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부동산 시장 침체…지방정부융자기구의 어음 미상환 비율 높아져

[글로벌 현장]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 국기게양식. 사진=연합뉴스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 국기게양식. 사진=연합뉴스
중국에서 지방 정부의 인프라 투자를 담당하는 특수목적법인인 지방 정부융자기구(LGFV)가 기업어음(CP)을 상환하지 못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LGFV의 채무는 중국 지방 정부의 대표적 ‘숨겨진 채무’로 꼽힌다.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른 지방 정부 재정 악화가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중국 신규 주택 판매 부진은 9월에도 이어졌다.
유동성 말라가는 LGFV
8월 말 기준 CP 미상환 상태에 빠진 LGFV는 총 43곳으로 집계됐다. 7월 말 27곳에서 1.5배 급증했다. 6개월 전인 2월 말에 비해선 3배 이상 급증했다. 시장 정보 업체 롄허투자자문은 지방 정부의 인프라 투자 확대 방침과 중앙 정부의 부채 관리 강화가 엇갈리면서 LGFV의 자금난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금을 조달하기 위한 LGFV의 회사채 발행도 늘어나는 추세다. 8월에 19곳의 LGFV가 8억8600만 위안어치의 채권을 발행했다. 7월의 12곳, 2억3200만 위안에 비해 금액 기준 3배 이상 증가했다.

LGFV는 지방 정부의 부동산 등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인프라 사업에 투자한다. 그런데 LGFV의 채무는 지방 정부 계정으로 잡히지 않는다. 게다가 LGFV들이 어떤 조건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빌리는지에 대한 공식 통계도 없다. 중국은행(6대 국유 은행 중 한 곳)이 2019년 말 기준 49조3000억 위안(약 9700조원)으로 추산한 것이 가장 최근 자료다. 2019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달한다. 또 노무라는 2020년 기준 45조 위안, 골드만삭스는 53조 위안으로 추정했다. 중국 신용 평가사인 청신국제도 45조 위안에서 51조 위안으로 분석했다.

한국도 국가 채무에 공기업 채무를 넣지 않는다. 공기업은 독립된 시장 경제 활동을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LGFV는 독립된 시장 경제 주체라기보다 지방 정부의 기구 성격이 크다. 하지만 LGFV의 부채를 지방 정부 부채에 넣으면 지방 정부의 부채 비율이 크게 악화하기 때문에 중국은 일종의 편법으로 허용하고 있다. 리스크가 있다는 것을 중국 당국도 인정하고 있다.

LGFV는 공익 인프라 사업을 하기 때문에 수익성이 낮다. 대출이나 투자를 받은 뒤 상환하기보다 재대출로 버티는 경우가 많다. 은행 등은 LGFV의 수익성보다 담보를 제공하는 지방 정부의 신용도를 보고 융자를 결정하는 게 일반적이다. 올 상반기 LGFV가 받은 융자 3346건 중 84%가 재대출이었다.
지방 정부 땅 사는 LGFV
중국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LGFV의 구조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지방 정부가 부동산 개발 업체에 토지 사용권을 매각해 재정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 지방 정부의 재정 수입에서 토지 사용권 매각은 41%를 차지했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지방 정부가 토지 사용권을 LGFV에 떠넘기기 시작한 것이다. 올 상반기 LGFV의 토지 사용권 매입액은 4000억 위안(약 79조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70% 정도 급증했다. 반면 민간 개발 업체의 매입액은 30% 줄었다.

LGFV가 지방 정부 자산을 담보로 빌린 돈을 본래 목적인 인프라 개발에 쓰지 않고 지방 정부에 헌납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LGFV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한 것은 물론이다.

최근 수도 베이징의 토지 사용권 경매에서도 18건 중 민간 업체에 낙찰된 것은 단 1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징시는 9월 22일 총면적 150만㎡, 시작가 합계 472억 위안(약 9조4000억원)인 18개 필지의 토지 사용권 경매를 마무리했다. 유찰은 없었지만 절반인 9건은 단독 입찰로 시작가에 낙찰됐다. 전체 낙찰 금액은 500억 위안으로 시작가보다 6% 높았다.

18건 중 17건은 베이징수도개발과 베이징건공부동산개발 등 국유 기업이 가져갔다. 민간 부동산 개발 업체는 고급 아파트와 사무용 빌딩을 주로 개발하는 룽후그룹 한 곳뿐이었다. 룽후그룹은 시작가인 24억3000만 위안에 순이구의 7만㎡ 부지를 낙찰받았다.
중앙 정부 적자도 커져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돌려막기’를 하는 지방 정부의 부채 문제도 악화하고 있다. 중국 금융발전연구소에 따르면 GDP 대비 지방 정부의 부채 비율은 6월 말 29.4%로 3개 분기 연속 역대 최고점을 경신했다. 1년 전보다 4.2%포인트 급등했다.

