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국회, 약자 동행·민생 안전·미래 도약 키워드…법인세 등 감세 법안 후순위로 밀려

홍영식의 정치판

국민의힘이 올해 정기 국회에서 중점적으로 처리하기로 한 10대 법안의 키워드는 △약자 동행 △민생 안전 △미래 도약 등이다. 더불어민주당이 7대 법안을 제시하면서 ‘민생’을 화두로 내세운 것에 대응하는 성격이 짙다. 시장 경제와 규제 완화를 내세운 국민의힘이 이를 뒷받침할 법안을 10대 법안에 포함하지 않아 그럴 의지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이 제시한 10대 법안 중 ‘약자 동행’에 속하는 것은 △장기공공임대주택법 개정안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 개정안 △농촌 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법 개정안 등이 있다. 장기공공임대주택법안은 단지별 주거 서비스센터 설치와 영구 임대 공동관리비·사용료 지원을 골자로 한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 개정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납품 계약에서 원자재 가격이 변하면 이를 납품 단가에 자동으로 반영되도록 하는 납품 대금 연동제 도입을 담고 있고 농촌 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법 개정안은 농촌 주거 여건 개선 및 일자리 창출 방안을 담았다.

민생·안전 분야는 아동수당법 개정안과 스토킹범죄처벌법 개정안, 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방지특별법 개정안, 노후신도시 재생지원 특별법 제정안, 재난관리자원의 관리에 관한 법 제정안 등이 있다. 아동수당법 개정안은 2023년부터 육아 전담 기간에 손실되는 부모의 소득을 보전해 주자는 것이다. 스토킹범죄처벌법 개정안은 스토킹범에 전자 장치를 부착하자는 게 골자다. 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방지특별법 개정안은 대면 편취형 보이스 피싱에 이용된 계좌도 지급 정지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보이스 피싱 예방을 강화하는 것을 담고 있다. 노후신도시 재생지원 특별법 제정안은 1~2기 신도시 용적률과 건폐율 완화 등을 통한 재건축을 촉진하자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운데)와 성일종 정책위원회 의장(왼쪽),  김석기 사무총장이 10월 4일 여의도 국회에서 정기국회 대책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운데)와 성일종 정책위원회 의장(왼쪽), 김석기 사무총장이 10월 4일 여의도 국회에서 정기국회 대책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도체 특별법·교육 교부금 대학에도 지원

미래 도약 분야 법안에는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조치법 개정안,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를 신설하는 고등 평생교육 지원 특별회계법·지방 교육재정 교부금법·국가재정법 개정안 등이다.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조치법 개정안은 반도체 특화단지 지원을 강화하고 각종 인허가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가 심의, 의결하는 사항에 전략 기술 보유자 지원에 관한 사항을 추가했고 특화 단지를 신속히 조성할 수 있도록 인허가 처리 계획을 제출한 날부터 15일 이내에 사업 시행자에게 통보하도록 했으며 수도와 전기 등 공기업 또는 공공기관에서 설치할 필요가 있는 기반 시설은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학생 정원 확대 내용도 담았다.

10대 법안 중 납품단가연동제, 아동수당법, 출산·보육·아동수당을 도입하거나 확대하는 법안, 스토킹처벌법·보이스피싱 근절법, 노후 신도시 재생지원 특별법 등에 대해선 민주당도 큰 틀에서 동의하는 만큼 이번 정기 국회에서 세부 조정을 거친 뒤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고등 평생교육 지원 특별회계법·지방 교육재정 교부금법에 대해선 민주당이 반대하고 있어 처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초중등 교육 예산에 쓰이는 지방 교육 재정 교부금을 대학에도 나눠 쓰자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교육 교부금 제도는 내국세 20.79%를 무조건 지방교육청에 떼어 주도록 하고 있다. 학생 수가 크게 늘어난 1971년 도입됐다. 하지만 학령 인구가 크게 줄어든 지금도 이 제도를 경직적으로 운용하다 보니 세수 증가에 따라 매년 교육 교부금이 급증하면서 교육 재정이 필요 이상 배정되고 예산 낭비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세수 호황으로 교육청의 교부금 규모가 5년 전 46조6000억원에서 올해 81조3000억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추정되고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쓰고 남은 적립금도 20조5641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추가경정예산으로 11조원을 더 지원받게 된 교육청들 대부분 기금으로 쌓아 두기로 한 상황이다. 이 돈을 재정난을 겪고 있는 대학도 쓸 수 있게 해 학생에게 등록금 부담을 덜어주고 미래 인재 양성을 지원해 대학의 경쟁력도 높이자는 게 국민의힘의 주장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반대하고 있다. 교육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의무교육·무상교육이라는 말은 무색하고 과밀 학급은 넘치며 고교학점제 등 미래형 교육 체제 구축은 더디기만 한 상황에서 교육교부금 개편 추진은 중단해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내국세 연동 폐지, 대학 지원 등 교육교부금 개편에 대해 수긍하는 야당 의원들도 적지 않지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 교육계의 표를 의식해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역으로 국민의힘은 쌀 생산이 예상보다 3% 이상 초과하거나 쌀값이 전년보다 5% 이상 떨어지면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민주당 추진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막대한 예산 소요와 농업 구조 조정을 막는다는 이유 등으로 강력 반대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불법 쟁의 행위가 있어도 노조와 노조간부, 조합원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 등을 제한하도록 하는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불법과 탈법 시위를 하는 강성 민주노총을 보호하기 위한 불법 파업 조장법”이라며 반대하고 있어 법안 심의 과정에서 충돌이 예상된다.
납품단가 연동제, 시장주의 원리에 맞지 않아
국민의힘 10대 중점 법안에 ‘성장’ 잘 안 보여[홍영식의 정치판]
국민의힘이 추진하는 10대 법안 중 납품단가 연동제는 시장주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원자재 값 급등 등으로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덜어준다는 게 입법 취지다. 주요 원료 가격이 3% 이상의 범위에서 변동할 경우 원청 기업은 변동분을 납품 대금에 반영하도록 하고 원청 기업이 조정된 금액을 지불하지 않을 때는 조정분의 3배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하지만 강제 자동 반영은 민법의 근간인 사적 계약 자유를 저해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가격 규제로 인해 자칫 하청을 맡기던 원청 기업이 직접 하거나 해외에서 아웃소싱한다면 협력 업체에 더 큰 손실로 돌아갈 수 있다. 이 때문에 국책 연구 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단가 연동제를 강제하면 시장 효율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협력 업체의 수익성을 보호해 주는 대신 (가격 전가로 인한) 소비자 후생을 줄이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반대 목소리를 냈다.

국민의힘이 민간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며 정기 국회 핵심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해 온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과 다주택자 종합부동산세 중과 폐지 등 세제 개편은 10대 법안에서 빠졌다. 민주당이 ‘초부자 감세’ 프레임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성일종 정책위원회 의장은 “100대 국정 과제에는 다 들어가 있다”며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민생 법안이다. 국민 모두에게 해당하고 꼭 해결해야 할 법안 10개를 우선적으로 선정했다”고 했다. 이 때문에 법인세율 인하 등 감세 법안들이 우선 과제에서 밀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의 기초연금 40만원으로 인상 추진을 ‘선심성’이라고 비판한 국민의힘도 같은 정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면 지금보다 한 해 2조5000억원 이상의 예산이 더 드는데 야당은 물론 국민의힘도 재원 대책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다.

홍영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한경비즈니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