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 몰 개념 넘어 편집숍 콘셉트로 진화…대규모 투자로 ‘패션 포털’ 만든다

[비즈니스 포커스]
 한섬의 패션 전용 물류센터 ‘스마트 허브 e비즈’.  사진=한섬 제공
한섬의 패션 전용 물류센터 ‘스마트 허브 e비즈’. 사진=한섬 제공
현대백화점그룹의 패션 계열사 한섬은 올해 패션 전용 물류센터 ‘스마트 허브 e비즈’ 가동에 들어갔다. 패션업계 최초로 온라인 의류만 전담해 처리하는 물류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12개 층 규모로 조성된 ‘스마트 허브 e비즈’에서는 92만 벌에 달하는 의류 제품을 보관할 수 있다. 이곳은 현재 ‘더한섬닷컴’·‘H패션몰’·‘EQL’ 등 한섬이 운영하는 모든 온라인 몰에서 판매 중인 브랜드의 주문부터 배송까지 이르는 전 과정을 담당하고 있다. 한섬 관계자는 “빠른 배송을 앞세워 온라인 부문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매출을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 물류센터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이하 코오롱Fnc)이 운영하는 ‘코오롱몰’은 자사 브랜드 제품을 중고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 ‘오엘오 릴레이 마켓’을 론칭해 운영 중이다. 현재 ‘코오롱스포츠’와 ‘럭키슈에뜨’ 등에 이어 ‘쿠론’ 등 순차적으로 자사 브랜드를 입점시켜 나가며 규모를 키우고 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 중고 거래에 관심이 커지는 추세를 반영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설명이다.

한섬·코오롱Fnc·삼성물산·신세계인터내셔날·LF 등 한국 패션 대기업들의 온라인 몰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확산으로 쇼핑의 무게 추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기운 것이 배경이다. 각 사의 매출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다양한 전략을 앞세워 온라인 고객 모시기에 나섰다.
한섬, 500억원 들여 패션 전용 물류센터 구축“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온라인 쇼핑이 하나의 소비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만큼 패션 기업들 또한 온라인 몰 성장 없이 매출 상승을 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젊은 고객들은 온라인 거래를 더 편하게 받아들인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패션 대기업들은 온라인 부문 매출의 성장세이 힘입어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호실적을 거뒀다.

한섬이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스마트 허브 e비즈’ 구축에 나선 이면에도 온라인 몰 매출의 빠른 성장세가 자리한다. 한섬의 전체 매출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9년 12%에서 지난해 21%로 두 배 가까이 확대됐다.

한섬은 더한섬닷컴·H패션몰에 이어 2020년 온라인 편집숍 EQL까지 론칭하는 등 온라인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온라인 패션 전용 물류센터 스마트 허브 e비즈에는 500억원이나 투자했다. 코오롱Fnc·삼성물산·신세계인터내셔날 등도 구체적인 수치는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한섬과 비슷한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몰이 가진 특징도 각양각색이다. 그동안 패션 대기업들의 온라인 몰은 단순히 자사의 브랜드들을 소개하는 성격이 강했다. 오프라인 매장을 온라인으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클릭 몇 번으로 쇼핑을 편하게 하는 것 외에는 큰 장점을 찾기 어려웠다.

이제는 달라졌다. 타 브랜드는 물론 다양한 콘텐츠까지 제공하는 등 하나의 온라인 몰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구축하고 있다.

삼성물산의 SSF샵은 ‘콘텐츠’를 통해 ‘온라인 모객’에 성공한 케이스다. 2021년의 거래액 증가율은 전년 대비 50%에 달한다.

SSF샵은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임직원들이 일상 속 패션을 소개하는 ‘브이로그’부터 SSF샵에서 가장 핫한 신상을 소개하는 ‘신상 파인더’ 등을 잇달아 선보였다. SSF샵의 콘텐츠는 특히 MZ세대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2022년 들어서는 SSF샵 내에 ‘세사패매거진’의 운영을 새롭게 시작했다. 최신 패션 트렌드 키워드를 소개하는 쇼핑 칼럼, 에디터의 심미안이 담긴 아이템을 추천하는 코너, 맛집 소개 등을 제공 중인데 반응이 심상치 않다는 후문이다. 이런 콘텐츠들을 앞세워 올해 역시 지난해에 이어 거래액 급증(1~9월 기준 40% 성장)을 이어 가고 있다.
LF몰, 6000여 개 브랜드 입점한 ‘종합 몰’ 탈바꿈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다. LF가 운영하는 LF몰이 대표적이다. 헤지스·닥스·질스튜어트뉴욕 등 LF 계열의 패션 브랜드만 팔지 않는다. 경쟁사라고 할 수 있는 신세계인터내셔날·삼성물산 등의 자체 브랜드나 독점 수입하는 제품 등도 입점시켰다.

또 리빙 제품과 에르메스·샤넬·롤렉스·구찌 등 고가 명품을 입점시키는 등 패션 뷰티를 넘어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전문 쇼핑몰로 도약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현재 LF몰에서 판매 중인 브랜드 수는 6000개가 넘는다.

이색적인 상품도 선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안전 자산인 금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LF몰은 목걸이·반지·골드바·순금카드 등 한국금거래소의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특히 11.25g의 3돈 골드바 제품은 재테크 목적뿐만 아니라 선물용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에스아이빌리지는 오프라인에서 갈고닦은 상품 기획(MD)의 경쟁력을 온라인에 접목해 성공한 사례다. 에스아이빌리지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운영하는 오프라인 편집숍 ‘분더샵’의 DNA를 ‘셀렉트449’라는 이름의 온라인 편집숍으로 고스란히 이양했다.

분더샵은 한국에서 생소한 여러 명품 브랜드들을 선제적으로 소개하며 오프라인 편집숍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2018년 말 에스아이빌리지 내에 자체 운영을 시작한 온라인 편집숍 셀렉트449는 명품 대신 젊고 감각적인 신진 디자이너들의 브랜드를 발굴해 소개하며 입소문이 났다.

셀렉트449가 좋은 반응을 얻자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입점 브랜드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현재는 패션뿐만 아니라 뷰티·리빙 브랜드와 고가의 미술품, 음향 가전, 펫 용품까지 다양한 카테고리를 아우르며 총 300여 개의 브랜드를 입점시켜 운영하고 있다.

한섬과 코오롱Fnc도 브랜드 입점을 확대하고 다양한 프로모션 제공을 앞세워 계속해 온라인 몰의 규모를 키워 나가고 있다.

패션업계의 온라인 몰 비율은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패션 시장 규모는 약 48조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무난하게 5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의 구매 경험이 쌓인 것이 전망을 밝게 하는 요인이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의류 등을 구매할 때 사이즈 선택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제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온라인 구매를 여러 차례 경험하며 자신의 사이즈를 자연히 파악했다”며 “게다가 패션 기업들이 온라인 몰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세일 혜택까지 제공하는 만큼 시장 전망이 밝다”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