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 저지선 뚫리면 환투기 세력 ‘집중 타깃’…원‧달러 환율도 표적
1990년대 후반 이후 ‘고성장·저물가’의 신경제 신화를 바탕으로 20년 이상 지속돼 왔던 저금리 시대가 종료되고 고금리 시대에 접어들었다. 올해 3월 미국 중앙은행(Fed)의 첫 금리 인상 이후 불과 6개월 만에 들이닥친 고금리 시대를 맞아 가장 우려되는 것은 빚의 복수 이상으로 국제 통화 제도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가장 큰 관심은 달러 중심의 브레튼우즈 체제가 부활할 것인가 여부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1944년 국제통화기금(IMF) 창립 이후 미국의 달러화를 기축 통화로 하는 금환본위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는 달러화만이 금과 일정한 교환 비율을 유지해 환율을 안정시키고 국제 무역을 증진시키려는 의도에서 탄생됐다.미국 주도의 브레튼우즈 체제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국제 금융 역사에서 브레튼우즈 체제는 미국의 이런 의도를 충분히 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부에서 브레튼우즈 체제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유럽의 부흥과 공산주의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미국이 지원했던 ‘마셜 플랜’의 또 다른 형태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닉슨의 금태환 정지’라는 시련이 있었지만 브레튼우즈 체제에 구조적으로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초다.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평가 절하를 통한 수출 진흥 정책을 용인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경상 수지 적자가 위험 수위를 넘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여러 방안을 동원했지만 ‘플라자 합의’라는 미봉책으로 일단 위기 상황을 넘길 수 있었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균열 조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1995년 4월 달러화 가치를 부양하기 위한 역(逆)플라자 합의와 아시아 외환 위기다. 역플라자 합의에 따라 달러 가치가 부양되는 과정에서 외환 위기로 아시아의 통화 가치가 환투기로 폭락하면서 ‘강한 달러-약한 아시아 통화’ 간의 구도가 재현됐다.
그 결과 2000년대 들어 미국의 경상 수지 적자가 재차 불거지면서 1980년대 초 상황이 재연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함에 따라 달러화가 더이상 기축 통화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지 않느냐는 시각까지 제기됐다. 1980년대 초의 상황과 달리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부상으로 달러화 위상까지 크게 흔들렸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달러 가치가 다시 회복되는 것은 인플레이션과 뒤늦은 Fed의 금리 인상 때문이다. 최근 달러 강세는 너무 단기간에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브레튼우즈 체제가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부활하면 달러 강세는 더 강해지고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의외로 잘 버티는 루블화이 문제는 최근 물가를 잡기 위해 벌어지고 있는 역환율 전쟁을 ‘오징어 게임’에 적용해 알아보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감독은 Fed와 미국 재무부, 주연은 달러화, 조연은 각국 통화, 시나리오 구성은 서바이벌 데스 게임으로 상대방이 최후 저지선(final draw)이 뚫리면 환투기 세력의 집중 타깃이 되면서 추락한다는 내용이다.
첫 무대에 오른 게임 참가자는 달러화와 엔화다. 결과는 관객이 긴장할 틈도 없이 너무 빨리 너무 싱겁게 끝나 버렸다. 엔‧달러 환율은 1차 저지선인 구로다 라인(125엔), 2차 저지선인 미스터 엔 라인(130엔)이 잇달아 뚫린 데 이어 최후 저지선으로 여겨졌던 플라자 라인(142엔)마저 무너졌다.
엔화가 추락한 것은 정치, 행정 규제, 국가 채무, 젠더, 글로벌 분야에서 5대 선진국 함정에 빠진 때문이다. 선진국 함정은 선진국 문턱에서 퇴보하는 중진국 함정처럼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던 국가가 다시 중진국으로 추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Fed의 급격한 금리 인상을 아랑곳하지 않는 고집하는 일본은행의 울트라 금융 완화 정책도 가세하고 있다.
달러화의 다음 상대 유로화도 최후 저지선인 ‘패러티 라인(1유로=1달러)’이 힘없이 뚫렸다. 유로화 가치는 2016년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당시 한 차례 붕괴할 위험에 몰린 적이 있지만 작년까지 유지됐다. 하지만 올해 들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피해가 집중되면서 유럽 경제가 침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던 치욕적인 사태가 발생한 이후 50주년이 되는 날 파운드화가 또다시 무너지고 있다. 앞으로 파운드화는 트러스 정부의 대규모 감세와 재정 지출로 영국발 금융 위기가 우려되고 있는 만큼 최후 저지선인 ‘1파운드=1달러’ 선이 무너지면서 달러화에 완전히 먹힐 가능성이 높다.
가장 마지막까지 버틸 것으로 여겨졌던 위안화도 ‘포치 라인’이라고 부르는 달러당 7위안이 무너졌다. 포치 라인이 뚫림에 따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시황제 야망도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분기 성장률이 0.4%로 추락한 것을 계기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진국 함정 우려와 함께 양대 장애가 될 확률이 높다.
신흥국 통화는 1990년대 중반보다 더 심한 대발산이 발생함에 따라 환투기 세력의 집중 공격이 시작되면서 스리랑카를 필두로 잇달아 ‘디폴트 라인’을 넘고 있다.
문제는 1990년대와 달리 IMF의 재원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일부 신흥국 통화는 완전히 먹혀 법정 통화가 달러화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캉드시 라인’을 넘은 원‧달러 환율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캉드시 라인은 1997년 여름 휴가철 이후 외국인 자금이 갑작스럽게 이탈하는 ‘서든 스톱’이 발생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400원으로 오르자 펀더멘털론으로 맞서던 당시 강경식 경제팀이 손을 들어 외환 위기를 초래했던 최후 저지선을 말한다.
아직까지 국제 환투기 세력의 표적이 될 만큼 외화 사정이 악화되지 않았지만 무역 적자 폭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의 갈등, 불법 자금 해외 거래 등으로 원‧달러 환율이 안정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전히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리는 새 정부 경제팀의 인식과 대응 자세도 문제다.
결론을 맺어보자. 역환율 전쟁에서 벌어지는 ‘오징어 게임’에서 최후 승자는 달러가 될까. 지금까지 가장 잘 버티는 통화가 루블화라는 점이 미국으로서는 부담이다. 물가를 잡기 위한 달러 강세는 근립 궁핍화 정책으로 조만간 피해를 당한 국가가 반격하는 부메랑 효과도 우려돼 달러화가 ‘킹(king)’의 지위를 오랫동안 유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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