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여관으로 현대적 감성을 만들다
경복궁역 4번 출입구로 나와 궁궐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통의동에 닿게 된다. 한복 체험을 하는 외국인들, 체험 학습을 나온 중고등학생들 등이 눈에 띈다. 이들을 지나면 낮은 건물들 사이로 ‘보안여관’이라고 쓰여 있는 낡은 간판 하나를 볼 수 있다. 간판은 레트로 감성을 좇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노린 마케팅의 일환일까 의심하게 하지만 이곳은 1936년부터 2004년까지 실제로 운영된 여관이다. 지킬 보(保), 편안한 안(安), ‘손님의 안전을 지킨다’는 이 공간을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문학인들의 아지트’였다는 것이다. 문학의 시작점“1936년 가을, 함형수와 나는 둘이 같이 통의동 보안여관이라는 데서 기거하면서 김동리·김달진·오장환 등과 함께 ‘시인부락’이라는 동인지를 꾸며내게 되었다.”
서정주 시인은 시 전문지 ‘시인부락’이 통의동 3번지, 보안여관에서 창간됐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1936년 11월, 12명의 젊은 시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시인부락’은 1년 만에 통권 5호로 종간지됐만 인간주의적 순수문학을 다루며 생명을 탐구했다는 가치를 인정받아 문학사적으로 귀중한 사료로 남게 됐다.
한국의 근대식 여관은 1910년 이후 일제의 식민지 정책으로 도시와 함께 번성하게 됐다. 당시 여관의 역할은 잠을 자야 한다는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공간이었을 터. 하지만 보안여관은 쉼의 공간, 방이라는 명제를 넘어 시인·작가 등이 장기 투숙하며 예술혼을 불태운 곳이다. 보안여관은 서정주·김동리·김달진·오장환뿐만 아니라 이상·이중섭·구본웅 같은 문인·화가들도 장기 투숙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고 알려졌다.
특히 그 시대에 지방에서 올라와 주거지가 일정하지 않았던 문학 청년들에게 여관은 하숙을 대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공간이었다. 이에 따라 당시 신춘문예에 투고한 원고에는 지망생들의 주소지가 보안여관을 비롯한 여관으로 기재된 경우가 많았다. 보안여관은 70년 동안 청와대와 경복궁 주변의 유일한 여관이었기 때문에 통행 금지가 있던 권위주의 시대에는 청와대와 옛 공보처 공무원 등의 숙박 업소로 운영됐다.
과거의 공간과 현재의 예술
보안여관은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됐다. 보안여관은 여관으로 운영됐던 구관 그리고 새로 지어진 신관으로 건물이 나뉘어 있다. 구관은 현재 보안1942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는데, 1942는 구조물의 상량판에 일본어로 새겨진 ‘1942년에 이 여관이 지어졌다’는 문구에서 따왔다고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서정주의 자서전에 1936년이라고 쓰인 것으로 보아 1930년대부터 이 공간이 운영됐고 1942년에 중축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문학가들이 모여 시대와 예술을 고민하며 젊은 나날을 켜켜이 쌓아 나갔던 이 자리는 갤러리가 됐다. 과거의 공간과 미래의 예술이 만난 것처럼 보인다. 떠오르는 신진 작가들의 전시가 개최되면 마치 오래전 이곳에 머무르던 선배 예술가들이 미래의 예술가들을 응원하는 것만 같다.
이 건물의 특이한 점은 보안여관의 골조를 그대로 살렸다는 점이다. 오래된 건물들이 도시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됐을 때 기존 건물의 형체를 찾기 힘든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곳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나무 기둥들이 갤러리의 터줏대감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식 천장 덴조를 철거한 뒤 나온 낡은 서까래와 얽히고설킨 전선들, 녹이 슨 옛날식 화장실 타일 그리고 낮은 천장과 좁은 복도, 신문지로 바른 벽에 남아 있는 못 자국 등. 이 공간에는 시대와 세월이 그대로 머무르고 있었다. 갤러리 자체가 미술 작품이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옛날과 현재의 연결고리
구관 2층으로 올라가면 신관과 연결되는 다리를 만날 수 있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과거에서 현대로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신관 1층은 커피 겸 바인 ‘33마켓’이 자리하고 있고 2층에는 서점 ‘보안책방’, 3~4층에는 보안여관의 명맥을 잇고 있는 숙박 시설인 ‘보안스테이’가 운영 중이다. 특히 보안스테이는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작품, 가구로 인테리어 돼 있어 공간에 예술성을 부여했다. 또한 신관 지하 1, 2층은 ‘보안클럽’이라는 프로젝트 공간으로 운영되며 보안1942의 작품들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신관의 특별한 점은 어디에 앉아 공간을 어떻게 향유하건 간에 건너편 경복궁 담장과 은행나무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여름에는 초록색으로, 가을에는 노란색으로 담장을 수놓는 은행나무는 공간 자체가 주는 예술성에 조미를 더하는 듯하다.
문학 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문화란 삶을 지속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안여관은 박제된 유물로 간직된 것이 아닌 살아 숨 쉬는 문화의 일부로 활용되며 그 자체만으로 고유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이으며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부여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불태운 오래전 예술가들이 부여한 공간의 가치는 다 낡아 쓰러질 것 같지만 여전히 굳건한 기둥처럼 보안여관 여기저기에 새겨져 있는 듯하다.
이민희 기자 min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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