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비 증강 열풍에 ‘K방산’ 주문 폭주 중인데…민영화 지금이 맞나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한화는 방산 ‘규모의 경제’ 이해관계 맞아
거래 시 특혜 논란 피할 수 없어
KAI,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업 특수성…시장 원리보다 정책에 좌우

[비즈니스 포커스]
한미 공군이 제20전투비행단과 미국 51전투비행단에서 각각 연합 작전 능력 향상을 위해 지난 8월 1일부터 5일까지 진행한 ‘쌍매 훈련’에서 한국 FA-50 1대(왼쪽)와 미국 A-10 2대가 연합 편대 비행을 하고 있다. 사진=공군 제공
한미 공군이 제20전투비행단과 미국 51전투비행단에서 각각 연합 작전 능력 향상을 위해 지난 8월 1일부터 5일까지 진행한 ‘쌍매 훈련’에서 한국 FA-50 1대(왼쪽)와 미국 A-10 2대가 연합 편대 비행을 하고 있다. 사진=공군 제공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품게 되면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수설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공공 기관 혁신 계획에 따라 고유 기능과 연관성이 낮은 자산 등 불요불급한 자산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어 최대 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의 KAI 매각설(민영화)이 다시 힘을 받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KAI와 관련해 한화 측과 접촉, 논의한 사실이 없다”고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KDB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을 찾아준 만큼 KAI 지분 매각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한다.

일각에선 국민의 세금으로 키운 공기업을 사기업에 헐값 매각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1년간 약 12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된 대우조선해양을 한화그룹이 2조원대(지분 49.3%)에 인수하면서 ‘헐값 매각’ 논란이 일었다.

정부의 KAI 민영화 추진 역시 같은 논란을 낳고 있다. 자주국방의 핵심이 될 공공의 재산이기 때문에 국고를 투입해 KAI를 키웠는데 매각되면 사기업이 과실을 독식한다는 비판이다. 군수에서 파생되는 정부 의존도가 높은 국가 전략 산업인 방산을 한화그룹에 몰아준다는 특혜 시비와 함께 독점 폐해에 대한 우려, 군사 기밀 유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미국·유럽, 대형화·통합화로 경쟁력 강화

KAI는 한국수출입은행의 애물단지였다. 한국수출입은행이 국제 은행 자본 규제 기준인 바젤Ⅲ 도입에 따라 자본 건전성을 위해 KAI 지분 매각을 시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KAI의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한국수출입은행은 매년 수천억원을 손상차손 처리해 왔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국방비 지출이 증가하고 있고 지정학적 분쟁의 수혜 기업으로 KAI가 부각되면서 실적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의 방산 수출 확대 전망에 따라 KAI의 주가가 상승하면서 매각이 적기가 아니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KAI는 KF-21 전투기로 세계에서 여덟째 초음속 전투기를 개발했다. 최근 폴란드에 4조원 규모의 국산 경공격기 FA-50의 수출 계약을 성사시키며 ‘K-방산’의 위상을 높였다. 군용기 개발·양산뿐만 아니라 완제기 수출, 항공기 유지·보수 운영(MRO)은 물론 차세대 중형위성, 국방 위성 개발 사업 등 신사업에도 진출하고 있다.

지난 7월 발사에 성공한 한국형 발사체(누리호) 체계 총조립을 담당하며 우주 사업으로도 영역을 확대했다. 우주 분야 매출 비율은 5% 미만 수준에 불과하지만 누리호 총조립 사업을 발판삼아 항공 우주 체계 종합 업체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이다.

사실 해외에선 방산 업체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인수·합병(M&A)을 통한 대형화·통합화가 국가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중복 투자 방지, 첨단 무기 체계 개발 위험·개발 비용 절감,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1990년대부터 방산 업체 간 M&A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미국 항공기 부품·자재 생산 기업인 유나이티드테크놀로지스(UTC)그룹과 미사일 레이더 등을 생산하는 방산 업체인 레이시온이 합병해 레이시온테크놀로지스라는 세계 2위 ‘글로벌 항공·방산 공룡’이 탄생한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 국방 전문 매체 디펜스뉴스에 따르면 ‘2022년 세계 100대 방산 업체 순위’에서 한화그룹은 매출 47억8700만 달러로 30위다. KAI(17억9000만 달러)는 59위, LIG넥스원(15억9000만 달러)은 62위다. 한화가 목표하는 미국 록히드마틴(644억5800만 달러)이 1위다.
순수 한국 기술로 설계, 제작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지난 6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우주로 날아오르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순수 한국 기술로 설계, 제작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지난 6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우주로 날아오르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정부에 좌지우지…‘공기업 딜레마’

KAI는 민간 방위 산업체지만 공기업적 성격이 강하다. 국책 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이 지분 26.41%를 갖고 있는 최대 주주다. 2대 주주 역시 국민연금공단(9.55%)이다.

