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뛸까?” 로켓배송 8년 인력 시장 블랙홀 된 쿠팡 [스페셜 리포트②]

고용 규모 삼성전자·현대차 이은 3위, 각종 사건 사고에도 쿠팡으로 몰리는 사람들

[스페셜 리포트 : 가는 곳마다 전쟁터, 파괴자 쿠팡]

쿠팡이 한국의 최대 전자 상거래 사업자가 될 수 있었던 핵심 경쟁력은 첫째가 ‘물류 인프라’다. 쿠팡은 거래 중개 수준에 벗어나지 못했던 기존 온라인 유통 업체들과 달랐다. 직매입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로켓배송’이라는 차별화된 배송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했다. 로켓맨(현 로켓친구)으로 대표하는 플랫폼 노동자를 탄생시켜 한국 고용 시장의 블랙홀이 됐다. 쿠팡은 2020, 2021년 2년 연속 국내 고용 증가 1위 기업이다. 삼성도, 현대차도 제쳤다.

---

“쿠팡 뛸까?”

취업 준비생 민준(23·남) 씨에게 쿠팡은 곧 돈이다. 급하게 생활비가 필요할 때 그는 언제나 쿠팡 물류센터를 찾는다. “친구들 사이에서 꿀 알바(아르바이트)라고 해요. 몸은 좀 힘들어도 하루만 가도 돈 나오지, 주휴 수당 챙겨 주지, 급전 필요할 때마다 쿠팡 뛰자고 해요.”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에서 요식업을 하는 자영업자 최 모(45) 씨는 20분 거리에 쿠팡 물류센터(쿠팡 안산2센터)가 들어선 뒤 구인난을 겪고 있다. “알바 공고를 올려도 연락이 안 와요. 자영업자 커뮤니티에서는 ‘쿠팡’ 때문이란 말이 나온다니까요.”

광주광역시 제조 공장에서 근무하는 임 모(47·여) 씨는 쿠팡 물류센터가 새로이 들어선다는 말에 이직을 고민 중이다. “저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들까지 모두 쿠팡 간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어요. 급여 조건이나 복지가 여기보다 낫다고 하네요.”

고용 창출 한국 1위, 新 인력 시장의 등장

쿠팡이 인력 시장의 블랙홀이 됐다. 자영업자 사이에선 쿠팡 물류센터가 생기면 그 일대 알바를 빨아들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수도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쿠팡은 서울·인천·경기도뿐만 아니라 충청도·전라도·경상도 등 비수도권을 포함해 30개 이상 지역에서 100개 이상의 물류센터를 운영한다. 사실상 강원을 제외한 전국이 무대다. 쿠팡은 각 물류센터마다 셔틀버스를 운영한다. 쿠팡의 고용 범위는 물류센터가 있는 시군구를 넘어선다. 쿠팡 측은 ‘인구 70%가 쿠팡의 물류 인프라에서 10km 내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힐 정도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쿠팡은 2021년 말 기준으로 6만5000명 이상을 고용했다. 한국 기업 중 삼성전자·현대차에 이은 3위다. 창업 12년밖에 안 됐기 때문에 양적인 면에서는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비수도권 지역에서만 약 1만7000명을 고용했다. 이것도 하루 아르바이트는 포함하지 않은 숫자다.

쿠팡은 2021년 한 해에만 1만5857명을 고용했다. 고용 증가율 1위로, 2위 기업인 삼성전자(5659명)의 약 3배 가까운 수준이다. 쿠팡은 2020년, 2021년 2년 연속 한국의 고용 증가 1위 기업이다.

지역별 고용 증가율을 보면 제주·경남·광주·충북·울산·부산·대구·전북·전남·경기 등 총 10개 지역의 고용 증가율이 전국 평균 고용 증가율보다 높다. 쿠팡이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비수도권 지역 발전에 톡톡히 역할을 하는 셈이다. 허성무 창원시장은 2021년 쿠팡 물류센터의 설립 당시 “대규모 일자리 창출을 통한 고용 위기 극복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한 바 있다. 실제 창원에서의 고용 효과가 입소문을 타자 경남권 30개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해 전국의 지자체들이 앞다퉈 쿠팡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쿠팡의 대규모 고용은 2014년 직접 배송 시스템인 ‘로켓배송’의 도입과 함께 시작됐다. 쿠팡이 매입부터 배송까지 직접 책임지는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였다. 당시 쿠팡은 한국의 전자 상거래 기업 중 최대 규모의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며 물류센터 인력부터 배송 인력까지 관련 일자리를 대규모 창출했다. 전국 단위 배송을 기반으로 하는 로켓배송 서비스의 특성상 전국에 걸쳐 대규모로 일자리가 생겼다.

쿠팡의 자체 배송 운전사를 뜻하는 ‘쿠팡맨(현 쿠팡친구)’은 고소득이 가능하다는 입소문을 탔다. 쿠팡맨이 ‘플랫폼 노농자’의 대명사가 됐을 정도다.

물론 ‘고용의 질’을 두고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계약직과 일용직 등 단기 고용 인력이 많아 고용 안정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지적, 상대적으로 열악한 물류센터 노동 환경에 비판이 따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쿠팡은 2017년 2~4월 구조 조정 차원에서 쿠팡맨을 대거 해고하며 내홍에도 휩싸였다. 전·현직 쿠팡맨 76명으로 구성된 쿠팡사태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전체 쿠팡맨 2237명 중 9.7%인 216명이 이 시기 회사를 떠나야 했다. 당시 쿠팡맨들은 파업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고발로 맞섰다.

