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으로 세계 각국 급격한 금리 인상
자금 빠져 나가고 부동산 가격 거품 빠지면서 PF 대출 시장에 충격
레고랜드 부도는 트리거, 투자자 신뢰 하락
유동성 공급 지원은 흑자 기업의 일시적 자금 경색 완화 지원이 돼야 효과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가 트리거가 돼 발생한 금융 시장의 불안과 혼란이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올해 5월 오픈한 레고랜드는 2010년 개발 계획을 공개한 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12년이 걸려 문을 열었다. 레고랜드는 시작부터 철저한 경제성 분석을 외면한 정치적 결정이었다. 합작사인 영국 멀린그룹에 100년간 시유지를 무상 임대하는 조건 등 일방적으로 불리한 사업 구조였다. 설상가상으로 건설 현장에서 선사시대 유적지가 발견돼 공사가 변경되는 등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재정난에 시달리던 강원중도개발공사(GJC)가 205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했다.
사업성 논란이 있었음에도 강원도의 지급 보증을 믿고 신용평가사들은 ‘A1’ 등급을 매겼지만 GJC의 회생 신청 절차를 밟겠다는 발표로 인해 ‘C’ 등급으로 강등됐다. 지방자치단체 보증 채권이 초유의 지급 불능 사태에 빠지면서 금융 시장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레고랜드 부도가 터지기 전부터 금융 시장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급격한 금리 인상을 단행함에 따라 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폭등했던 부동산 가격의 거품이 빠지면서 그동안 증가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강원도의 디폴트가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심리적 불안감으로 확산되면서 PF 시장은 물론 건설업 전체의 자금 경색 위기를 초래했다. 그 나비 효과로 인해 단기 자금 시장은 물론 공사채와 회사채 등 장기 자금 시장까지 요동치고 있다.
투자자들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채권 시장은 자금 조달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어음의 경우 3~4%였던 금리가 7%로 2배 증가했음에도 차환 발행이 어려워 증권사와 운용사가 떠안고 손실을 줄이기 위해 매물로 내놓고 다시 금리가 상승하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국채와 동일한 ‘AAA’ 등급의 한전채(한국전력공사 채권) 규모가 23조원이 넘고 최근 금리가 약 6%까지 상승했다. 상대적으로 우량한 채권이 쏟아지면 회사채 입지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고 기업들의 조달 비용은 폭등하게 된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자금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PF와 회사채를 버틸 수 있는 규모이지만 PF 대출 잔액이 112조원을 넘고 6월 말 기준 한국 기업의 단기 차입금이 532조원으로 작년 말 대비 11.36% 급증했다. 유동성 위기 대응 시에는 선제적이고 신속하게 그리고 충분하게 해야 한다는 원칙을 그다지 충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을 불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유동성은 경쟁력 없는 한계 기업의 생명 연장이 아니라 흑자 기업의 일시적 자금 경색을 완화해 주도록 선별적으로 지원돼야 장기적 효과가 담보된다. 무분별한 지원의 폐해는 과거에 충분히 목격한 바 있다.
작금의 인플레이션은 공급 측 요인이 큰데 금리를 상승시켜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은 경기 위축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 퇴치와 자본 유출 방지를 위해 힘겹게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를 쫓아가면서 동시에 유동성 공급을 지원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 사실이더라도 시장은 이중적 잣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만약 투자자들의 심리가 조기 회복되지 못하고 신용 등급이 양호한 기업까지 자금난에 허덕이게 되면 정부와 한국은행의 정책 우선순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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