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은 무지보다 위험…사색과 대화로 생각의 폭을 넓혀야

[경영 전략]
경영자의 공부, 잘못하면 더 크게 망한다[박찬희의 경영 전략]
잘못된 공부는 안 하는 것만 못하다. 꼭 필요한 일에 쓸 시간과 노력을 헛되게 버릴 수도 있고 얼치기 지식으로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그럴듯한 말로 떠보려고 우겨 댄 말과 글이 널려 있어 잠시 정신줄을 놓는 순간 속아 넘어가기 딱 좋다.

함부로 솔직하게 투박한 진실을 얘기했다가 세상의 흐름을 거스를까 걱정돼 우아하고 착한 말만 늘어놓다 보니 알맹이는 사라지고 꾸며지고 포장된 말과 글만 넘쳐난다.

그래서 이왕 공부하려면 정신 바짝 차리고 제대로 해야 마땅하지만 그러려면 너무 힘이 든다. 시간을 내 읽고 생각하는 일은 원래 피곤하고 괴로운 일이다. 당장 돈이 되지도 않아 남들이 얘기하지 않는 혹은 행간에 숨겨진 진실의 조각을 찾으려면 심신이 피폐해진다.

휴가철이면 등장하는 ‘최고경영자(CEO)가 읽는 책’을 생각해 보자. 대부분 미래를 내다보고 더 착하게 세상과 함께하는 얘기들로 가득하다.

볼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 과연 책을 읽는지도 의문이고 피 터지는 투쟁의 현장에 정말 그런 아름다운 얘기들이 쓸모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때 ‘지식 경영’ 운운하며 경영 현장의 학습과 토론이 관심을 끈 시절도 있지만 사실 경영자의 능력은 끝없이 정보를 얻고 여러 각도로 현실에 비춰 보면서 생각과 경험의 폭을 넓히는 과정에서 커진다.

세상을 우습게 알고 더 알아보고 생각하지 않는 자만심, 뭔가 그럴듯한 말과 글로 부족함을 덮으려는 허영심은 경영자를 바보로 만든다. 허영은 무지보다 위험하다.

전략은 미래를 만드는 일이고 다양한 분야의 정보들이 모여 가능성을 더해 간다. 그 가치를 설득해 힘과 돈을 모으고 세상에 알리려면 그럴듯한 말과 전문성 있어 보이는 기법들이 등장하는데 자칫 사람들의 무지와 허영을 등치는 일도 벌어진다.

마음이 빈 경영자가 여기에 휘둘리면 회사에 거품이 들어찬다. 눈앞의 실적과 문제 해결에만 매달리는 꽉 막힌 경영자보다 더 한심한 일이다.
생각의 뿌리가 없는 조각 지식K 사장은 그룹의 전반적 관리 통제를 책임진 유력한 경영인이다. 계열사의 사업 전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물론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폭넓은 소양을 지녔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그의 지식은 여기저기서 주워 담은 파편화된 조각들에 불과하다.

숫자와 연도는 정확히 기억하지만 사실 관계의 해석은 억지로 짜 맞춘 기사나 보고서를 외웠을 뿐이다. 자신의 관점과 이에 따른 추론이 없으니 조금만 파고들어 물어보면 앞뒤 말이 다르고 자기 생각이 없다.

혁신과 변화를 저명한 학자들의 이름과 함께 얘기하지만 회사의 현안에 대해서는 사업부들의 숫자를 챙겨 임원들을 줄 세우고 트집 잡는 구태의연한 방식이 전부다.

미래와 비전을 장엄하게 강조하지만 그의 강연과 인터뷰에서만 볼 수 있을 뿐 구체적 사업으로 실현되는 일은 없다. 미래와 비전을 생각하는 격조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데 그치면 다행이지만 불행히도 힘없는 실무 직원들은 눈치껏 ‘트렌드 리포트’에 맞춘 사업 계획을 만들어 투자했다가 낭패를 본다.

K 사장이 즐겨 인용하는 역사 이야기는 사실 특정 관점에 따라 짜 맞춘 개설서의 스토리일 뿐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조선 선비들이 임진년 조일전쟁에서 소설 ‘삼국지’에 자주 나오는 매복·화공과 같은 ‘기책(奇策)’을 쓰지 않았다고 한탄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매복은 고도로 훈련된 정예병이나 가능한 일이고 부싯돌을 쓰던 시절에 화공은 연료와 자재가 갖춰져도 턱없이 힘들다).

