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아마존 ‘록인 전략’, BM 의심에도 공격적 투자 지속…12년의 명과 암
[스페셜 리포트 : 가는 곳마다 전쟁터, 파괴자 쿠팡] “쿠팡 없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질문하게 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미션 아래 쿠팡의 야심 찬 도전이 시작된 지 12년이 흘렀다. 쿠팡은 이제 게임 체인저란 표현도 부족할 만큼 크게 판을 흔들고 있다. 배송 물류부터 시작해 페이, 음식 배달,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장까지 한번 발을 들이면 그곳에는 지진이 일어난다.한국 최초 새벽 배송으로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커머스업계의 판도도 뒤집었다. 그 사이 쿠팡맨과 쿠팡 물류센터를 통해 일자리를 어마어마하게 늘렸다. 한국 기업 중 임직원 수로 삼성전자와 현대차에 이어 3위다. 사업이 한국에 머물러 있지만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데도 성공했다.
화제성도 압도적이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영역을 확장할 때마다 관심도,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이용자가 늘어난 만큼 팬도, 안티-쿠팡도 생겼다. 201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쿠팡이 커질수록 쿠팡에 대한 질문은 더욱 커지고 있다. “쿠팡, 도대체 무슨 회사인가?”
쿠팡은 인터넷상에서 사람들을 모아 공동 구매하면 할인해 주는 소셜 커머스 스타트업으로 시작했다. 당시 온라인 쇼핑 업체는 춘추전국시대였다. 티몬·위메프·11번가·G마켓·옥션 등 이미 시장에 진입한 수많은 업체가 있었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조금이라도 더 싸고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배송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쿠팡은 생존을 위해 과감한 선택을 했다. 2014년, 전날 밤 12시에 주문하면 다음날 배송해 주는 ‘로켓배송’ 서비스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선 물건을 직접 사들여 창고에 쌓아 놓고 직접 배송하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김범석 창업자는 “완전히 새로운 유통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것”이라고 말했다.공격적 투자, 사방의 적 즉시 공격적 투자가 이뤄졌다. 세콰이어캐피탈과 블랙록 등에서 받은 투자금 4억 달러가 로켓배송의 종잣돈이 됐다. 김 창업자는 2015년 직배송 서비스인 로켓배송에 1조5000억원을 투자하고 3만9000명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전자 상거래 시장에선 ‘무모한 투자’라고 했다. 택배업계는 반발했다. 화물 운송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다며 쿠팡을 상대로 잇달아 소송을 제기했다.
소비자들은 환호했다. 전에 없던 속도와 서비스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수도권을 넘어 전국으로 확대해 달라는 민원이 빗발쳤다. 새로운 배송 시스템은 글로벌 투자자도 사로잡았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10억 달러, 당시 우리 돈으로 약 1조원을 투자했다. 김 창업자는 “로켓배송 도입 당시 업계 전반에서 무모한 투자라며 우려가 많았지만 고객의 반응은 좋았다”며 “쿠팡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쿠팡의 투자 속도는 더 빨라졌다.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국의 전자 상거래 업체 중 최대 규모의 물류 인프라를 구축했다. 한국 1위 대형마트인 이마트 등 대기업 유통사와의 가격 전쟁도 서슴지 않았다. 가는 곳이 모두 전쟁터로 변했다.
덩치도 커졌다. 로켓배송 서비스 도입 전후인 2013년(447억원)에서 2014년(3484억원) 사이 700% 가까이 매출이 늘었다. 그전에는 상품 거래액이 아닌 거래에 따른 수수료가 매출이었다면 이제는 상품 거래액이 쿠팡의 매출로 잡혔기 때문이다. 2015년 1조1337억원, 2016년 1조9159억원, 2017년 2조6846억원…. 파죽지세였다.
재무제표는 나빠졌다. 매출이 늘수록 적자 규모도 커졌다. 2013년 영업 손실 1억원은 로켓배송을 시작한 2014년 마이너스 1215억원으로 불어났다. 2015년 마이너스 5470억원, 2017년 마이너스 6388억원….
2017년에는 자본금도 까먹으며 자본 잠식 상태에 빠졌다. 2018년 1분기 유상 증자를 통해 3021억원을 확보하면서 자본 잠식에서는 벗어났지만 ‘위험한 성장’ 논쟁이 꼬리를 물었다. 업계에선 ‘쿠팡은 팔면 팔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다’, ‘수년 내에 한계에 부닥칠 것’이라는 비관론이 흘렀다. 쿠팡은 “계획된 적자”라고 답했다. 그리고 다시금 물류 인프라 확대에 투자를 단행했다. 위기론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때 다시 구원 투수가 등장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가 20억 달러를 쿠팡에 쏟아부었다.
