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긴 인플레이션에 더 강경해진 Fe…전쟁 장기화로 에너지 위기 처한 유럽

[글로벌 현장]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 (사진=연합뉴스)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 (사진=연합뉴스)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의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회장. 2005년부터 세계 최대 은행의 수장을 맡아 온 그는 요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위기론을 꺼내고 있다.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에 커다란 충격이 올 것이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수개월 전 ‘경제에 허리케인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던 다이먼 회장은 최근 “6~9개월 내 미국 및 글로벌 경제에 불황이 닥칠 것”이라며 “증시는 20~30%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퍼펙트 스톰 온다”…불황 준비하는 월가

1975년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를 창업해 세계 최대 헤지펀드로 키운 레이 달리오 창업자는 최근 “퍼펙트 스톰(완전한 폭풍)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달리오 창업자는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Fed)이 돈을 뿌리면서 거품이 생겨났다”며 “결국 Fed가 경제에 고통을 유발할 때까지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번 고통은 진짜로 클 것”이라고 예고했다.

노무라증권도 최신 보고서에서 “미국의 경기 침체가 곧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만간 침체가 시작되면 내년 말까지 1년여간 지속되고 침체 강도 역시 대부분의 예상보다 심각할 것이라고 봤다.

이번 경기 사이클의 실업률 정점은 종전 6.0%에서 6.4%로 높여 잡았다. 미 실업률은 9월 기준 3.5%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머지않아 실업률이 지금보다 두 배 정도 치솟을 수 있다는 게 노무라증권의 판단이다.

내년 경제성장률은 당초 전망했던 마이너스 1.2%보다 악화한 마이너스 1.6%로 예측했다. 노무라증권은 “Fed가 내년에 기준금리를 최고 연 5.5%까지 올릴 것”이라며 “경기가 크게 후퇴하면서 내년 9월엔 다시 금리를 낮춰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현재 연 3.0~3.25%다.

경기에 대해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해 온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고문은 “에너지와 식료품을 빼더라도 나머지 근원 물가를 잡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우리 앞엔 경기 둔화 또는 대규모 불황이 닥치는 두 가지 시나리오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그동안 “연착륙이 가능하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온 Fed 내부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올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참여하고 있는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연방은행 총재는 “향후 2~3년간 추세를 밑도는 성장률 및 경기 침체가 닥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수요 둔화와 공급망 개선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마찬가지다. 침체를 목전에 두고 있는 글로벌 경제에 고유가가 치명타를 가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새로 내놓았다.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아랍에미리트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 국가들이 11월부터 하루 200만 배럴 감산을 결정하면서 유가가 더 뛰게 됐고 글로벌 수요는 가라앉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월가에선 내년 뉴욕 증시 향방에 대해 비관론이 우세하다. 마이크 윌슨 모간스탠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가장 중요한 것은 Fed의 움직임”이라며 “경기가 곤두박질치고 금융 시장이 심각한 수준으로 흔들리지 않는 한 금리 정책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Fed가 정책 전환(피벗)에 나서지 않으면 증시가 반등하기 어렵고 피벗을 유도하려면 역으로 시장이 고꾸라져야 한다는 의미다. 윌슨 CIO는 “당분간 Fed 피벗을 기대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Fed 내부 인사인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연방은행 총재가 “경기 하강 때 긴축 정책을 중단할 수 있지만 그 기준은 매우 높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준금리 인상을 멈추고 다시 인하하기 위해선 경제가 상당한 충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카시카리 총재는 “피벗은 꽤 먼 얘기”라고 못 박았다.

Fed의 정책 전환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물가 때문이다. 일단 정점을 찍으면 빠르게 하강할 것으로 여겼던 인플레이션은 끈질긴 모습을 보이고 있다.

9월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작년 동기 대비 8.2%, 전달 대비로는 0.4% 뛰었다. 6월 9.1%, 7월 8.5%, 8월 8.3%에 이어 조금 떨어졌지만 Fed 목표치(2%)보다 여전히 4배 넘게 높다. 에너지와 식음료를 뺀 근원 CPI는 되레 작년 동기 대비 6.6%, 전달 대비 0.6% 상승했다. 1982년 8월 이후 40년 만의 최고치로 기록됐다.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75bp(1bp=0.01%포인트) 올리고 12월 50bp, 내년 2월 마지막으로 25bp 인상할 것이란 월가의 컨센서스는 크게 흔들렸다. 11월은 물론 12월에도 75bp 인상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대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면 이번 인상 사이클의 최종 금리는 연 5.0%가 된다. 올해 3월 제로 금리를 끝낸 Fed가 약 1년 만에 금리를 5%포인트나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튜더인베스트먼트를 창업한 억만장자 투자자 폴 튜더 존스 창업자는 “인플레이션은 치약과 같다”며 “한 번 짜내면 다시 담아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뉴욕 증시는 추가로 10% 정도 떨어질 것”이라며 “기준금리가 다시 하락할 것이란 신호가 나올 때까지 주가가 바닥을 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RBC캐피털의 로리 칼바시나 전략가는 올해 말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전망치를 3800, 내년 말 전망치를 4100으로 각각 예상했다. S&P지수가 올해 초 4800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큰 폭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칼바시나 전략가는 “기업들이 수요 둔화와 비용 압박, 강달러에 따른 실적 타격을 동시에 받고 있다”며 내년 주당순이익(EPS) 추정치를 종전 평균 212달러에서 208달러로 하향 조정했다.

에너지난 겪는 유럽은 정책 조율도 어려워

유럽에선 미국보다 위기감이 훨씬 크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 올겨울을 버티기도 빠듯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 정부는 “올해 1.4%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 경제성장률이 내년엔 마이너스 0.4%로 전환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내년엔 경기 후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역시 꺾이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평균 7.9%를 기록할 물가 상승률은 내년에도 8%에 머무를 것이란 예상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진퇴양난 처지다. 9월 물가 상승률이 10%를 돌파한 상황에서 경기 추락 우려 때문에 기준금리조차 마음대로 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ECB가 이번 금리 인상 사이클의 최종 금리를 연 3.0%까지 끌어올릴 것이란 게 시장의 관측이지만 ECB 내부에서 연 2.25%까지만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같은 배경에서다.

네덜란드중앙은행 총재이자 ECB 통화 정책 위원인 클라스 노트는 “에너지와 식료품을 뺀 근원 물가가 정말 걱정스러운 수준으로 뛰고 있다”며 “물가를 잡기 위해선 내년까지 지속적·공격적으로 금리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CB는 지난 7월 기준금리를 한 번에 50bp 올리면서 제로 금리 시대의 막을 내린 데 이어 9월 75bp 인상했다.

하지만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실업률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할 정도로 고용 상황은 좋은 편”이라며 경기 지표를 봐가며 인상 폭을 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CB를 구성하고 있는 19개국의 상황과 각자의 시각에 따라 견해 차이가 작지 않은 것이다. 한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은 유럽 국가들로선 정책 조율과 불황 대처 능력도 의심 받고 있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