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부채 만기 돌아오는 시기에 금리 인상…신흥국 원리금 상환 부담 가중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신흥국이 늘어나는 추세다. 사진은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 (사진=연합뉴스)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신흥국이 늘어나는 추세다. 사진은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 (사진=연합뉴스)
1980년대 후반 선진국 주식 시장(블랙 먼데이), 1990년대 후반 신흥국 통화 시장(아시아 외환 위기), 2000년대 후반 선진국 주택 시장(서브프라임 모기지와 리먼 브라더스 사태)에서 금융 위기가 발생한 점을 감안하면 2010년대 후반부터 차기 금융 위기 후보지로 신흥국의 상품 시장이 지목돼 왔다.

2020년대 들어 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에 이어 이란·터키 등 중동 국가가 잇달아 외자 이탈에 시달리면서 재현되는 금융 위기 조짐이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2022년 아르헨티나·스리랑카·파키스탄·라오스·방글라데시 등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더 악화하는 분위기다. 모두 상품 가격에 민감한 신흥국들이다.원리금 상환 부담 커지는 신흥국금융 위기 이후 급격히 늘어난 달러 부채 만기가 돌아오는 시기에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과 맞물리면서 신흥국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금리 차와 환차익을 겨냥해 이동되는 캐리 자금도 네거티브 트레이드 여건이 형성돼 달러계 자금을 중심으로 외자 이탈이 가세하는 것도 신흥국을 더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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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의 미숙한 정책 대응도 문제다. 외자 이탈을 수반한 달러 부채 상환에 가장 적절한 대책은 외화 보유 확충과 외자 조달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하지만 금융 위기 조짐에 시달리는 대부분 신흥국은 금리 인상으로 대처해 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르헨티나는 기준금리를 60%까지 올렸다. 한국도 2021년 8월부터 지속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려 오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외면한 금리 인상은 실물 경기 침체와 추가 외자 이탈 간 악순환 고리를 형성시킬 가능성이 높다. 1990년대 후반에 태국과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가 겪었던 외환 위기의 직접적인 배경이다. 벌써 일부 신흥국은 이런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2023년에 예의 주시해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신흥국은 2025년까지 매년 4000억 달러 이상의 달러 부채 만기가 돌아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3월 회의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Fed는 2023년에는 4% 이상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신흥국의 달러 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이 급증하면서 외화 사정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대발산(GD : Great Divergence)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GD가 일어났던 1994년 이후 상황을 보면 독일의 분데스방크(유럽중앙은행 창립 이전에 유럽 통화 정책의 중심 역할)는 금리를 5%에서 4.5%로 내렸다. 같은 시점에 Fed는 3.75%에서 4.25%로 인상한 이후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6%까지 올렸다.

미국 경제도 견실했다. 빌 클린턴 정부 출범 이후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보기술(IT)이 주력 산업으로 부상하면서 ‘고성장하에 저물가’라는 신경제 신화를 낳았다. 그 결과 ‘외자 유입→자산 가격 상승→부(富)의 효과→추가 성장’ 간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달러 강세로 대변되는 루빈 독트린 시대가 전개됐다.

신흥국은 대규모 자금 이탈에 시달렸다. 1994년 중남미 외채 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1998년 러시아 국가 채무 불이행 사태까지 이어지는 신흥국 위기가 발생(‘그린스펀 쇼크’라고 부른다)했다. 미국과 다른 국가 간 금리 차가 벌어지고 감세, 리쇼어링 등으로 또 다른 신경제 신화를 쌓아 가는 미국 경제의 지금 상황과 비슷하다.

IMF의 모리스 골드스타인 지표와 글로벌 투자은행(IB)이 활용하는 외환 상환 계수로 신흥국 금융 위기 가능성을 점검해 보면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튀르키예·파키스탄·이란·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높게 나온다. 브라질·인도네시아·멕시코·필리핀·스리랑카·방글라데시 등은 그다음 위험국이다.

금융 위기 발생 고위험국으로 분류되는 중남미 국가는 외채 위기로 학습 효과가 있는 데다 미국과의 관계도 비교적 괜찮다. 하지만 이란가 튀르키예처럼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거나 협조하지 않는 국가와 중국에 편향적이거나 일대일로(신 실크로드 전략 구상) 계획에 과도하게 참여하는 파키스탄·스리랑카 등과 같은 이슬람 국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더라도 받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IMF의 최대 의결권을 미국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내외 금융 시장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차기 금융 위기가 어느 국가에서 발생할 것인가’는 이런 각도에서 따져보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2023년에 신흥국 경제는 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을 얼마나 잘 극복하느냐에 따라 개별 국가별로 ‘디폴트’와 ‘재건’의 운명이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한국, 외환 보유액 더 쌓아야 하는 시각도한국도 원‧달러 환율의 급등세에 편승해 제2의 외환 위기설이 고개를 들면서 학계를 중심으로 외환 보유액을 더 쌓아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일부에서는 국제결제은행(BIS)의 권유대로 9000억 달러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수준의 두 배 정도를 더 쌓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정책 당국에서는 외화 보유에 특별히 문제가 없다고 한다.

특정국이 외화를 무한정 쌓을 필요는 없다. 기회비용 측면에서 외화를 더 유용하게 쓸 곳이 많아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정 외환 보유액도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것은 통화 스와프 등을 통해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제2선 자금 확보와 외화 보유 구성에서 자금 당장 쓸 수 있는 가용 외화를 많이 가져가면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정 외환 보유액을 추정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즉 과거 경험으로부터 잠재적인 외화 지급 수요를 예상 지표로 삼아 구하는 ‘지표 접근법’, 외환 보유액의 수요 함수를 도출해 추정하는 ‘최적화 접근법’, 외환 보유액 수요 함수로부터 행태 방정식을 추정해 계량적으로 산출하는 ‘행태 방정식 접근법’으로 구분된다.

세 가지 방법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지표 접근법이다. 1990년대 이전처럼 경상 거래가 많을 때는 3개월 수입분을 가져도 된다는 IMF의 협의 개념과 그 후 자본 거래가 많아지면서 기도티‧그린스펀의 광의 개념 그리고 투기적인 거래가 많아지면서 캡티윤의 최광위 개념까지 확장돼 왔다. 세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외환 보유액은 직접 가진 제1선 외화만 따지더라도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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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염려되는 것은 올해 하반기 이후 원‧달러 환율이 올라가는 것을 한국의 내부 요인보다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리는 정책 당국의 자세는 지극히 위험하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펀더멘털론으로 맞서다가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400원대에 들어서자 손을 들어 외환 위기를 초래했던 강경식 경제팀의 실수를 다시 저지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외환 위기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 당국의 자세는 아주 중요하다. 외환 위기 발생 가능성을 판단하는 각종 지표가 민간보다 국가와 연관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도 외환 위기에 따른 낙인 효과가 얼마나 큰지를 지난 25년 동안 뼈저리게 경험한 만큼 프로 보노 퍼블리코(공익을 위하여) 정신을 발휘해 국가에 적극 협조해 나가야 할 때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