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의 대우에 순응보다 내 건강한 경계를 지키고 상처받지 않는 소통 시도해야

[안주연의 다시, 연결]
안주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주연의 다시, 연결] “상사가 저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Q. 경기도 동탄에서 근무 중인 미혜(가명, 33세)입니다. 이 회사는 둘째 직장입니다. 경력직으로 이직한 지 2개월 됐습니다. 다만 경력직이어도 제가 해 본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거의 신입처럼 배워야 하는 상황입니다. 제 위로는 사수 한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어보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틱틱 대고 핀잔을 주는 것 같습니다. 회의할 때도 매번 제 의견만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업무 중에도 수시로 전화를 걸거나, 한 시간 이상 말씀을 거셔서 실제 일할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함에도, 제가 빠르게 일처리를 못한다고 불평합니다.

이전 회사에서는 상사들이 퇴사를 말릴 정도로 사이가 좋았고 능력도 인정받았습니다. 지금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졌는지 일하면서 살이 많이 빠졌고 우울 증상을 겪고 있습니다. 사수에게 고민을 토로했지만 ‘나 그렇게 속 좁은 사람 아니’라고 말하고 행동은 동일합니다. 스트레스의 원인인 그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기 전까지는 제 스트레스도 계속될 것 같아 치료를 통해서라도 위안을 받고 싶습니다.
A. 미혜 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사연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미혜 님의 편지를 보면서 새로운 업무로 이직한 직장인의 적응 문제, 호의적이지 않고 마이크로 매니징(팀원들의 업무 세부 사항까지 참견하고 모든 것에 사사건건 참견하는 것)하는 상사와의 소통·조율 문제 등 만만치 않은 두 가지 어려움을 동시에 겪고 있는 것으로 보여 걱정됩니다. 회복과 문제 해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통해 만난 미혜 님은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하며 조용하지만 필요한 소통은 하는, 외유내강형 직장인입니다. 전 직장에서 신입 사원으로서 무난히 적응했고 어려운 일은 팀장과 상의해 가며 잘 지내오셨습니다. 이사로 인한 퇴사 시 상사들이 퇴사를 말리고 앞으로의 진로를 함께 고민하기도 했다니 미혜 님이 얼마나 아낌과 신뢰를 받는 구성원이었는지 느껴집니다.

그런 미혜 님이 이직 두 달 만에 우울과 피로감을 느낀다니 감당하기 어려운 큰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은 회사의 이직자 온 보딩(적응)과 교육에 대한 시스템이 미비하고 이를 거의 혼자 담당하는 사수의 리더십과 의사 소통 방식에 큰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직 후 적응은 어떤 면에서는 신입 사원의 회사 적응보다 더 어려울 수 있어요. 이직한 회사의 낯선 분위기와 업무에 적응해야 하는데 신입 사원 때처럼 동기들과 함께하는 경우도 적고 서툴러서 그렇다는 이해도 받기 어렵거든요. 업무 관련 교육과 조직 적응에 대한 지원도 신입 사원 때보다 짧고 체계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직 당사자 또한 경력직이니 어서 적응해 한 사람의 몫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현재 사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비효율적이고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미혜 님의 자신감을 심하게 깎아 내리고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경력직이라고 해도 새로운 업무를 할 때는 긴장도 되고 실수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사수가 적절한 업무 교육과 심리적 안전을 제공하지 않고 실수에 대해 ‘신입도 아니면서 왜 그러느냐’라고 핀잔을 준다면 미혜 님은 업무 파악을 위한 질문조차 하기 어려워지고 맙니다. 그리고 사수는 업무 지시 때 사소한 것까지 지적하며 본인의 불안을 하급자에게 투사하는 마이크로 매니징 타입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상사는 본인 또한 불안하기 때문에 일의 구조나 지시의 우선순위를 정해 체계적으로 전달하지 못합니다.

하급자도 산발적인 지시를 수행하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업무를 파악하기 힘들어 일의 재미나 보람이 떨어집니다. 여기에 상사의 불안과 짜증도 소화해야 하다 보니 감정 노동도 가중됩니다.