사실과 맥락을 놓고 추론하지 않는 단순 암기, 그것도 엉터리 암기를 현실의 경영에 들이댄다면 소설에 맞춰 경영하는 셈이다.

대기업 경제경영연구소나 컨설팅 회사의 보고서도 잘못 쓰면 독이 된다. 특히 경영 관련 보고서는 생각해 볼 점을 제시하는 것이지 유일의 진리,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세상의 시선을 끌기 위해 과장과 윤색이 더해진 것도 많다. K 사장과 임원들이 골프장에서 자주 대화 소재로 삼는 인문학이나 경영 관련 담론은 다양한 논점들 중에서 일부를 쉽게 압축한 것이어서 그 원래의 의미와 배경을 모르고 읊어 대면 얕은 안목만 드러낼 뿐이다.

생각의 뿌리가 없는 경영자는 그럴듯한 정책들을 늘어놓고 이것저것 건드리다 힘만 빼는데 건수 잡아 회삿돈 쓰며 권세를 키우는 영악한 실무진과 짝이 맞으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10억원 빼돌려 나눠 가지면 감옥에 가는데 1조원짜리 엉터리 사업을 벌이면 승진을 하니 어이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국가 경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허영과 무지를 넘어서야권세가의 자손이나 비서 업무를 오래 한 사람들은 옆에서 보고 들은 것이 많다 보니 대단히 유능해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얘기해 보면 자신의 관점과 추론이 없는 조각 지식일 뿐이고 스스로 정보를 찾아 가닥을 잡아 판단하는 능력이 없는 경우가 있다. 물론 유능하면 어깨너머 공부라도 보고 들으며 생각해 깨우칠 수도 있지만 세상을 설득해 힘을 모으고 어려운 결심을 하는 능력은 또 다른 얘기다.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늘 하던 일만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하는 무지함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뛰어난 제품 기술로 성공한 기업인이 경제와 금융에 대한 이해가 없어 무너진 사례는 여전히 많고 달라지는 산업과 기술을 따라잡지 못해 순식간에 퇴물이 된 회사들도 많다. 기계 장비 부품 사업으로 중견기업이 된 M사의 G 사장은 말만 요란한 신문·잡지의 경제 기사들을 혐오한다. 뻔한 얘기를 꾸며 세상을 현혹시킨다고 생각해서다.

말과 글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앞에서 본 K 사장과 달리 꾸밈과 거품이 없는 G 사장의 질박(質朴)함이 돋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G 사장이 혐오하는 혁신과 변화, 미래 비전이 업계와 금융권이 공유하는 담론이 되면 여기 맞춰 투자 받고 사업하는 데 무리가 없다. 세상에는 ‘격조 있는 말과 글’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저것 늘어놓은 정책들에 나랏돈이 들어가면 먼저 가져다 써 밑천으로 삼을 필요도 있다.

G 사장이 조금만 자존심을 접고 남들이 떠드는 얘기도 따라 하면서 세상 흐름에 맞춰 주면 사업도 편하고 돈도 쉽게 벌 수 있다. 물론 요란한 말과 글에 중독돼 중심이 흐트러지거나 K 사장과 같은 허영심에 점염되지 않으려면 질박한 초심을 잃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부는 무턱대고 단편적인 정보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더 알아보고 궁리해 실천하면서 지식과 경험의 폭을 키워 가는 과정이고 사색과 대화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고집스럽게 철 지난 지식에 매달리거나 몰래 숨어 기발한 발상만 거듭하다가 황당한 일로 이어진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여기저기 생겨나 학생 모집도 힘든 이런저런 ‘최고위 과정’들도 겉핥기 지식으로 허영심이나 충족한다면 망하는 편이 낫고 사색과 대화의 장이 된다면 그나마 제값을 할 것이다. 사색과 대화를 함께할 친구는 생각보다 적기는 하니까.

속담에는 공부에 대한 지혜들이 곳곳에 있다. 세 명이 걸어가면 스승이 한 명은 있으니 멀리 대단한 가르침만 찾을 일이 아니고 생각만 많고 공부는 안 하면 허망해지고 더 생각하는 공부가 없으면 꽉 막힌 사람이 된다. 꺠달음은 어느 날 갑자기 오거나 꾸준히 쌓여 얻는다.

사색과 함께한 대화는 소크라테스와 부처님이 모두 애용하신 진리로 가는 지름길이다. 무지와 허영을 넘어 회사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시작해 보자.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