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할 필요 없는 ‘세탁 구독’ 서비스…뉴욕·도쿄 등 글로벌 진출 준비

[비즈니스 포커스]
사진=의식주컴퍼니
사진=의식주컴퍼니
1인용 오피스텔 한쪽에 놓인 세탁기 안에는 빨랫감 대신 프라이팬과 그릇 등 주방 용품이 수납돼 있다. 임시 욕조를 꺼내 거실 한복판에서 반신욕을 즐기던 집주인은 갑자기 현관으로 나가 가방 하나를 가져온다. 가방에서 꺼내든 것은 바로 수건이다. “세탁물을 정기 배송하고 있어요. 수건 같은 세탁물을 바깥에 내놓으면 싹 세탁돼 집으로 돌아와요. 빨래 개는 게 너무 귀찮고 싫잖아요.” 지난해 말 MBC ‘나 혼자 산다’에 방영되며 화제를 모았던 개그맨 이은지 씨의 ‘MZ세대 세탁법’이다.

한국에서 이와 같은 ‘세탁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업체가 의식주컴퍼니의 ‘런드리고’다. 2019년 3월 비대면 모바일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를 시작한 후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월 순 이용자만 10만여 명에 이르고 하루 3500~4000가구에서 ‘세탁 주문’을 받고 있다. 2021년 기준 매출은 150억원 정도로 올해는 전년 대비 약 3배 정도 증가한 400억~ 450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누적 투자 유치액은 735억원 정도다. KDB산업은행을 비롯해 알토스벤처스·소프트뱅크벤처스 등이 투자했다. 향후 런드리고가 세탁업계 첫 ‘유니콘’ 가능성을 예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모든 가정에서 세탁기를 없애겠다는 야심 찬 목표로 ‘세탁 혁신’에 도전하고 있는 런드리고의 성장 비결을 살펴봤다.
성장 비결 1 – 철저한 ‘소비자 행동 연구’로 얻은 인사이트
물론 런드리고 이전에도 동네 세탁소를 대신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드라이 클리닝’할 옷을 맡기는 서비스는 존재했다. 하지만 런드리고의 ‘세탁 구독’ 서비스는 그 범위를 넓혔다. 드라이 클리닝뿐만 아니라 수건·속옷·상하의 등 일상생활 속 빨래를 모두 도맡아 해결해 준다. 이용법은 간단하다. 모바일에서 앱을 다운로드 받은 뒤 밤 10시 전까지 ‘수거 신청’ 버튼을 누르면 끝이다. 1~2일 뒤면 깨끗하게 세탁된 빨래들이 다시 문 앞에 배송돼 있다. 조성우 의식주컴퍼니 대표가 강조하듯이 “런드리고의 경쟁자는 ‘가정 내 세탁기’”인 셈이다.

‘빨래는 당연히 집안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는 오래된 고정 관념을 깬 서비스는 자취생을 비롯한 1인 가구를 시작으로 빠르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특히 좁은 자취방에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세탁기를 두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젊은 세대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갔다. 최근에는 1인 가구뿐만 아니라 아이가 있는 가족 단위 사용량도 빠르게 늘고 있다. ‘세탁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면 이와 같은 ‘주거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점이 주효했다. 세탁을 단지 ‘옷을 세척’하는 행위가 아니라 빨랫감을 분류하고 세탁한 뒤 개고 정리하는 모든 과정을 포함하면 꽤 많은 시간을 빨래에 쓰고 있는 것이다.

세탁물은 ‘런드렛’이라는 세탁 수거함에 담아 집 앞에 내놓으면 된다. 일종의 세탁물 전용 옷장으로 빨래망, 속옷망, 운동화 봉투, 이불팩 등이 들어 있어 편리하게 각종 빨래를 담을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세탁물을 분류하고 구분하는 스트레스 없이 그저 맡겨 놓으면 ‘곧바로 옷장에 정리해 입을 수 있도록’ 설계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소비자들의 가려운 곳을 정확하게 긁어 주는 ‘세탁 구독’ 서비스와 ‘런드렛’은 그냥 탄생한 서비스가 아니다. 의식주컴퍼니는 서비스 초기부터 고객군을 대상으로 한 포커스 그룹 인터뷰 등 ‘소비자 행동 연구’에 꽤 공을 들였다. 최근에는 비대면 세탁 서비스 이용 경험이 확산되고 고객군이 늘어나면서 ‘소비자 행동 연구’의 규모 또한 더욱 커졌다. 그 결과물이 지난 8월 발표한 ‘2022 런드리 인사이트 리포트’다.

김천석 의식주컴퍼니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고객들이 ‘빨래’라는 행위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서 런드리고의 모든 서비스가 출발한다”며 “이와 같은 인사이트를 축적해 나감으로써 고객들의 의식주에 보다 ‘나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성장 비결 2 – 세탁 시장에 ‘스마트 공장’ 도입 첫 주자
런드리고에 빨래를 맡기는 이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서비스 중 하나는 ‘이불 빨래’다. 조성우 대표는 스타트업 대표들과 대화를 나누는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이불 빨래 100원 이벤트’를 실시했다. 산처럼 쌓인 이불 빨래 양에 놀랐던’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사실 이불 빨래만은 아니다. 폭염이나 폭우처럼 날씨가 갑작스레 변할 때나 연말연시가 되면 평소보다 어마어마한 빨랫감이 런드리고에 몰려들곤 한다. 런드리고 측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매달 월평균 20%씩 빨래 주문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연말연시에는 직전 3개월 대비 150%씩 물빨래 주문량이 증가하기도 했다.
런드리고의 스마트 세탁 공장. 사진=의식주컴퍼니
런드리고의 스마트 세탁 공장. 사진=의식주컴퍼니
그렇다면 런드리고는 이 어마어마한 빨래를 어떻게 1~2일 사이에 다 처리해 고객들에게 배송하는 것일까. 그 답은 의식주컴퍼니가 세탁업계 최초로 도입한 ‘스마트 세탁 공장’에 있다. 강서와 성수 세탁 공장에 이어 최근 빨래 주문 양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군포에 축구장 2개 크기의 제3 공장을 열었다. 지난해에는 세탁 품질을 높이기 위해 미국의 세탁 팩토리 설계·조달·건설(EPC) 기업 에이플러스 머시너리를 인수하기도 했다.

