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발사 장소·거리 다양화해 핵미사일 요격 어려워…“핵에는 핵, 공포의 균형 갖춰야”
홍영식의 정치판북한의 도발이 올 들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최근엔 거의 2~3일에 한 번꼴로 미사일 도발을 했다. 2017년 이후 5년 만에 일본 상공을 통과하는 사거리 4500km의 중거리 탄도 미사일(IRBM)까지 쏘면서 일본을 경악케 했다.
북한의 도발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더욱 대담해졌다는 것이다. 과거 김일성·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집권 초반에는 한·미 훈련을 하러 항공모함을 비롯한 미군의 전략 자산이 한반도에 출동하면 전국에 있는 전용 지하 벙커에 숨었다. 미군의 무시무시한 무기들이 언제 자신을 향할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김정은이 미국의 항공모함 등 전략 자산이 동해에 들어와 있을 때도 미사일 폭주를 벌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특유의 벼랑 끝 전술이다. 위협 수위를 바짝 끌어올려 한반도에 극도의 긴장 국면이 조성되면 미국 조야와 한국 일각에서 대화와 협상 여론이 조성되기 마련이었고 이를 노린 것이다. 핵 보유국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온갖 기만 전술을 동원해 ‘도발→협상→보상→파기’ 패턴을 답습했다. 제네바 합의(1994년)와 9·19 공동성명(2005년), 2·13 합의(2007년), 2·29 합의(2012년) 등은 북한의 이런 속임수들로 점철된 결과물이다. 그러는 사이 뒤에서 몰래 북핵·미사일 능력을 더욱 고도화하면서 핵탄두 소형화의 마지막 관문인 7차 핵실험을 목전에 두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미사일에 전술 핵무기 얹으면 한반도 안보 악몽
이 실험에 성공하면 북한은 전략 핵무기와 함께 전술 핵무기도 갖게 된다. 북한은 올해 들어 고각 발사, 극초음속, 회피 기동 등 우리가 방어하기 어려운 미사일들을 선보였다. 발사 플랫폼도 탐지하기 어려운 저수지·열차 등 다양화하고 있다. 휴전선에는 전술핵 탄두를 얹을 수 있는 수천 문의 장사정포(다연장 로켓포)가 배치돼 있다. 이런 다종의 미사일과 포에 핵탄두를 얹어 섞어 쏜다면 한반도의 안보는 악몽과도 같게 된다.
북한은 이제 아무리 긴장 국면을 조성해도 한국·미국·일본 등이 어쩌지 못할 것이라도 것을 잘 알고 있다. 과거 6차례 핵실험, 인공위성을 가장한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시험 발사 때마다 항공모함·폭격기 등 미군 전략 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해 한·미 훈련이 이뤄졌지만 그뿐이었다. 긴장 고조는 북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북한에 면역 효과만 키워 줬다. 유엔의 수많은 대북 제재 결의안이 만들어졌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 뒷문 역할을 하면서 소기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런 학습 효과가 북한의 무모함을 키워 이제는 미국 항공모함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이를 겨냥한 듯 사거리를 맞춰 미사일을 쏴 댔다.
북한의 잇단 도발은 동북아에서 신냉전 축을 더 공고히 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노골적으로 북한 편을 들면서 북·중·러의 결속을 공고히 하고 있다. 2017년 초 북한의 미사일 폭주 때는 두 나라가 북한에 대한 경고 메시지와 함께 유엔의 대북 제재에도 동참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엔 달라졌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을 논의하기 위해 10월 5일(미국 뉴욕 현지 시간)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중국과 러시아가 재를 뿌리면서 규탄 결의안조차 채택하지 못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이런 행태는 북·중·러를 결속시켜 미국에 대항하는 구도를 만들려는 전략이다. 한반도에 위기가 가중되는 것이 미국의 관심을 이쪽으로 돌려 대만과 대치하고 있는 중국과 우크라이나전을 치르는 러시아에 유리한 구도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반면 이런 북·중·러 구도에 한국·미국·일본은 더욱 결속하고 있다. 북한의 도발이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를 더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 때 위안부 합의 파기로 극도로 악화된 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는 게 주목된다. 이미 한·미·일 정상은 지난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 회의 기간 중 회담을 열고 5년 만에 3각 협력을 되살린 바 있다. 9월 유엔 총회 기간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년 9개월 만에 양국 정상 회담을 하고 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 당국 간 소통을 계속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대응에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양국 정상은 10월 6일 약 25분간 전화 통화를 하고 북한의 IRBM 발사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한·미 해군과 일본 해상 자위대는 대잠수함전 훈련에 이어 미사일 방어 훈련도 했다. 2주에 걸쳐 두 차례 연속 한·미·일 연합 훈련을 한 것은 처음이다.
3국이 대북 억지력을 보여줬지만 이것만으로는 한반도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 북한 핵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구축하고 있는 한국형 3축 체계는 완성에 수년이 더 걸리는 데다 구축한다고 해도 북한 핵·미사일 대응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핵은 핵으로 막는다는 ‘공포의 핵균형’을 마냥 외면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은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핵 선제 공격을 법제화했고 대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며 핵전투 무력을 백방 강화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확장 억제가 반드시 필요하고 더 강화해야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야욕을 저지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도 어떤 형태로든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워싱턴 희생할 각오 돼 있나”…확장 억제 한계
확장 억제는 동맹국이 핵 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핵으로 보복 공격한다는 개념이다. 미군의 ‘한반도 핵우산’ 보장이 핵심이다. 하지만 미국의 핵우산 정책은 국제 안보 환경과 미국 내 정치 기류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북한이 미국을 사정권에 둔 ICBM을 개발한 상황에서 워싱턴과 뉴욕을 희생할 각오가 돼 있느냐의 문제다.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나”라고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의문을 던진 다음 자체 핵 개발로 나아갔다.
하지만 자체 핵무장은 국제 사회의 반대와 자체 기술력 등의 문제로 쉽지 않다. 현실적 대안은 NATO 식 핵공유를 꼽을 수 있다. 독일 등 유럽 5개 회원국들이 미국과 핵무기 공유 협정을 맺고 핵전쟁이 발발할 경우 자국에 배치돼 있는 미국의 전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런 방식으로 1992년 철수한 미군 전술핵을 한반도에 다시 반입하는 것에 대해 미국은 일본·대만 등으로 핵 도미노를 일으킬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미 정상은 지난 5월 회담에서 미국의 ‘핵우산’을 튼튼히 하는 ‘확장 억제’를 강화하는 선에서 합의했다.
단계적 재배치 방안도 있다. 유사시 미 전술핵을 배치할 한국 내 장소를 구축하고 한·미 군이 핵무기 관련 훈련을 실시해 북핵 위험 발생 시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자는 것이다. 여차하면 우리도 핵무장을 할 수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만으로도 중국과 러시아로 하여금 북한을 압박할 수 있게 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더욱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핵 위협은 통제 받지 않는 김정은에게 자극을 줘 한반도를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존 대응 방식과는 차원을 달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및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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