면 파라마운트 플러스 프리미엄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월마트 미디어 확장과 결합 상품 사실 월마트가 OTT 서비스와 같은 미디어 시장에 발을 디딘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휴렛팩커드(HP) 기술 기반 ‘월마트 비디오 다운로드’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다가 접었다. 2010년에는 온라인 사업 확장의 일환으로 주문형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인 ‘부두’를 인수하고 ‘부두스틱’이라는 자체 OTT 스트리밍 단말을 출시한 바 있다.

하지만 ‘부두’는 DVD 대여 방식의 구식 모델로 운영되다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트렌드에 밀려 2020년 미국 최대 케이블TV 사업자인 컴캐스트가 소유한 영화예매 사이트 ‘판당고’에 매각된 바 있다.

그렇다면 미디어 사업 실패라는 아픈 기억을 가진 월마트가 또다시 파라마운트와 OTT 사업 분야에서 협력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에서는 한때 음반과 영화 등 미디어·엔터테인먼트업계의 중심에 있었던 월마트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중심의 유통 환경 변화에 대처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전체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 요소 측면에서 열위인 월마트가 경쟁사인 아마존이 가지고 있는 OTT 서비스를 확보해 자사 멤버십 가입자의 이탈 방지와 신규 가입자 확보를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유통업이 아니더라도 모든 산업에서 새로운 가입자를 끌어들이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가입이 감소되면 수익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른 어딘가에서 수익을 내야 하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이 요금을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요금을 올리면 지금과 같은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는 가입자 이탈로 이어지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이러한 국면에 기업이 택할 수 있는 카드는 서비스를 내부적으로 병합하거나 외부 협력사와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결합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이다. 특히 OTT 시장처럼 가입자가 포화되고 구독 추세가 둔화되는 영역에서는 결합 상품(bundle)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이런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2017년 시작된 OTT 혁명의 첫 단계가 스트리밍 전쟁이라면 다음 단계는 결합 상품 경쟁이라고 주장한다. 즉, 개별 서비스가 아니라 결합 상품의 우위를 통해 가입자를 유지하거나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번에 월마트와 손잡은 파라마운트도 월마트와 같은 거대 소매 유통 업체의 결합 서비스와 연계함으로써 고객층 확보와 자사 브랜드 강화를 위한 새로운 유통 채널 확보라는 효과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디즈니가 ESPN 플러스 요금을 월 6.99달러(약 9400원)에서 월 9.9달러(약 1만3400원)로 43% 대폭 인상하면서 디즈니 결합 상품 요금을 월 13.99달러(약 1만8800원)로 유지한 이유도 가입자 유지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디즈니의 결합 상품은 디즈니 플러스와 광고 없는 훌루와 ESPN 플러스를 묶은 상품이다.

소비자들로서는 디즈니의 개별 상품 3개를 별도로 구매하는 것보다 3개를 묶은 결 합상품을 구독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업들이 결합 상품을 제공하는 것은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에 소비자를 묶어 두는 소위 가입자 잠금 효과를 가져온다. 특히 전자 상거래와 OTT는 유사한 제품과 서비스가 경쟁하고 가격과 상품 비교가 쉽기 때문에 가입자들의 가입과 탈퇴가 빈번히 일어나는 분야다. 따라서 이 두 상품을 묶어 할인된 가격에 제공하면 가입자 이탈을 줄이고 유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러한 전자 상거래와 OTT 플랫폼 간 제휴 전략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성공한 기업으로 대표적인 것이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2006년부터 스트리밍 서비스인 프라임 비디오를 무료 제공하며 자체 콘텐츠와 스포츠 경기 중계로 가입자를 그러모으기 시작해 현재 프라임 회원은 2억여 명에 이른다. 한국의 전자 상거래 업체 쿠팡도 OTT 서비스인 쿠팡 플레이를 와우멤버십 회원들에게 제공하면서 가입자 잠금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옴니 채널 경쟁 본격화 전망월마트와 아마존은 글로벌 유통업계의 대명사 격인 기업이다. 1962년 설립된 월마트는 오프라인 소매 매장으로 성공한 기업인 반면 아마존은 1994년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해 다른 온라인 유통 업체를 먹어 치우며 ‘아마존드(Amazoned)’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온라인 유통업의 강자로 등극한 기업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영역에서 각각의 아성을 쌓아 왔던 이들의 균형은 2017년 아마존의 오프라인 소매업 진출이 본격화되면서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월마트는 제트닷컴을 인수하는 등 온라인 분야로 영역을 확대했고 아마존도 미국 최대 유기농 슈퍼마켓 체인인 홀푸트마켓을 인수하며 본격적인 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소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소매 시장의 경계가 없어지는 옴니 채널 경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들 간의 경쟁은 단순 소매업에서부터 최근에는 자율 주행·드론·로봇 등 첨단 배송 분야, 이번 미디어 분야와 같은 사업 영역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온라인과 오프라인 영역에서 경쟁해 온 두 업체의 기싸움은 최근 아마존으로 점차 기울고 있는 형국이다. 작년 포브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소매 업체인 월마트와 아마존 중에 누가 승자인가라는 분석 기사를 실은 바 있다. 포브스는 재정·혁신·고객·디지털 성장·소매점·공급망·물류·지속 가능성 분야에 대해 두 기업을 비교 분석해 2019년까지는 월마트가, 2020년부터는 아마존이 승자가 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사업 비율이 높아지면서 아마존이 소비자 지출 규모 면에서 월마트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내에서는 온라인 지출 금액의 40% 이상을 아마존이 차지하는데 비해 월마트는 7%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 월마트는 2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예상치를 웃도는 호실적을 기록했지만 소비 위축 우려로 향후 성장 전망이 밝은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OTT라는 카드를 통해 아마존과의 격차를 줄이고자 하는 월마트의 전략이 성공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심용운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