이후에도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2021년 6월에는 경기도 이천에 있는 쿠팡 덕평 물류센터에서 불이 나 소방관 1명이 순직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새벽 배송 업무에 나선 배송 운전사가 사망하자 과로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고 부천에 있는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환자가 집단 발생하며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논란에도 쿠팡행…"지역 경제 활성화"

논란과 사건·사고 그리고 최저임금(9160원, 쿠팡 물류센터 파트너 기준)…. 그럼에도 쿠팡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노동 시장이 얼어붙은 2020~2021년에는 쿠팡 일용직이 일종의 사회적 쿠션 역할을 했다. 여행업·숙박업 등 관련 업종이 휴업하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쿠팡으로 향했다. 쿠팡은 폭증한 주문량에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쿠팡이 직접 고용한 인원 외에 간접 고용 효과(직접 고용 인원에 도소매업 고용유발계수를 곱해 산정)가 발생한 인원까지 포함하면 2021년 한 해 동안 약 37만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발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쿠팡에 간 이유는 딱 하나다. 가장 빠르고 간편하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쿠팡의 일용직·계약직 지원 절차는 간편하다. 서류 면접 등의 일반적인 채용 절차도, 나이 제한도 없다. 쿠팡 물류센터의 계약직은 ‘홈페이지 지원→상담사 안내→오리엔테이션(웰컴데이)’ 단계 후 근무가 시작된다. 아르바이트는 오리엔테이션조차 없다. 희망하는 근무일 전날 문자 한 통으로 지원 절차가 끝이 난다. 취업 준비생 영지(27·여) 씨는 “단기 알바를 하려고 해도 경력이나 자격증을 바라는 곳이 많은데 쿠팡은 문자 지원이나 애플리케이션으로 간편하게 지원할 수 있으니 구직자 부담이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쿠팡 아르바이트 모집 문자. 사진=쿠팡 광고 캡처

이렇다 보니 이색 풍경도 생겼다. 과거 일자리를 구하려면 인력 시장에 새벽부터 줄을 서거나 알바천국과 같은 중개업소를 통해 일자리를 구했다. 지금은 바로 ‘쿠팡’이다. 클릭 한 번에, 문자 한 통에 접수가 완료된다.

쿠팡보다 더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가 많다는 점도 쿠팡이 인력 시장의 블랙홀이 된 이유 중 하나다. 영지 씨는 “이전에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는데 주휴 수당 문제로 노동청을 오가며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다른 알바는 근무 시간이 불규칙하거나 최저임금, 주휴 수당과 같은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곳도 많은데 쿠팡은 그런 면에서 문제가 없어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쿠팡은 근무일 기준 다음날 오후 10시 전(공휴일·주말 제외)에 일급을 준다. 근로계약서 작성과 4대보험 가입, 주휴 수당 지급으로 법적 요건도 지킨다. ‘뭐든 다 배달합니다’의 저자 김하영 씨는 “쿠팡은 최저임금 일자리 중에는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며 “당연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것뿐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게 특별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크지 않다는 점 또한 구직자, 특히 2030세대 구직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른 일자리와 비교해 입사와 퇴사 절차에 따른 부담이 적고 인간관계가 거의 없기 때문에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적다는 것이다. 1년째 수시로 쿠팡 물류센터 알바를 뛰는 민준 씨는 “몸이 좀 힘들어도 진상 손님을 상대할 필요가 없고 퇴근 후에는 일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하루 근무 후 힘들면 그만뒀다가 다시 지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톡에서 '쿠팡'을 검색하면, 구직구인 문의가 가능하다. 사진=쿠팡 카카오톡채널 캡처.

이는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 부는 ‘조용히 그만두기(quiet quitting)’ 열풍과도 맞닿아 있다. ‘당신의 일이 당신의 삶이 아니’라는 슬로건하에 ‘일 중심’, ‘회사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직장과의 거리를 두자는 운동인데 쿠팡의 유연한 고용과 근무 환경이 MZ세대의 정서에 맞아든 셈이다.

여성·비수도권·4050세대 등 고용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도 쿠팡은 매력적인 일자리다. 2021년에만 2만 명 이상의 여성을 직접 고용했다. 이는 2019년보다 205% 증가한 규모다. 여성 인력이 증가하면서 쿠팡 배송 인력을 뜻하던 ‘쿠팡맨’도 최근 ‘쿠팡친구’로 명칭을 바꿨다.

앞으로도 쿠팡은 고용 규모를 보다 확대할 계획이다. 경상남도·대구광역시·광주광역시·대전광역시 등 총 4개 지역에서 5개 물류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고용 예정 인원만 9300명, 투자 예정 금액은 1조원이 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쿠팡 또한 고용과 지역 경제 활성화 등 회사가 지난 8년간 물류 인프라에 쏟은 디지털 기술 투자가 실물경제 성장으로 이어졌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강한승 쿠팡 대표는 2022년 9월 28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디지털 도약 전략 발표식’에서 “쿠팡은 지난 12년간 디지털 혁신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을 변화시켜 왔다”며 “쿠팡의 로켓배송은 인공지능과 자동화 로봇 기술이 집약된 최첨단 물류 인프라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디지털이 고용을 줄일 것이라는 통념을 깨고 쿠팡의 디지털 기술은 고용과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졌다”며 “코로나19 사태로 힘들었던 지난 2년간 쿠팡이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디지털 혁신이 있어 가능했다”고 말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