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후의 감자가 2040년 10월 8일 영면에 들었다.사진 제공=다 먹었습니다
지상 최후의 감자가 2040년 10월 8일 영면에 들었다.사진 제공=다 먹었습니다
지난 9일, 휴대폰으로 채소 감자의 부고 문자가 도착했다. 우리의 곁을 오래 지켜주었던 채소 감자가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고(멸종) 말았으니 모여 조의를 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지난 3주간의 활동으로 이미 감자의 마지막을 예상했음에도, 막상 부고 문자를 받으니 마음이 무거웠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경건한 마음으로 검은 옷을 차려입고, 감자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장례식장에 들어선 감자 클럽 회원들이 있었다. 감자의 빈소에 들어서자, 지난 3주간의 시간이 눈 앞으로 스쳐지나갔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1주 차. 지상에 남은 마지막 감자를 맞이한 순간이었다.

2040년. 멸종된 줄 알았던 감자의 마지막 개체를 찾았다는 발표와 함께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우리는 각자 감자와 각별한 인연을 가진 감자 클럽 회원이 되었다. 우리는 둥그렇게 모여앉아 개인적으로 겪었던 기후 위기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지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감자를 감상했다. 알고 있던 감자와는 사뭇 다른 모양이었다. 주먹보다도 크고 울퉁불퉁한 것이 감자보다는 오히려 덜 익은 호박과 같은 느낌이 강했다.

곧이어 감자 클럽 회원 중 몇 명이 우리의 상황을 담은 시나리오를 낭독했다. 식량위기로 직장을 잃은 병아리 감별사, 어른들이 우리의 미래를 빼앗았다고 생각하는 학생까지. 시나리오는 감자 클럽 회원에 한 해, 지상의 마지막 감자를 먹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며 마무리됐다. 지상의 마지막 남은 감자를 먹는 것은 혜택일까 불행일까.

고민과 함께 감자 요리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 팀별로 감자의 마지막 요리를 고민하고 있었다. 배정받은 팀에서는 만장일치로 감자전을 선택했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 ‘보통의 감자와 어떤 다른 점이 있었는지 살펴달라’는 지시는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감자를 갈아서 짜내자 받쳐놓은 그릇에 물이 흥건하게 차올랐다.

‘이 정도면 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닌가?’

손마디가 하얘질 정도로 짰지만 아직도 감자 반죽은 아주 촉촉하게 수분감을 머금고 있었다. 제한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꽉꽉 눌러 프라이팬에 올렸더니, 올리자마자 부스러졌다. 뒤집으려니 반으로 갈라졌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감자전은 이미 감자전의 형태와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다른 팀도 상황은 비슷했다.
기자가 속한 팀이 만든 감자전. 쉽게 부스러지고 잘 뭉쳐지지 않는다.사진 제공=다 먹었습니다
기자가 속한 팀이 만든 감자전. 쉽게 부스러지고 잘 뭉쳐지지 않는다.사진 제공=다 먹었습니다
공통적인 감상은 수분감이 너무 많고, 잘 뭉쳐지지가 않는다. 잘 삶기지도 구워지지도 않는다는 것. 직접 먹어보니 만져본 감촉과 비슷한 맛이 났다. 달고 퍼석거리는 것이 감자보다는 무에 가까운 식감과 맛이 났다.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감자는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감자의 모습, 맛과는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후 위기에 적응하는 식물들

1주 차 프로그램 마지막에 밝혀진 그 감자의 정체는 바로 ‘히카마 감자’였다. ‘멕시코 감자’라는 별명을 가진 감자는 배처럼 아삭하고 단맛이 나 생으로도 먹을 수 있는 채소다. 국내에서는 함평군에서 히카마 감자 수확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기후 역시 아열대 기후로 변화한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자주 들리고 있는 만큼, 식생도 적응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각 국가에서 토종 작물을 보존하기 위한 종자 확보 전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하니, 과연 기후 변화로 인한 식량 위기가 먼 일이 아님이 실감된다.

간식으로 나눠준 밀웜쿠키에서는 고소한 귀리의 맛밖에 나지 않았지만, 미래의 맛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씁쓸한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집에 귀가하면서는 갑자기 감자가 먹고 싶어 감자튀김을 샀다. 감자 수급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모양인지, 여느 때처럼 1200원을 주고 감자튀김을 먹을 수 있었다. 감자튀김을 꾸준히 먹을 수 있으려면 어떤 일들을 해야 할까, 기자로서는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3주간 진행된 감자 장례식 프로그램은 마지막 감자 개체의 멸종으로 인해 맞이한 2040년의 가상세계를 상정, 참여자들이 직접 식량위기의 현장을 참여하고 겪어보는 참여형 프로젝트다. 피부로 와닿는 기후위기와 식량안보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을 일반 대중들이 쉽게 참여하며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됐다. 1주 차는 최후의 감자를 사용한 감자 요리, 2주 차는 기후위기 속 감자의 삶을 추적하는 시나리오 작성, 3주 차는 감자 없는 세상을 추모하는 감자 장례식으로 진행됐다.
기자가 쓴 감자 추모사.사진=조수빈 기자
기자가 쓴 감자 추모사.사진=조수빈 기자
감자 장례식은 식량위기의 증거

이번 감자 장례식의 주최인 예술단체 움직이는 세상의 윤신혜 씨는 “환경문제에 대한 대중의 감정이 ‘무기력함’, ‘죄책감’ 등으로만 귀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기획의도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부터는 히카마 감자를 비롯한 여러 아열대 농작물들이 한국에서도 재배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올해 초쯤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감자 메뉴가 판매 중지 되는 사례가 발생했고 전쟁 등으로 인해 이같은 식량위기는 더 크게 다가오고 있다는 상황도 전달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감자장례식을 주최한 ‘다 먹었습니다’ 프로젝트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진행한 ‘사회를 마주하는 N개의 문화예술교육’ 사업에서 시작됐다. 식사와 관련해 실천의 문제들, 식사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관계의 연결성에 대해 논의하는 프로젝트다. 프로젝트 명인 ‘다 먹었습니다’는 여러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윤 씨는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는 의미도 되지만, 비건 지향으로 바뀌는 과정, 즉 이전의 식이습관을 정리하고 새로운 지향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다 먹었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감자 장례식은 지구 상에 남은 마지막 감자를 직접 염하고, 상자에 넣은 후 추모사를 읊고, 감자 클럽 회원들이 모은 감자의 생전 사진을 감상하며 마무리됐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지구 상에 존재했던 개체의 완전한 마지막을 추모하는 이러한 장례식이 감자의 것으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기원을 보내며. 또 다른 채소의 장례식을 막기 위해 어떤 것들을 해야 할지 고민을 더해본다.

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