런드리고 스마트 세탁 공장의 핵심 기술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스타일 스캐너’다. 머신 러닝 기술을 활용해 세탁물을 인식하고 식별한다. 스마트 세탁 공장의 전 과정에 걸쳐 고도로 자동화된 프로세스가 가능하다. 카메라를 통해 세탁물을 촬영한 뒤 기존의 데이터를 통해 학습한 AI 스타일 스캐너가 생활 빨래와 드라이 클리닝 등의 빨랫감을 구분해 주는 것은 물론 고객의 세탁물이 다른 사람들의 것과 섞이지 않도록 해준다.

‘런드렛’에 내놓은 소비자들의 빨랫감은 런드리고 배송팀이 수거해 팩토리에 입고된다. 가장 먼저 거치는 작업은 빨랫감 분류 작업이다. 분류를 마친 세탁물들은 등록과 검수 과정을 거쳐 대형 세탁기를 통해 세탁 작업이 진행된다. 세탁을 마친 뒤에는 건조 공정이 시작되고 열풍 건조로 말리는 옷과 자연 건조가 필요한 옷은 따로 분류된다. 모든 공정이 마무리된 세탁물은 사이즈별로 자동 포장되고 스캐너가 인식해 돌아가야 할 가구별로 세탁물을 모은다.

김 COO는 “세탁 공정 전 과정에 걸쳐 ‘스타일 스캐너’ 외에도 세탁을 자동으로 비닐 포장하고 컨베이어에 옮겨 주는 ‘오토 배깅 머신’ 등 다양한 최첨단 기술들이 적용되고 있다”며 “런드리고의 독자 기술로 구축한 스마트 세탁 공장이야말로 혁신이 드문 세탁업계에 진정한 혁신을 가능하게 했던 요소”라고 설명했다.
성장 비결 3- 적극적인 M&A를 통한 서비스 확장
의식주컴퍼니는 현재 비대면 모바일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 외에도 다양한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지난 4월 첫선을 보인 24시간 무인 세탁소 ‘런드리24’다. 의식주컴퍼니에서 자체 개발한 스마트 스테이션을 통해 드라이 클리닝 서비스와 빨래방(코인워시) 기능을 통합했다. 완전 무인 방식으로 운영되는데다 24시간 문을 열어 놓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편한 시간 언제든 간편하게 오프라인 세탁소를 이용할 수 있다.

문을 연 지 이제 6개월도 채 안 됐지만 런드리고 측에 따르면 ‘런드리24’의 월매출은 이미 10억원을 돌파했다. 현재 계약된 가맹점 수도 누적 80개를 넘어선 상태다. 가맹점 한 곳당 평균 월 거래액은 약 700만원이고 월매출 1000만원을 돌파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의식주컴퍼니는 이와 같은 새로운 서비스를 확장하는 데 인수·합병(M&A)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스타트업 중 하나다. ‘런드리24’ 역시 지난 4월 서울과 수도권 등 60여 곳에 무인 세탁소를 운영 중이었던 ‘펭귄하우스’를 인수해 리뉴얼한 것이다.

이 밖에 올해 초에는 아워홈이 운영하던 호텔 세탁 공장 업체인 크린누리를 인수하며 B2B 세탁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크린누리는 워커힐 등 한국의 주요 5성급 호텔 30여 곳을 고객사로 보유하고 있는 한국 최대 규모의 호텔 세탁 업체다. 기존의 호텔업계는 식음료 셰프웨어나 유니폼, 고객 세탁물 등을 숙박 리넨 세탁물과 분리해 각각 다른 세탁 공장에 맡겨야 했다. 의식주컴퍼니는 이 모든 세탁 과정을 원스톱으로 처리하며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특히 호텔 외에도 레스토랑·피트니스클럽 등 중소형 업체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를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이 밖에 최근에는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첫 목표 시장은 일본의 도쿄와 미국의 뉴욕이다. 올해 후보 도시들에 대한 시장성 검증과 소비자 조사 연구 등을 거쳐 내년 서비스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후보지를 선정하는 데 집값이 높아 ‘더 넓은 공간’에 대한 욕구가 높고 ‘시간’을 쪼개 생활하는 라이프스타일에 익숙한 대도시를 우선순위에 뒀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세탁 서비스에 혁신이 없었고 런드리고와 같은 서비스에 대한 각 지역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긍정적인 반응도 고려했다. 김 COO는 “세탁이라는 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상생활에 보편적으로 필요한 행위이다 보니 언어로 인한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라며 “한국처럼 새벽 배송이 잘 갖춰진 나라는 거의 없기 때문에 각각의 도시마다 현지인들의 경험에 따라 섬세하게 서비스를 설계한다면 충분히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