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28평) 넓이 한옥에 조성…지역 주민·후배 작가와 어우러진 남다른 공간
종로 창신동의 한 골목, 여기저기 둘러봐도 주택뿐인 이곳에 정말로 백남준기념관이 있나 싶다. 차 한 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길목 언저리에 차를 세우고 내리니 ‘백남준기념관’이라고 쓰인 네온사인이 눈에 들어온다. 문으로 들어서니 한눈에 다 들어올 정도로 아담한 공간이다. 이곳은 백남준이 살았던 9917㎡(3000평)가 넘는 집터 중 고작 93㎡(28평) 넓이의 한옥을 매입해 조성했다. 이전에는 식당이었다. ‘기와돌솥밥’이라는 이름을 달고 파전·청국장·보쌈 등을 팔던 한옥 식당은 2016년 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1년여에 리모델링을 거쳐 백남준기념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스토리의 주인공은 창신동 지역 주민들이다. 그의 소원이 이뤄졌다“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것이 소원이야. 창신동에.” 백남준은 생전 창신동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자주 내비쳤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10여 년이 지난 2017년, 소원이 이뤄졌다. 그와는 일면식도 없는 창신동 지역 주민들 덕분에….창신동 주민들은 아이를 낳아 기르고 돌보듯이 백남준기념관 탄생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 2015년 5월, 창신1동 주민협의체 대표가 백남준 집터에 있는 한옥 식당이 부동산에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곤 바로 창신숭인 도시재생지원센터와 관련 행정 기관에 이곳을 백남준 관련 전시 및 커뮤니티 공간으로 조성하자고 제안한다. 이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기념관 조성 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된 이후에도 주민들의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창신1동 주민협의체에 속한 두 명이 공사 현장의 주민감독관으로 활동했고 9명의 주민이 기념관 도슨트 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교육을 수료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지금도 주민들은 기념관을 보살피고 있다. 기념관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백남준기념관 카페’는 지역 주민 자치 단체가 중심이 돼 관리하고 있다. 수제청·대추차·커피 등을 판매하는 이곳을 운영하기 위해 주민들은 전문 바리스타 교육을 이수했고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창신동과 백남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학예사 역할까지 도맡고 있다. 백남준 작품 없는 백남준기념관백남준기념관은 그가 1937년부터 1950년까지 유년 시절을 보냈던 터에서 백남준의 말과 글·사유·취향 등을 관찰하며 그의 삶을 살펴보고 그 세계를 이해하는 공간이다. 이곳에 백남준의 작품이 한 점도 없지만 아날로그 TV 다이얼을 돌리며 그의 활동과 작품·전시·어록 등을 열람할 수 있는 ‘백남준 버추얼 뮤지엄’을 비롯해 그의 어린 시절 추억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수-월’, 백남준의 대표작을 오마주한 ‘웨이브’
백남준기념관 카페 테라스에 있는 <피아노 테이블>을 통해서는 그의 생애 한 자락을 엿볼 수 있다. 비디오 아티스트로 이름을 떨쳤기에 평생을 미술에만 몰두한 줄 알았는데 음악에 대한 열정이 그보다 앞서 있었다. 백남준은 독일로 유학을 가 음악학 석사 과정을 거쳤고 미술학을 공부하면서도 음악학, 화성학, 작곡을 공부했다. 특히 음악의 고정 관념을 깬 작곡가로 유명한 존 케이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1959년 11월 독일 뮌헨의 갤러리22에서 선보인 ‘존 케이지를 위한 오마주’에서 피아노를 때려 부순 퍼포먼스로 유명하다. 이 테이블은 2016년 그의 탄생일을 기념하며 진행된 발대식에서 피아노를 부수는 축하 퍼포먼스 후 남은 잔해를 가져와 만들었다.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설치물도 있다. <백남준의 책상>은 백남준의 글 <태내기 자서전>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이경희 여사의 회고록 일부를 연출한 설치물이다. 백남준이 자신의 필름 <전자 달#2>에 사용한 클로드 드뷔시의 <달빛>이 흘러나오는 책상에 앉아 공책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프로젝터가 공책을 비춘다. 조그만 책상 앞에 앉아 종이를 수놓는 색색의 빛깔과 주옥같은 그의 문장들을 마주하며 느껴지는 감동이 그의 대표작 <다다익선>이나 <서울랩소디>를 감상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그의 문장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 어딘가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듯 깊은 여운을 준다.
이렇게 한물 간 신조어를 언급한 이유는 백남준기념관이 누군가에게는 홍대병 환자들의 혁오밴드와도 같은 의미라는 점을 설명하고 싶어서다. 사실 백남준아트센터,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백남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많다. 그럼에도 백남준의 작품 하나 없는 이곳이 왜 특별한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천재 아티스트 백남준의 명성과 비례하지 않는 인지도를 가진 곳을 나만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 때문이었다. 물론 백남준이라는 작가만을 두고 봤을 때는 세계를 넘어 세기(世紀)적이라고 칭할 정도로 유명해 이 비유가 적절하지 않은가 싶지만 이렇게나 유명한 작가의 생애를 소개하는 공간이 생각보다 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은 홍대병 발병 요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으리으리한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방식의 문화생활이다. 하지만 누구도 쉬이 예상하지 못한 장소로 굽이굽이 찾아가 드뷔시의 <달빛>을 OST 삼아 즐길 수 있는 백남준기념관은 ‘독보적인 문화 소비 아이덴티티를 지닌 나’에게 취하기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강은영 한경무크팀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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