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새 대표 산업으로 떠올라…LG에너지솔루션·LG화학·삼성SDI·포스코케미칼 등 질주

배터리업계가 나 홀로 질주를 이어 가고 있다. 반도체와 정보기술(IT) 등 한국 증시를 떠받치던 기술 기업의 업황에는 먹구름이 끼었지만 배터리 기업들은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하는 중이다.

주가도 고공 행진 중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 한 달 새 주요 배터리 기업과 소재 기업들의 주가는 약 30% 급등했다. 한 달 새 코스피지수는 6% 남짓 올랐는데 LG에너지솔루션은 28%, 삼성SDI는 30% 상승했다.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면서 배터리 출하량이 증가하고 강달러로 매출이 늘어난 영향이다. 수출 비중이 절대적인 배터리업계의 특성상 달러화가 고평가되면 매출도 자연스레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시행되면서 ‘중국 리스크’의 반사 이익을 볼 수 있고 미국 내 생산 기지를 갖춘 만큼 한국 배터리 기업에는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정용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LG에너지솔루션에 대해 “미국 IRA 법안에 이어 유럽 원자재법(RMA) 법안까지 준비되면서 주요 국가들의 공급망 내재화와 중국 제품 배제가 본격화되고 있다”며 “선제적인 밸류 체인 투자를 통해 현지화율이 높아 선진국 정책 기조에 최대 수혜를 볼 전망”이라고 분석했다.LG·삼성 나란히 최대 실적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각각 분기 기준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3분기 매출이 7조6482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해 90% 늘었다. 영업이익은 5219억원으로 3728억원의 손실을 본 전년 동기 대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전기차 배터리 공급량이 증가한 영향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지난 9월 말 기준 수주 잔액은 370조원으로 지난해 말 260조원 대비 110조원이 늘었다. 북미 비율이 70%에 달한다. 생산 시설 투자에 집중해 북미 지역에서 생산하는 비율을 올해 7%에서 2025년 45%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4분기 매출에도 자신감을 보이며 연매출 목표를 22조원에서 25조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10월 26일 실적 발표회에서 “하반기 신모델 출시와 함께 소비자 대기 수요도 견조하다”며 “올 4분기도 3분기 대비 10% 내외의 성장이 예상되고 2024년에도 매출과 손익 모두 올해보다 의미 있는 성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삼성SDI는 매출 5조3680억원, 영업이익 565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6.1%, 51.5% 증가했다. 삼성SDI가 매출 5조원, 영업이익 5000억원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배터리 사업을 맡고 있는 에너지 부문이 실적 개선을 견인했다. 에너지 부문은 매출 4조8340억원, 영업이익 4848억원, 영업이익률 10%의 성적을 냈다.

특히 중대형 전지가 효자 노릇을 했다. 고급 전기차 수요가 꾸준히 높아지는 가운데 프리미엄 배터리 P5(Gen.5) 판매가 확대됐다. P5는 삼성SDI가 지난해 출시한 하이니켈 배터리로, 1회 충전 시 주행 거리가 600km가 넘는다. 현재 BMW 5세대 전기차에 적용되고 있다.

삼성SDI는 중대형 전지의 전통적 성수기 효과를 바탕으로 올해 4분기에도 성장세를 이어 갈 것으로 예측했다.

손미카엘 삼성SDI 중대형전지사업부 전략마케팅팀장은 “IRA는 미국의 친환경 정책 가속화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친환경차 세제 혜택에서 핵심 광물 조건은 2023년부터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 광물을 활용해 충족할 것”이라고 말했다.현대차·SK 제치고 시총 2위 된 LG그룹배터리 기업이 순항하자 2차전지 소재 기업들도 덩달아 웃었다. LG화학은 3분기 첨단 소재 부문의 영업이익 4160억원 중 70%를 양극재에서 거둬들였다. LG에너지솔루션의 성장에 힘입어 배터리 소재 실적이 뛰면서 석유화학 사업 부진에도 호실적을 거뒀다.

10월 31일 실적 발표 이후 다음 날인 11월 1일 LG화학의 주가는 장중 최고 11%까지 급등했다. 주가 상승 기간을 한 달로 넓히면 LG에너지솔루션과 마찬가지로 약 30% 뛰었다.

시가 총액 2위인 LG에너지솔루션과 6위 LG화학에 힘입어 그룹의 시총 순위도 뒤집혔다. 기업 분석 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70개 대기업집단의 상장사 303개 시가 총액 변동 내용을 조사한 결과 SK와 LG그룹의 순위가 바뀌었다. 연초(1월 3일) 4위였던 LG그룹은 SK그룹과 현대차그룹을 밀어내고 시총 2위에 등극(10월 28일 기준)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LG그룹의 시총 규모는 연초 120조8427억원이었지만 80.5% 증가한 218조1289억원이 됐다.

포스코케미칼도 3분기 창립 이후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양극재를 포함한 2차전지 소재의 매출 비율이 69%다. 포스코케미칼이 배터리 소재 사업에 뛰어든 것은 2018년이다. 기간은 짧지만 배터리 시장이 성장하면서 9개 분기 연속으로 사상 최대 매출을 경신했다. 현재는 북미 지역에 설비 투자를 통해 생산 능력을 높이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사 ‘얼티엄캠’은 캐나다 퀘벡 주에 양극재 합작 공장 설립 작업을 시작한 상태다. 포스코케미칼의 주가 역시 한 달 새 29% 상승했다.

정부도 2차전지 기업에 대한 지원을 본격화하며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50조원의 투자를 지원해 글로벌 배터리 점유율 40%를 달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배터리 자원 개발부터 재활용까지 민·관이 협력하는 ‘배터리 얼라이언스’를 출범시키고 미국 IRA 법 등을 기회로 삼아 세계 배터리 1위인 중국을 넘겠다는 포석이다. 현재 세계 배터리 시장은 중국이 전체 판매 실적의 56.4%(상반기 기준)를 차지하며 1위를 달리고 있다. 한국은 25.8%의 점유율로 2위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1월 1일 민·관이 함께 배터리 핵심 광물을 확보하는 배터리 얼라이언스를 출범시킨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이 호주·캐나다·칠레 등에서 핵심 광물 확보를 추진했지만 IRA 등의 영향으로 개별 기업 단위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얼라이언스는 광물 지도 작성, 프로젝트 발굴, 정·제련 사업, 금융 지원 등 광물 확보 활동을 추진한다. 무역보험공사·수출입은행은 5년간 3조원 규모의 대출·보증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다음 달 ‘핵심 광물 확보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배터리 핵심 기술 개발을 위해 2030년까지 정부 연구·개발(R&D) 자금 1조원, 민간 19조5000억원 등 20조50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한 번 충전으로 800km를 달릴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는 한편 차세대 기술인 전고체 전지도 2026년 상용화한다는 목표다.

배터리업계는 2030년까지 한국 시설 투자에도 30조5000억원을 쏟아붓는다. 한국의 생산 능력을 지난해 39GWh에서 2025년 60GWh로 약 1.5배로 늘릴 계획이다. 1만6000명 이상의 전문 인력도 양성하기로 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25.8%인 글로벌 배터리 점유율을 40% 수준으로 끌어올려 세계 1위를 달성할 계획이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