정권 교체기마다 사장이 바뀌고 매출의 절반 이상이 정부 사업을 통해 나온다. 상장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와 유사한 구조다. 정부가 보유 지분을 매각하면 KT와 포스코처럼 공기업에서 출발해 민영화된 기업들과 비슷한 성격의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KAI가 공기업적 성격을 갖게 된 이유는 태생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항공업 재편을 위해 시행한 ‘빅딜’ 정책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 항공기 제조 업체는 대한항공·대우중공업·삼성항공·현대우주항공이 난립해 있었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정부가 부실한 항공 산업을 재편하기 위해 대기업 항공부문의 구조 조정을 단행했고 여기서 대한항공을 제외한 대우중공업·삼성항공·현대우주항공 3사가 통합해 1999년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만들었다.

KAI가 탄생한 시기 한국의 항공 방위 산업의 기반은 취약했다. 대규모 설비 투자가 장기간 요구되는 항공 방위 사업을 추진할 만한 민간 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정부 주도의 공기업 형태로 항공 방위 산업을 이끌어 가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KAI가 민간 기업이면서도 시장 원리보다 정부 정책에 사업 방향이 좌우되며 한국전력공사와 같은 상장 공기업의 딜레마를 겪게 된 배경이다.

독점적 지위에서 오는 장점도 있다. KAI는 전투기와 다목적 헬기 생산을 사실상 독점하면서 승승장구했다. 방산·우주 항공 산업은 고도의 기술력을 요한다. 이 때문에 연구·개발(R&D)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해 진입 장벽이 높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업 특수성에 따라 정부가 내수 시장 수요를 대부분 독점하고 있어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했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대한항공·현대중공업도 한때 눈독

KAI는 시장에서 잠재 매물로 거론돼 왔다. 지금까지 KAI를 탐내던 기업은 많았다. KAI는 2012년부터 꾸준히 시장에 매물로 나왔지만 모두 불발됐다.

2012년 한국정책금융공사·현대차·삼성테크윈·두산 등으로 구성된 KAI 주주협의회가 보유한 KAI 지분 41.75%에 대해 매각을 추진했다. 대한항공과 현대중공업이 예비 입찰에 참여했다. 하지만 본입찰에서 대한항공이 가격이 너무 비싸다며 불참했고 현대중공업이 단독 입찰하면서 유찰됐다.

당시 시장에선 KAI 지분을 10%씩 갖고 있던 삼성(삼성테크윈)과 현대차가 인수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삼성은 “검토조차 한 적이 없다”며 전면 부인했다. 현대차는 자동차에 집중하겠다며 갖고 있던 KAI 지분 전량을 2016년 처분하면서 연결 고리를 끊었다.

당시 한화그룹은 2015년 삼성의 방산·화학 계열 4개사(한화탈레스·한화테크윈·한화종합화학·한화토탈)를 약 2조원에 인수하는 빅딜을 진행했다. 또 2016년 두산DST(현 한화디펜스)까지 인수했다. 대규모 M&A를 두건이나 단행한 한화는 자금 여력 부족으로 KAI 인수를 잠정 보류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AI 매각설이 돌 때마다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힌 곳은 한화다. 한화그룹에 KAI는 ‘한국판 록히드마틴’이라는 오랜 꿈을 완성해 줄 마지막 퍼즐 조각이기 때문이다. 한화그룹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삼성·두산의 방산부문 인수에 이어 2022년 대우조선해양 인수에도 나서며 육·해·공 종합 방산 기업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의 심장에 해당하는 75톤 엔진과 7톤 엔진을 제작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의 심장에 해당하는 75톤 엔진과 7톤 엔진을 제작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한국판 록히드마틴’ 마지막 퍼즐 조각

한화는 최근 불거진 KAI 매각설에서 또다시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KAI는 1999년 설립 이후 항공우주산업개발촉진법·방위사업법 등에 따라 한국 항공기 시장에서 독점적 사업 지위를 유지해 왔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1월 신규 업체 참여 제한 등 자유 경쟁 시장 경제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방위 산업 전문화·계열화 제도가 폐지됐다. 방산 업체 간 본격적인 경쟁 체제에 돌입한 것이다. 하지만 항공 우주·방위 산업의 특성상 높은 진입 장벽을 감안할 때 한국 유일의 항공기 체계 종합 및 제작 업체로서 KAI의 독점적 지위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한화그룹이 KAI를 인수하게 되면 방산업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경쟁 관계를 해소하면서 글로벌 방산 1위 록히드마틴 못지않은 글로벌 방산 업체가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KAI는 항공기·헬기·드론 등 체계 종합 기업으로 최근 우주 위성 서비스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글로벌 우주 산업 규모는 2021년 3860억 달러로 전년 대비 4% 성장할 것으로 추산되며 글로벌 우주 산업에서 위성 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72%에 달한다.

한화그룹은 2030년까지 글로벌 방산 톱10 기업으로의 도약을 선언하고 사업 재편을 통해 방산 사업에 힘을 싣고 있다. 분산돼 있던 (주)한화의 방산 부문과 한화디펜스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통합해 지상에서부터 항공 우주에 이르는 종합 방산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구상이다.

우주 산업은 과거에는 국가 주도로 이뤄졌지만 민간 주도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한화그룹의 우주 항공 사업 역량이 주목받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이 그룹 내 우주 사업 전반을 지휘하는 스페이스 허브를 이끌며 민간 우주 시대 개척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AI와의 접전 끝에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 기술을 이전받을 민간 기업(체계 종합 기업)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한화그룹은 방산을 넘어 우주 항공 사업을 아우르는 ‘한국판 스페이스X’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