쿠팡은 사업 영역 확대로 화답했다. 2019년 신선식품 새벽 배송 서비스인 ‘로켓프레시’를 선보였고 음식 배달 서비스인 ‘쿠팡이츠’도 내놓았다. 기존 성공 방정식 그대로 파격적인 가격과 서비스를 앞세웠다. 마켓컬리·배달의민족이 쿠팡의 새로운 경쟁자로 자리 잡았다. 신경전도 치열했다. 배달의민족은 쿠팡이 영업 활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불공정 거래 행위를 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같은 해 LG생활건강은 쿠팡을 대규모 유통업법,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에 신고했다. LG생활건강은 쿠팡이 상품을 반품하거나 금품을 제공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주문을 취소하고 거래를 종결하는 등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말했다. 위메프도 쿠팡을 공정위에 제소했다. 위메프는 자사가 최저가 정책을 펼치자 쿠팡이 납품 업체들을 압박해 위메프에 상품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사방이 쿠팡의 적이었다. 하지만 쿠팡은 경쟁자를 신경 쓰지 않는 전략을 유지했다.
첫 유료화 서비스도 내놓았다. 쿠팡은 2019년 10월 매달 2900원을 지불하는 유료 회원제 서비스인 ‘로켓와우’를 선보였다. 월 회비를 지불하면 배송 및 30일 내 반품 서비스 무료 혜택이 주어졌다. 회비를 냈으니 본전을 찾기 위해서라도 쇼핑몰을 옮겨 다니지 않고 한 곳에서 계속 쇼핑하게 만드는 이른바 ‘록인’ 전략이었다. 아마존도 이 방식으로 수억 명의 유료 회원을 확보한 후 쇼핑, 음식 배달, 동영상 콘텐츠 서비스 등 사업 영역을 무차별 확장했다.록인 전략으로 충성 고객 확보 쿠팡도 아마존의 성공 방식을 따랐다. 2020년에는 급증한 회원 수를 바탕으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로켓배송으로 확보한 이용자를 기반으로 플랫폼 사업자로 변신을 꾀한 것이다. 쿠팡은 이를 위해 동남아시아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훅(Hooq)’을 인수하고 ‘온라인 음악 서비스 제공업’과 ‘기타 부가 통신 서비스’를 사업 목적으로 추가했다. 서비스 명은 쿠팡플레이다.
쿠팡식 공격적 투자는 OTT 서비스에도 이어졌다. 월 2900원의 로켓와우 멤버십 혜택에 쿠팡플레이 무제한 시청을 추가했다. 한국의 OTT 시장에서 최저 가격으로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콘텐츠 확보를 위해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손흥민 선수의 경기 중계권, 도쿄 올림픽 온라인 중계권 등 각종 스포츠 중계권을 독점으로 따내며 이용자 확보에 열을 올렸다.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2021년 말 기준 유료 멤버십 회원 수는 900만 명, 한 달 매출만 261억원을 올렸다(월 2900원 기준).
물론 공격적 투자 과정에서 잡음도 있었다. 쿠팡플레이는 지난 7월 27일 개봉작인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을 한 달 만에 독점 공개 서비스했다. 8월 개봉작인 영화 ‘비상선언’도 한 달 도 채 안 돼 쿠팡플레이에 올랐다. 극장 상영이 이어지고 있는 대작이었기에 영화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쿠팡플레이의 자체 드라마인 ‘안나’는 편집권 침해 논란에 휩싸였다. 쿠팡과 감독 양측의 주장은 첨예했지만 문화계에선 “쿠팡의 갑질”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쿠팡은 록인 전략으로 확보한 이용자 수를 기반으로 2021년 3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입성했다. 상장 첫날 공모가인 35달러에서 40.7%(14.25달러) 오른 49.25달러에 거래를 마감하며 시가 총액 약 100조원을 기록했다. 기업공개(IPO)로 쿠팡은 46억 달러(약 5조2200억원)를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뉴욕 증시에서 IPO를 한 기업 중 최고 실적이다.
쿠팡은 조달 자금으로 또다시 공격적 투자에 나섰다. 신규 물류 인프라를 경남 창원·광주광역시 등 지역으로 넓혔다. 수천억원대 적자 행진은 계속됐다. 상장 첫날 장중 69달러까지 올랐던 주가는 하락세를 거듭했다. 상장 1년 2개월 만인 지난 5월에는 8.98달러(52주 최저가)까지 떨어졌다. ‘계획된 적자’ 이론은 투자자들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에 역부족이었다.
쿠팡은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2022년 6월 유료 멤버십인 ‘로켓와우’ 회원비를 월 2900원에서 4990원으로 72% 정도 인상하는 결단을 내렸다. 회원 수 900만 명을 기준으로 한 달 188억원의 추가 매출을 꾀하는 전략이었다. 실적에서 선취점도 땄다. 쿠팡은 2014년 로켓배송 론칭 후 처음으로 올해 2분기에 835억원(6617만 달러) 규모의 조정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이 순이익을 냈다고 발표했다. 지난 1분기에는 로켓배송·로켓프레시 등 프로덕트 커머스 분야에서만 조정 EBITDA 흑자를 냈지만 1분기 만에 전체 사업에서 흑자 구조로 전환한 것이다.
