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윤재 홍익대 캠퍼스타운사업단 창업지원센터장, 와디즈와 ‘크라우드 펀딩 해커톤’ 개최 앞둬

[인터뷰]
‘디자이너의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스타트업 키웁니다”
홍익대는 미술·디자인 등 예술 분야에 강점이 있는 대학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일까. 디자인과 예술 그리고 ‘스타트업’은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선입견을 깨부수는 인물이 있다. 남궁윤재 홍익대 캠퍼스타운사업단 창업지원센터장이다. 캠퍼스타운은 서울시가 자치구·대학과 협력해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홍익대 캠퍼스타운사업단 창업지원센터는 2019년 이후 지금까지 239개의 스타트업을 배출했다. 최근에는 창업지원센터의 스타트업팀을 위한 ‘창업아카데미’도 새롭게 열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남궁 교수는 어떻게 ‘스타트업 육성’에 빠져든 것일까. 9월 23일 양재 더케이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이날도 그는 창업 경연대회 심사위원을 맡아 더 좋은 창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 학생들과 머리를 맞대는 중이었다. 그는 “산업 생태계에서 디자이너들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있지만 창업은 디자이너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오래 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라며 “홍익대의 강점을 살려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자이너의 시각’ 키우는 혁신 놀이터
디자인 전문 회사에서 오래 일한 경력이 있는 남궁 교수는 5년간 호주에서 유학 후 한국에 돌아왔다. 그 후 홍익대를 비롯한 여러 학교에서 디자인을 가르쳤다. 그가 산업디자인을 가르치며 늘 강조하는 것은 ‘제품’과 ‘상품’의 차이다. 제품은 출시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그 제품을 찾는 것은 아니다. 상품은 단지 제품을 출시하는 것을 넘어 사용자들이 실제로 ‘찾고 사용하는 제품’을 의미한다. 2019년 그가 홍익대 창업지원센터 설립에 발벗고 나선 이유다. 학생들이 직접 회사를 설립하고 제품을 출시하는 과정을 겪으며 ‘상품’과 ‘제품’의 차이를 경험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자 한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디자인’이라고 하더라도 실제 시장에서 이를 판매했을 때 소비자들의 반응이 디자이너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홍익대에 실력이 뛰어난 친구들이 많아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실력을 인정받더라도 시장의 평가는 냉정하잖아요. 실제 시장에서 이들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낯선 사람들에게 시장에서 자신들이 디자인한 제품을 평가받을 기회’가 필요했던 겁니다.”
홍익대 창업지원센터에서 학생들이 자신들의 창업 아디어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홍익대 캠퍼스타운사업단 창업지원센터 제공
홍익대 창업지원센터에서 학생들이 자신들의 창업 아디어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홍익대 캠퍼스타운사업단 창업지원센터 제공
홍익대는 ‘디자인’에 강점이 있는 학교인만큼 창업지원센터 역시 초창기에는 ‘디자인 제조 기반의 창업’에 초점을 맞췄다. 예를 들어 의류·액세서리·가방 등을 디자인하고 이를 실제 사업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형의 디자인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창업 아이템에서 그 범위가 상당히 넓어졌다. 애플리케이션(앱) 디자인을 포함해 최첨단 기술과 디자인을 접목하는 경우들이 늘고 있다.

