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미디어텍 소속 232명, KBS 등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
“직고용·임금 차액 238억원 배상도”

[법알못 판례 읽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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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방송 제작 과정에서 자회사인 KBS미디어텍 소속 노동자들을 투입해 일하도록 한 것은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해당 판결이 뒤집히지 않으면 KBS는 이들 자회사 직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 KBS미디어텍 노동자들에게 KBS 정규직이었으면 더 받을 수 있었던 임금까지 손해 배상금으로 지급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법원이 불법 파견 사건을 두고 원청(KBS)과 하청(KBS미디어텍)의 공동 불법 행위라고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계속된 불법 파견 논란, 결국 법정 분쟁으로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3부(재판장 홍기찬)는 2022년 9월 23일 KBS미디어텍 노동자 232명이 KBS와 KBS미디어텍을 상대로 청구한 ‘근로에 관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KBS에 “불법 파견에 해당하는 KBS미디어텍 노동자들을 파견 근로 2년을 경과한 날로부터 직접 고용하라”고 명령했다.

KBS미디어텍은 KBS의 방송 제작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2009년 설립됐다. 뉴스 진행, 뉴스 영상 편집, 스포츠 중계, 방송 차량(SNG밴) 운용, 오디오 녹음, 보도 컴퓨터그래픽(CG) 등 다양한 방송 제작 업무를 맡고 있다.

모회사인 KBS와는 방송 제작 업무 위탁 계약을 한 관계지만 KBS 측이 업무에 깊숙이 관여하는 일이 적지 않다 보니 불법 파견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파견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2년 이상 파견 노동자로 일한 직원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

이 문제가 법적 분쟁으로 불거진 것은 2019년이다. KBS미디어텍 노동자들은 그해 6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남부지청에 자신들의 업무 형태가 불법 파견인지를 판단해 달라는 내용의 근로 감독 청원을 넣었다.

당시 남부지청은 △뉴스 진행 △뉴스 영상 편집 △스포츠 중계 △SNG밴 운용 △오디오 녹음 △보도 CG △편성 CG △영상 이펙트(NLE) 등을 담당하는 노동자 192명을 파견 노동자로 인정하고 KBS 측에 이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시정 지시를 내렸다. 특수 영상 제작과 사운드 디자인 업무 담당자들에 대해선 “파견 관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KBS는 이들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는 대신 그해 9월 ‘특정직’이란 별도 무기 계약직으로 채용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고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비동의 확인서를 낸 세 명은 특정직 고용에서 제외됐다.

KBS미디어텍 노동자들은 ‘직접 고용’을 주장하며 소송전을 시작했다. 이들은 “KBS 정규직 노동자와 차별되는 임금을 받아 왔기 때문에 파견법상 ‘차별 금지 의무’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하며 KBS에 그동안 발생한 임금 차액 약 230억원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KBS, 수시로 업무 지시”

재판부는 사운드 디자인 담당자들을 제외한 원고 상당수가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노동청 근로 감독 당시 파견 관계로 인정받지 못했던 특수 영상 제작 노동자들까지도 불법 파견으로 봤다.

재판부는 대표적 업무인 ‘뉴스 진행’에 대해서는 “KBS미디어텍 노동자들은 보도 정보 시스템 계정을 부여받았고 방송 시간이 임박해서는 구두나 카카오톡으로 수시로 수정 지시를 받았다”며 “회의 때도 KBS 노동자들과 함께 참석했고 카카오톡 대화방에도 포함돼 있으며 휴일 근로를 분담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KBS 뉴스 진행 과정에 KBS미디어텍 노동자들이 편입돼 있다고도 봤다. 재판부는 “(KBS미디어텍 노동자들은) KBS 정규직 노동자의 관리 감독 아래 업무 수행 재량이 거의 없었다”며 “취재 기자들이 취재를 마치면 KBS미디어텍 노동자들이 큐시트‧자막‧예고를 작성하고 그 후 최종적으로 뉴스가 방송되는 등 제작 과정 전체가 연동돼 있기 때문에 역할별로 업무가 독립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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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손해 배상 불가피

법원은 불법 파견 상태로 인정받은 KBS미디어텍 노동자들이 ‘원래 KBS 소속이라면 받았어야 할 임금’ 총액에서 ‘KBS 미디어텍에서 실제로 받은 임금’을 뺀 금액을 손해 배상 받아야 한다는 판결도 내놓았다. KBS는 물론 KBS미디어텍도 손해 배상금을 지급할 의무를 공동으로 짊어진다.