미혜 님은 사교적이지만 낯을 가리고 좋지 않은 말을 들으면 계속 새기게 되는 편이라고 했셨습니다. 아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과 부정적인 피드백의 과한 부분을 거르고 소화하는 것에 대한 불안도가 조금 높은 것 같습니다. 지금의 사수는 미혜 님이 취약한 부분을 파악하고 적응할 수 있게 지지해 주기는커녕 본인 내키는 대로 지시하고 지적하며 회사 적응을 더 힘들게 만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마이크로 매니징과 부정적인 피드백 뒤에 있는 상사의 불안과 기복이 미혜 님 내면의 불안마저 자극해 자율신경계 불균형·초조·우울·분노 등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닌지도 우려됩니다.
[안주연의 다시, 연결] “상사가 저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안주연의 다시, 연결] “상사가 저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미혜 님에게는 저력이 있습니다. 내향적이지만 필요한 이야기는 하는 분으로, 친해진 친구나 동료와 의미 있는 소통을 하고 관계를 깊게 맺는 힘이 있어요. 그래서 힘든 와중에 용기를 내 사수에게 “실수가 많아서 제가 싫으신지”를 물어본 것 같습니다. 질문이 좀 직접적이지만 사수가 불친절한 것을 넘어 ‘나를 싫어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미혜 님의 심정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팀원을 돕고 싶어 하는 사수가 이 질문을 받았다면 ‘어, 그렇게 느꼈나. 나는 싫어하지 않는다. 업무 지시나 나와의 소통 중에 힘든 대목이 있는가’ 등을 물으면서 팀원의 마음을 살피고 소통 방식을 조율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사수는 ‘나 그렇게 속 좁은 사람 아니다’고 미혜 님이 표현한 느낌을 부정하면서 ‘기운 내라’라고 덧붙이는데, 감정 수용 없는 피상적 격려는 하급자에게는 자신이 어떻게 대하든 원망하지 말고 밝게 생활하라는 종용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소통 시도마저 묵살되니 미혜 님은 이 관계에 개선할 여지가 없다고 여겨져 더 우울해졌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선 미혜 님은 올해 결혼·이사·이직·상사와의 갈등과 같은 많은 생활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남편과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효과적인 스트레스 해소 양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짧은 시기에 많은 변화를 겪다 보니 스트레스와 신체적 질병에 취약해졌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미 살이 많이 빠지고 두통과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고 사수와의 갈등에 대해서도 비관적으로 전망하며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꼭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 진단받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 늦어도 3개월 내에 우울과 신체 증상이 호전되고 좀 더 자신감 있게 생활하고 건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니 우선 치료를 시작하고 건강 회복에 집중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이 나아진 후, 회사 생활에서 미혜님의 소통능력을 조금씩 발휘해보면 어떨까요.

사수 귀에 들어갈 리스크는 있지만 동료들 중 대화가 잘 통하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지금의 어려움을 토로해 보면 좋겠습니다. 일도 많고 다들 바쁘다고 하지만 저는 이미 동료들이 미혜 님을 안쓰러워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료들의 지지나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이 사수에게 대처하는 노하우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사수와 계속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도 같은 팀 동료들과의 소통과 교류가 조금의 힘이 돼 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수에게는 업무 지시 및 소통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몇 가지를 요청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우선 미혜 님도 실수를 피하고 싶고 피드백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성향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강한 피드백을 받는 것이 힘들고 업무 능력 향상에도 역효과이니 부드럽게 피드백해 주도록 부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파악하기 어렵고 실수가 잦은 업무에 대해서는 완성된 과거 샘플을 여러 개 보여주거나 체계적인 교육을 해달라고 요청하면 어떨까요. 마지막으로 며칠에 한 번꼴로 업무 관련 확인과 질문, 피드백을 하는 중간 보고 시간을 정함으로써 너무 잦았던 업무 지시나 통화 빈도를 조절해 보면 좋겠습니다.

미혜 님, 보내준 편지의 마지막 ‘자신이 그만두거나 사수가 그만두어야 스트레스가 끝날 것 같다’라는 말에 담긴 고통과 거기에 담긴 위기감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꼭 드리고 싶은 말은 본인이 이 환경을 버티는 것과 상사에게 받는 대우에 순응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미혜 님은 그런 대우를 받아도 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건강을 좀 회복한 후 자신의 건강한 경계를 지키고 상처받지 않는 소통을 하기 위한 제안과 시도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내가 그만두거나 사수가 그만두거나’라는 두 극단의 선택 사이에 작은 상황들을 쪼개 ‘일하는 시간만‘, ‘소통하는 시간만’, ‘명확한 표현만’ 등으로 작은 선택지를 만들어 가기를 권유 드립니다.
※한경비즈니스는 ‘안주연의 다시, 연결’을 연재하며 독자에게 상담 편지를 받고자 합니다. 직장인 마음 상담을 주제로 다양한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 직접 답하겠습니다. poof34@hankyung.com으로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