적자 폭도 줄였다. 2분기 영업 손실은 84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7%, 직전 분기 대비 67.3% 줄었다. 쿠팡은 상장 이후 2500억~6500억원의 영업 손실을 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1000억원 미만으로 적자 폭을 줄였다. 애널리스트들은 환호했다. ‘고무적인 결과’라고 칭했다. 김 창업자는 "이번 2분기 실적은 장기적인 비즈니스의 수익성을 보여주는 일부에 불과하다”며 “장기적으로 7~10% 이상의 EBITDA 마진을 달성할 수 있다고 그 어느 때보다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자신감에 근거도 있다. 로켓배송 서비스가 출범된 지 8년, 쿠팡은 올해로 한국 이커머스 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전국 단위의 익일 배송망 서비스 구축을 눈앞에 두고 있다. 쿠팡은 현재 전국 30개 지역에 100여 개 물류센터를 구축했다. 2024년까지 경남권·대전·대구·광주 등에 추가 물류센터를 신설함으로써 전국 단위 완벽한 로켓배송을 그리고 있다. ‘계획된 적자’ 끝에 마침내 이룬 규모의 경제다.
이는 뒤늦게 물류 인프라 경쟁에 뛰어든 신세계·롯데·컬리 등이 현재 수도권 위주로 물류센터를 구축한 것과 대조되는 행보다. 여기에 빠른 배송을 포기하는 업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쿠팡을 중심으로 전자 상거래 업계가 재편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8년 전, 쿠팡이 아마존의 성공 방정식을 따를 때 한국 시장은 경쟁자가 많아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전문가들과 매스컴의 전망을 보란듯이 뒤집은 것이다.
쿠팡의 물류 인프라 구축은 한국 경제에 보탬이 되기도 했다. 2021년 말 기준으로 6만5000명 이상을 고용했다. 한국 기업 중 삼성전자·현대차에 이은 3위다. 특히 비수도권 지역에서만 약 1만7000명을 고용했다. 강한승 쿠팡 대표는 이러한 성과가 디지털 기술 투자에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9월 28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디지털 도약 전략 발표식’에서 “디지털이 고용을 줄일 것이라는 통념을 깨고 쿠팡의 디지털 기술은 고용과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졌다”며 “코로나19 사태로 힘들었던 지난 2년간 쿠팡이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디지털 혁신이 있어 가능했다”고 말했다. 쿠팡의 최우선 가치, WOW 쿠팡식 비즈니스 모델은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쿠팡은 지난 7월 자사 여행 상품 전문관인 쿠팡트래블을 통해 펜션 상품 6000여 개를 대상으로 하루 전 취소 시 100% 환불 보장 정책을 내놓았다. “여행에 대한 고객의 가장 큰 불만은 취소·환불에 관한 것”이라며 급작스러운 여행 일정 변경으로 예약을 취소할 때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단점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100% 환불 과정에서 발생한 펜션 업주들의 위약금 손실액은 쿠팡이 전액 보상할 방침이다. 기존 쿠팡의 록인 전략과 마찬가지로 초기 공격적인 투자로 시장점유율을 높이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쿠팡의 과감한 정책에 업계는 또 부글부글하고 있다. 전장이 하나 더 생겼다. 쿠팡의 환불 정책이 숙박 예약 시장 전체를 교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쿠팡 측은 고객 감동이란 최우선 가치에 따른 서비스라고 주장한다. 이철웅 쿠팡트래블 총괄 디렉터는 “여행에 대한 고객의 가장 큰 불만은 취소·환불에 관한 것”이라며 “쿠팡은 ‘고객 감동(Wow the customer)’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고 여행 분야에서도 혁신적인 서비스와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계속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의 사업 영역은 앞으로도 추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올해 하반기 금융업 진출을 예상하고 있다. 쿠팡페이 자회사인 CFC준비법인은 지난 6월 말 쿠팡파이낸셜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 회사의 사업 목적에는 경영 컨설팅업, 기타 투자업, 부동산 임대업 등이 등록돼 있다. 네이버 파이낸셜이 네이버 입점 업체를 대상으로 대출을 제공하는 것처럼 쿠팡도 입점 업체를 대상으로 대출을 지원하는 방식이 현재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비스 출범 시 기존의 쿠팡 비즈니스가 그랬듯이 공격적인 선제 투자가 예상된다. 또 논란이 뒤따를 가능성도 높다.
쿠팡의 비즈니스 목표는 창립 이후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와우(WOW)’, 고객 감동이다. 김범석 창업자는 올 2분기 실적 관련 콘퍼런스 콜에서 “고객이 관행처럼 받아들이는 ‘트레이드 오프’를 깨는 노력을 더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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