손해배상금은 10년간 발생한 임금 차액을 바탕으로 산정하도록 했다. 3년 치가 적정하다고 봤던 KBS와 KBS미디어텍으로선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을 지출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이들 회사는 “불법 파견 관련 채권은 임금 채권이기 때문에 소멸 시효는 3년”이라고 주장해 왔다. 재판부는 손해 배상금 산정과 관련해 “파견법 위반이라는 불법 행위에 대한 손해 배상이기 때문에 임금 채권과 다르게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손해 배상의 범위(임금)와 관련된 ‘비교 대상’ 노동자는 피고 측이 제시한 ‘7직급’으로 인정했다. 원고 노동자들은 ‘4직급’을 비교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따라 원고 중 KBS 7직급보다 많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손해 배상 청구는 일부 기각됐다.

재판부는 “원고와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KBS) 직원을 찾기 어렵다”며 “KBS와 KBS미디어텍은 채용 방식과 절차가 다르고 책임 영역에서도 차이가 존재한다”고 했다.

원고 측 대리를 맡은 류재율 법무법인 중심 변호사는 “불법 파견 사건에서 하청 업체와 원청 업체 모두 공동 불법 행위자로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은 최초의 사례”라며 “상당한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돋보기]

포스코까지 번진 불법 파견 분쟁…기업들 ‘초긴장’

산업계에선 불법 파견 여부를 두고 벌어지는 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이 과정에서 사측이 패소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기업들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이흥구 대법관)는 2022년 7월 28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협력사 직원 59명이 포스코를 상대로 낸 노동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포스코에는 원고 직원들을 직접 고용할 것을 명령했다.

이들 원고 중 15명은 2011년, 44명은 2016년 “원청인 포스코가 직접 지휘‧명령을 했기 때문에 직접 고용 의무가 있다”며 이 같은 소송을 제기했다. 포스코는 1심에선 승소했지만 2심에서 재판부가 원고 직원들의 고용 형태를 불법 파견으로 인정하면서 판결이 뒤집혔다.

대법원에서도 이 같은 판단이 그대로 유지됐다. 대법원은 원고들이 포스코 작업 표준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제품 생산 조업 체계가 전산 관리 시스템(MES)으로 관리되는 점 등을 근거로 원고와 피고를 파견 관계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포스코에 앞서 2021년 7월 현대위아와 하청 노동자들 간 벌어진 지위 확인 소송에서도 노동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현대위아는 1심과 2심에서도 승소하지 못한 채 패소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 밖에 삼성전자·현대자동차·기아·현대제철·한국GM 등이 불법 파견 관련 2심에서 패소해 현재 상고심을 진행하고 있다.

법원은 이들 기업 모두 사내 하청(도급)이라고 주장했던 협력사 노동자들이 원청의 지휘‧명령을 받아 일한 파견 근로를 했다고 봤다. 파견법은 경비와 청소 등 32개 업종에만 파견 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제조업에선 파견 근로가 금지돼 있다. 만약 제조 업체의 도급이 파견이라고 인정되면 사측은 해당 노동자 중 2년 이상 일한 사람을 모두 직접 고용해야 한다.

다만 판결이 뒤집혀 도급 관계가 인정된 사례도 나왔기 때문에 불법 파견 소송에서 무조건 하청 노동자 측이 승소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분위기다.

광주고등법원 민사2부는 2022년 9월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사무국장으로 일하다 퇴직한 A 씨가 파견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판결에 불복해 산업안전보건공단 측이 제기한 항소심에서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A 씨를 파견 노동자가 아닌 하도급 노동자로 본 것이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