GDP 대비 부채 비율은 국가 부채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중국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한 2020년에 최고로 올라갔다가 작년에 다소 하락했다. 그러다가 올해 다시 올라가고 있다. 6월 말 기준 실물 경제 전체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이 273.1%로 전고점인 2020년 9월 말 271.3%를 넘어섰다.

지방 정부에 중앙 정부까지 더한 전체 정부 부채 비율은 49.5%다. 한국이 2021년 기준 46.9%다. 중국이 중진국이라는 점에서 부채 비율이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다.

토지 사용권 매각 수익이 줄어들면서 중국 정부의 적자도 커지고 있다. 재정부에 따르면 1~8월 지방 정부 토지 사용권 매각 수입은 3조4000억 위안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조3500억 위안(28.5%) 감소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감세로 2조3000억 위안의 세수도 줄었다. 이에 8월까지 중앙·지방 정부의 합산 누적 적자는 6조 위안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1조1000억 위안은 물론 역대 최대였던 2020년의 4조 위안을 크게 웃돌았다.

지방 정부의 토지 사용권 매각 수입이 줄어들면서 중국 31개 성·시가 올 상반기에 모두 재정 적자를 냈다. 상반기에 보통 적자를 보던 지역도 많지만 올해는 손실 폭이 더 커졌다.
신규 주택 판매는 여전히 부진
중국 부동산 시장은 지난해 하반기 중국 정부가 집값을 잡는다며 부동산 업체에 대한 강력한 대출 제한 정책을 실시하면서 급랭했다. 대출로 토지 사용권 매입과 건설비 등을 충당하던 업체들의 유동성이 말라 버린 것이다. 헝다 등 대형 업체의 잇단 디폴트(채무 불이행)로 주택 구매 심리가 악화하자 집값이 떨어지고 업체의 재무 상태가 더 악화했다.

시장 정보 업체 중국부동산정보(CRIC)에 따르면 중국 100대 부동산 개발 업체의 9월 신규 주택 판매액은 5709억 위안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25.4% 감소했다. 1~9월 누적 감소율은 45.4%에 달한다. 중국 주택 판매 감소세는 작년 8월(-20.8%)부터 지난 9월까지 14개월 연속 이어졌다.

월간 주택 판매 감소율은 지난 5월 59.4%로 떨어진 이후 회복되는 추세다. 하지만 이는 시장이 살아났다기보다 작년 하반기부터 감소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데 따른 기저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 부동산 가격 약세도 지속되고 있다. 시장 정보 업체 중국지수연구원(CIA)에 따르면 9월 100대 도시의 신규 주택 가격은 전월 대비 0.02% 하락했다. 7~8월 각각 0.01%에 이어 3개월 연속이다. 100곳 중 56곳의 집값이 8월보다 떨어졌다. 8월(7월 대비 69곳)에서 하락세가 나타난 지역 수가 줄었음에도 가격 낙폭은 더 커졌다. 수요가 비교적 탄탄한 대도시에 비해 중소도시 시장의 침체가 더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부양책 쏟아내는 중국
중국 당국은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중국 5대 국유 상업은행 중 하나인 건설은행은 부동산 업체들로부터 미분양 아파트를 인수하는 300억 위안(약 6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 건설은행은 인수한 아파트를 임대 주택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올 들어 5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주택 담보 대출의 기준금리인 5년 만기 대출 우대 금리(LPR)를 0.15%포인트씩 인하했다. 인민은행은 1일부터 생애 첫 주택 구매자에 대한 주택 담보 대출(모기지) 금리를 연 0.15%포인트 추가로 내렸다. 지난 5월 0.2%포인트 인하에 이은 조치다. 최우량 고객 기준 생애 첫 구매자의 주담대 금리는 연 3.95%로 내려갔다.

재정부와 세무총국은 기존 주택을 팔고 1년 내에 다른 주택을 사면 양도세를 감면해 주는 정책도 내놓았다. 신규 주택 매입 가격이 기존 주택 매각 금액 이상이면 양도세 전액을 환급하고 그 미만이면 차액에 따라 차등 감면한다. 현재 중국에선 1가구 1주택은 구매 후 5년 후부터 양도세를 면제하고 있다. 이번 조치로 다주택 보유자의 거래가 일부 늘어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부양 조치들에도 시장에선 여전히 침체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중국 1위 부동산 개발 업체 비구이위안은 내년 여름께 반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봤다. HSBC는 조정기가 2년은 더 갈 것이라고 관측했다.

베이징=강현우 한국경제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