성과도 나쁘지 않다. 현재까지 홍익대 창업지원센터를 거쳐 간 239개 스타트업팀의 누적 매출은 30억원 이상이다. 꾸준히 수익을 창출하는 스타트업팀이 하나둘 탄생하면서 이른바 ‘대박 가능성’이 엿보이는 팀들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팀이 배달 음식용 플라스틱 그릇을 디자인하는 ‘푸들’이다. 이들의 첫 아이디어는 단순했다. 배달 음식의 용기는 배달하는 과정에서 음식물이 새지 않도록 하는 기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다 보니 음식을 먹는 사람들로서는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고 즐기기 어렵다. ‘어떻게 하면 배달 음식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해야 더 먹음직스럽게 음식을 담을 수 있는 배달 용기를 만들 수 있을까’로 이어졌다. 배달 용기의 디자인을 바꿈으로써 배달 음식에 대한 사용자들의 경험까지 바꾼 것이다. 푸들팀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친환경 바이오 플라스틱을 활용해 ‘재사용’이 가능한 용기를 개발했다. 푸들팀의 다회 용기는 향후 시장에서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아 올해 초 시드(초기) 투자를 유치하는 데까지 성공하기도 했다.
메타버스 패션쇼 이어 ‘와디즈와 공동 경매’ 준비 중
이와 같은 사례는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사무실 등에 흔히 걸려 있는 화이트보드는 딱히 디자인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 왜 화이트보드는 예쁘면 안 되는 것일까. 남궁 교수와 학생들은 ‘화이트보드’도 또 하나의 가구와 같은 개념으로 접근했다. 자작나무 합판을 사용해 화이트보드를 제작함으로써 멋스러운 디자인을 살리며 동시에 자작나무 냄새가 은근히 배어 나와 사용자들이 더욱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출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최근에는 LG전자와 협력해 TV와 같은 전자 제품의 디자인에 도전한 스타트업팀도 있다. 학생들의 상상력을 동원해 어느 집에나 걸려 있는 평범한 TV에 ‘혁신’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이 중에서 특히 좋은 반응을 얻은 작품이 있다. 집 안에 놓여 있는 TV를 ‘디지털 어항’처럼 쓸 수 있도록 디자인해 바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이들이 TV 속 어항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른바 ‘물멍(물을 바라보며 멍하게 보내는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홍익대 스타트업지원센터를 통해 창업에 성공한 학생들의 아이템을 소개하는 남궁 교수의 목소리에도 뿌듯함이 묻어났다.

“창업지원센터를 이끌면서 학생들에게 스타트업과 관련한 여러 조언을 해주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죠.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이곳에서 마음껏 발휘한 상상력을 실제 세상에 내보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LG전자에도 지인 한 명 없지만 제가 먼저 전화를 걸어 우리 창업센터를 소개하고 협력을 제안했어요. 마찬가지로 다양한 업체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이와 같은 기회를 많이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이와 같은 대표적인 행사가 홍익대 창업지원센터에서 해마다 개최하는 ‘크라우드 펀딩 해커톤’이다. 쉽게 말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스타트업팀의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지난해 처음 열렸는데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을 통해 펀딩을 받고 제품을 출시하는 과정까지 진행한 바 있다. 올해는 와디즈와 함께 행사를 준비 중이다. 구체적인 계획은 현재 논의 중이지만 곧 홍익대 학생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시제품으로 와디즈에 소개할 예정이다.
사진=김기남 기자
사진=김기남 기자
최근에는 네이버 제페토와 같은 메타버스 공간에서 패션쇼도 열었다. 전시회의 주인공은 패션 브랜드 리맨티스트다. 의류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스타트업으로, 꾸준히 연 4억원대 매출을 올리고 있는 업체다. 하지만 레드오션이나 다름없는 의류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서야 했다. 남궁 교수의 제안으로 ‘가상의 현실 공간’인 메타버스 플랫폼 진출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의류 디자인만 해본 리맨티스트에는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었다. 디자인한 의류를 3D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이다. 남궁 교수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창업센터 내의 또 다른 스타트업팀을 떠올렸고 이 둘을 매칭해 ‘윈-윈’이 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들은 아바타가 입을 수 있는 옷들을 디자인해 이를 총 6개 메타버스 플랫폼에 전시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최근 남궁 교수가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하나 더 있다.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선 보일 수 있는 기회를 해외로 넓혀 가고자 한다. 해외 정부나 대학과의 교류를 통해 홍익대 창업지원센터의 스타트업팀들이 3개월 정도 해외에서 보내고 또 해외의 학생 창업팀이 홍익대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홍익대 캠퍼스타운사업단 학생지원센터뿐만 아니라 각 대학들마다 학교의 특색을 잘 살린 스타트업 지원이 더욱 활성화됐으면 합니다. 다른 대학의 학생 스타트업팀에서 디자인 역량이 필요할 때 홍익대가 지원해 줄 수 있고 또 반대로 홍익대 또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고요. 각자의 특색이 뚜렷한 스타트업팀이 더 많이 나와야 전체적인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이와 같은 학생 스타트업은 궁극적으로 향후 한국 기업들에 영향을 공급해 주는 ‘인큐베이터’ 역할이 크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해외 학교들과의 교류를 통해 학생들이 좋은 기업가로서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할 겁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