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피의 일족, 합스부르크가…명화로 알아보는 650년의 흥망성쇠
[서평]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나카노 교코 지음 | 이유라 역 | 한경arte | 1만6000
‘무서운 그림’ 시리즈로 유명한 나카노 교코가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시리즈로 돌아왔다. 명화를 통해 유럽 왕조의 역사를 소개해 줄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시리즈는 총 5권으로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명화로 읽는 부르봉 역사 △명화로 읽는 로마노프 역사 △명화로 읽는 잉글랜드 역사 △명화로 읽는 프로이센 역사로 구성될 예정이다. 그중 첫 책이 바로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다.
스위스의 보잘것없는 호족에서 급부상해 유럽을 세계사의 중심으로 만든 합스부르크 가문은 열강의 세력 균형에 의해 우연히 굴러들어 온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를 계기로 650여 년에 걸쳐 긴 왕조를 유지해 왔다. 그 긴 시간 동안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를 독점하다시피 하며 유럽 중심부에 자리 잡고 주변 국가들과 적극적인 혼인 관계를 맺으면서 그물 모양으로 영토를 확장해 나간 합스부르크 왕조는 유럽사의 핵심이자 기반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합스부르크의 역사를 알면 유럽사의 흐름을 자연스레 알 수 있다.
또한 긴 역사를 가진 만큼 합스부르크 가문에는 매력적인 인물이 다수 존재한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 열중한 황제, 오로지 사랑 하나만 바라봤던 왕비, 정치에는 관심 없이 연금술에 빠져 있던 왕,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영웅의 아들, 이국의 땅에서 기요틴의 이슬이 된 왕비…. 가혹한 운명에 맞서, 또 운명에 따라 조용히 사라져 간 주인공들의 면면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들은 신에게 선택받은 특별한 존재인 자신들의 고귀한 푸른 피를 자랑스러워했다. 다섯 종교와 열두 민족을 수 세기에 걸쳐 통솔하며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자리를 독점하다시피했다는 자신감이 이를 뒷받침했다. 합스부르크의 지배권은 지금의 오스트리아·독일·스페인·이탈리아·벨기에·네덜란드·체코·폴란드·헝가리·루마니아·포르투갈·브라질·멕시코·캘리포니아·인도네시아까지 미치고 있었다.
한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의 군주를 겸한 사례도 합스부르크가였다. 카를 5세는 유럽 역사상 가장 많은 무려 70가지 이상의 직함을 가졌다. 매우 강대한 이 일족의 기원은 의외로 오스트리아도 독일도 아닌 10세기 말쯤 스위스 북동부의 시골 구석에서 등장한 약소 호족이다.
그 초석을 다진 것은 13세기 루돌프 1세에 의해서였다. 당시 아직 가난한 시골 호족이던 합스부르크 백작 루돌프에게 운명의 전환점이라고 할 만한 큰 기회가 왔다. 바로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였다. 이 자리는 다른 제후들이 그를 꼭두각시로 삼으려는 목적으로 추대한 것이었지만 루돌프 1세는 대관식을 치르고 5년 뒤 전쟁을 일으켰다. 그는 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보헤미아를 손안에 넣고 곧이어 오스트리아 일대도 자신의 영지로 삼았으며 스위스 산속에서 오스트리아로 본거지를 옮겼다. 그 뒤 루돌프 1세는 오직 합스부르크 왕조를 넓혀 나가고 지키는 것만을 첫째 목표로 삼았다.
이후 15세기 말 합스부르크가가 배출한 영웅 막시밀리안 1세가 등장한다. ‘중세 최후의 기사’라는 칭호를 얻었던 그는 항상 최전선에서 싸우며 영토를 부르고뉴·에스파냐·헝가리까지 확장하고 국호도 ‘독일 국민의 신성로마제국’으로 바꿨다. 고대 로마제국을 재건하기보다 독일어권의 합스부르크 왕조를 강화하는 데 힘쓰며 실제로 유럽에서 손꼽히는 명문가로 끌어올렸다.
또한 막시밀리안 1세는 혼인 외교를 중시했다. 이를 계기로 “전쟁은 다른 이들에게 맡겨라.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는 유명한 가훈이 탄생했다고 한다.
저자는 13세기 루돌프 1세부터 20세기 프란츠 요제프까지 합스부르크를 대표하는 인물과 관련된 12점의 명화와 그와 연관된 다수의 명화들을 함께 소개하면서 명화 속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그가 역사에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 시대적 배경과 일화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히 나카노 교코의 현장감이 돋보이는 묘사는 소설의 한 장면 혹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한순간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또한 이 책에서 소개하는 명화는 마네와 벨라스케스 같이 친숙한 거장 외에도 유럽이 사랑한 독일의 국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 역사화로 유명한 프란시스코 프라디야, 최초의 초현실주의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까지 작품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어 유익하다.
명쾌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 내는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유럽사의 흐름을 익힐 수 있다. 역사와 미술이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도 없앨 수 있다.
노민정 한경BP 출판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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