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사회학의 대가, 스탠포드 대학 존 마이어(John W. Meyer) 교수의 약 50년에 걸친 연구에 의하면 때로는 법적 규제나 가시적인 수치보다도 이러한 규범적이고 문화적인 압력이 강력하기도 하다. 또한 새로운 시장 압력이 발생할 때 많은 조직들은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다. 아직 준비되지 못한 조직들은 생존을 위해 이러한 시장 변화를 의례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경쟁적으로 상징적 소구들(슬로건, 부서명 변경 등)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들뜬, 흥분된 모습들도 나타난다. 초조직화(Hyper-Organization)’라고도 한다. 국내외 트렌드와 다양한 기관의 평가 지표에 부응하느라 필요 이상으로 온갖 좋은 것들을 다 조직에 담는 것이다. 그 좋은 것들이 실제 그 조직의 목표 달성에 적합한 수단인지 즉, 합리성 이슈와는 별개로 말이다. 최근 ESG 전문가 춘추전국시대는 기업을 더 힘들게 한다. 기업이 ESG를 좀 천천히 받아들일 수도 있고 기업 성격에 맞게 선택과 집중을 하면 좋을 텐데, 전문성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집단(진짜 전문가인지는 별개로)들의 수많은 평가지표가 기업을 가만히 두질 않는다. 다 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위험(Risk)을 줄여야 하니 골고루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문가들에게 ESG 100점을 받으면 착한 기업인가? 전 과목에 100점 받으면 지속가능경영 혹은 위험을 줄이는 경영을 할 수 있는가? 전 과목 과락을 면하면 기본은 하는 기업인가? 100점은 어떤 이해관계자의 기준인가? 투자 시장의 평가기준과 100점에 대한 이야기는 많으니 본 글에서는 사회, 일반 대중의 기대와 수요를 보여주는 숫자 몇 가지를 소개해 보겠다.
사회적가치연구원과 트리플라잇이 발간하는 국민 1,000명 대상 설문조사 보고서 「한국인이 바라본 사회문제」에서는 ‘국민이 기대하는 ESG’와 ‘기업이 집중하는 ESG’를 비교해서 보여주고 있다. 국민과 기업 모두 2021년에 비해서 2022년에 S(사회) 영역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였다. 그런데 OECD 대비 한국이 심각한 S(사회) 영역에 대해서는 기업과 국민의 관심이 모두 낮은 것으로 나타나 안타깝다.
국민과 기업의 차이점도 명백히 드러났는데, 국민은 국내 대기업이 S(사회)와 G(지배구조)를 더 잘해 주기를 기대하는 반면, 기업은 E(환경)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순위로 보면, 국민이 기대하는 ESG 영역 1위 이슈는 ‘부정부패 및 뇌물 수수’, 기업이 집중하고 있는 ESG 영역 1위 이슈는 ‘대기오염 및 온실가스 증가’였다. 질문의 종류를 바꾸어 ‘당신에게 100만원의 자금이 있다면 어떤 ESG 요소에 투자할 것인가’하고 물으니, 환경 영역에 대한 투자 의지가 높았다. 흥미로운 것은, 다른 세대 보다 MZ세대들은 S영역(인권/포용성/다양성, 고객 정보 및 데이터 보안, 임직원 건강/복지 및 안전), G영역(이사회 전문성/투명성, 감사와 독립성)을 잘하는 기업에 더 투자하겠다고 응답했다는 점이다.
ESG에 대한 고객들의 솔직한 마음은 또 다른 연구결과에서도 입증되었다. 사회적가치연구원의 오픈 서베이 플랫폼 ‘ESGame’에서는 ‘다음 중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한 기업은?’, ‘다음 중 더 착한 기업은?’이라는 질문을 제시하고 응답지 ESG 15개 요소 중 고르게 하였다. 다만, 각 15개 요소를 1점부터 5점 사이에 점수를 주는 것이 아니라 A와 B 중 하나 선택, B와 C 중 하나 선택을 몇 차례 반복하게 했다. 일종의 밸런스 게임처럼 말이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의 선택이 극명하게 갈려서 변별력이 높아진다.
2022년 3월 누적 7,800명이 응답한 결과를 보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기업’ 상위 1, 2, 3위가 ‘일-삶의 균형’, ‘근로 재해 예방’, ‘협력사 동반성장’을 잘하는 기업이었다. 모두 S(사회) 영역이다. 착한 기업, 투자하고 싶은 기업에 대한 질문에 대한 응답에서도 이 세 가지가 상위 3위에 들었다. 2022년 6월 누적 62,000명의 응답 결과를 종합해 봐도 S가 상위권을 차지하였다. 2022년 8월에는 국민 2,500명에게 ESG 요소를 동일하게 보여주면서 ‘다음 중 내가 다니고 싶은 기업’을 고르게 하였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기업’, ‘내가 다니고 싶은 기업’ 모두 상위 1~4위에 S 이슈(일-삶의 균형, 근로재해 예방, 협력사 동반성장, 지역사회 기여)가 선정되었다. 이에 더하여 더 흥미로운 것은, 상대적으로 사회에 필요한 기업을 물으면 E 영역이 선택될 확률이 높은데, 내가 다니고 싶은 기업을 물으면 G를 잘하는 기업으로 선호도가 기울어졌다.
요점을 정리하면, 기업은 E를 강조하는데 국민들은 S와 G를 특히, MZ세대는 S와 G를 기대한다. 여기에는 더 중요한 시사점을 담고 있다.
첫째, ESG의 부등호가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과 기업은 실용적 정당성을 따라 E로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대중, 잠재적 고객들의 솔직한 마음 속 부등호는 S와 G로 보인다. 이는 ESG라는 규범적 정당성의 무게와 방향성을 보여준다. 둘째, 전문가들의 ESG 평가지표에 일반 시민이 있는지 묻고 싶다. 기업이 ESG 지표 달성으로 시장에서 자원을 확보하고 생존하면서도 시민들에게도 인정받는 착한 기업이 되고 싶다면 시민들이 기대하는 100점에도 관심을 좀 더 가져야 할 것 같다. 그 시민은 조직구성원이기도 하고 잠재고객이기도 하다. 셋째, ESG는 결국 기업도 행복하고 사회도 행복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들뜨고 흥분된 ESG보다는 기업의 행복과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ESG 부등호와 조합을 찾았으면 좋겠다. 물론 어렵지만 기업 내부 구성원을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에게 100점이라는 목표보다는 실현 가능한 목표를 제시하고 기다려달라, 같이 하자고 설득하는 것이 진정성과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것이다. 그것이 조직의 사전적 정의인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체계화된 구조에 따라 구성원들이 상호작용을 하며 외부 환경에 유기적으로 개방된, 인간들의 사회적 집단’을 실천하는 것이다. 정명은 사회적가치연구원 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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