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KT&G·SM에 주주 제안 잇따라
치고 빠지는 먹튀보다 장기 이익 추구가 최근 경향

[비즈니스 포커스]
이수만 SM 총괄 프로듀서가 제3회 세계문화산업포럼 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수만 SM 총괄 프로듀서가 제3회 세계문화산업포럼 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KT&G에 한국인삼공사(KGC) 부문을 인적 분할하고 분리 상장하라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회사 가치를 제고하고 글로벌 동종 기업 대비 저평가된 주가를 끌어올리라는 요구다.

이들 행동주의 펀드는 과거 삼성·SK·현대차를 겨냥한 엘리엇·소버린 등에서 연상되던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투자 기관들과 달리 기업 가치와 주주 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환경·사회·지배구조(ESG)와 장기 성장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KGC 인적 분할 후 분리 상장 요구

한국 자산 운용사인 안다자산운용은 11월 2일 KT&G에 KGC 인적 분할 상장 방안을 제안하는 공개 주주 서한을 발송했다. 안다자산운용은 “KT&G의 담배 사업 부문의 가치를 계산하면 약 5조5000억원”이라며 “현금성 자산을 고려하면 현재 KT&G의 시가 총액에는 KGC의 지분 가치가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KT&G의 인삼 사업 부문을 인적 분할해 KGC를 분할 상장하고 KGC 인삼 제품의 이미지를 리브랜딩하면 젊은 소비자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으로 외연을 크게 확장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글로벌 시장 규모가 약 70조원에 달하는 에너지 드링크 시장에 진출한다면 KGC 단독으로 2027년까지 매출 5조원, 기업 가치 18조원 수준의 회사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배당 성향 상향도 요구했다. 안다자산운용은 “KT&G가 별도기준으로 보유한 현금성 자산 2조2000억원 중 1조5000억원을 기존 주주 환원 정책에 더해 앞으로 3년에 걸쳐 연간 5000억원씩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사용하고 글로벌 동종 업체들의 평균 배당 성향에 맞춰 순수 배당 성향을 증대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담배 사업 부문에 대해서는 5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통해 2030년까지 궐련형 전자담배(HNB) 제품의 매출 비율을 100%까지 높여야 한다고 했다.
홍삼정 에브리타임 이미지컷. 사진=KGC인삼공사 제공
홍삼정 에브리타임 이미지컷. 사진=KGC인삼공사 제공
KGC를 인적 분할하고 분리 상장해 달라는 요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사모펀드(PEF) 플래시라이트캐피털파트너스(FCP)도 10월 25일 KT&G에 유사한 취지의 공개 주주 서한을 발송했다. 안다자산운용과 FCP 모두 단기 이익보다 장기적 가치 창출을 위해 재무적 목표와 ESG 목표를 혼합해 제시하고 있다.

FCP는 칼라일 한국지사를 이끌던 이상현 대표가 2020년 싱가포르에서 설립했고 기업 거버넌스 개선을 핵심 투자 전략으로 삼는 펀드다. KT&G의 지분 1% 정도(약 1000억원 규모)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FCP는 KT&G의 주가가 15년 전과 비슷한 수준이라면서 핵심 사업에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FCP는 KGC 인적 분할 후 분리 상장을 포함해 △HNB ‘릴’의 글로벌 전략 수립 △2조원 정도의 비핵심 사업 정리 △잉여 현금 주주 환원 △사외이사 선임 등을 제안했다. FCP는 주주 제안과 관련해 백복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여러 차례 면담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KT&G는 주주 제안 내용을 확인하고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11월 4일 3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을 결의했다고 공시했다. 주당 배당금은 전년 대비 200원 이상 증액한다는 계획이다. 주주 제안에 대한 방어로 주주 가치 제고에 나선 것이다.

KT&G는 지난해 11월 향후 3년간 약 1조7500억원 내외의 배당 실시와 1조원 내외의 자사주를 매입하는 총 2조7500억원 규모의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1차로 약 3500억원의 자사주를 매입하고, 5759억원 규모의 배당을 실시했다. 2021년 회계연도 기준 총 주주 환원 규모는 9242억원이며, 배당 성향은 58.9%에 달한다.

KT&G는 과거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칼 아이칸의 표적이 됐었다. 칼 아이칸은 2006년 스틸파트너스와 함께 KT&G 지분 6.6%를 확보해 경영권 분쟁을 벌이다가 주가가 상승하자 지분을 팔아 치웠다. 당시 1년 만에 1500억원에 달하는 차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주주 제안을 발송한 행동주의 펀드들의 요구가 2006년 주식 매집을 통해 KT&G의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던 칼 아이칸처럼 경영권 공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들의 보유 지분이 각각 1% 안팎으로 상대적으로 낮고 주주 제안 내용도 그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내용으로 경영권을 위협하기에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다만 국내외 기관투자가뿐만 아니라 소액 주주와의 연대 가능성도 시사한 상황이어서 2023년 3월 주주 총회 전까지 이들의 공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FCP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민연금을 포함한 다수 주주들과 소통을 꾀하겠다”고 밝히며 KT&G의 1·3대 주주인 국민연금(지분율 7.55%), IBK기업은행(6.93%)을 포함해 외국계 2대 주주인 퍼스트이글(7.12%) 등 대형 운용사들과의 연합 가능성을 시사했다.

현재 외국계 투자자가 보유한 KT&G의 지분을 모두 합하면 43%가 넘는다. 한국 사정에 정통하지 않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를 준용해 의사 결정을 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향후 표 대결이 이뤄진다면 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다.

“주주 가치 증대 가능성 ↑” 증시에선 호재

증권가에서는 행동주의 펀드가 경영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대체로 호재로 인식한다. 실제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 제안 이후 해당 기업의 주가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과거엔 행동주의 펀드가 단기 이익을 노리고 치고 빠지는 먹튀 세력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강했지만 ESG 이슈에 맞물려 경영진을 견제하는 세력이 다양해지고 장기적인 가치 창출에 초점을 두는 행동주의 캠페인도 확산되고 있어 이들의 영향력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추세다.

KT&G는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에서 주주 제안을 받으면서 2년여 만에 신고가를 썼다. FCP가 공개 주주 서한을 발송한 10월 25일 종가 기준 KT&G의 주가는 1.82% 오른 8만94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안다자산운용의 공개 주주 서한 소식이 전해진 11월 2일에는 2.28% 오른 9만4500원에 장을 마감했다. KT&G 주가가 9만원대에 진입한 것은 2020년 이후 2년만이다.

안다자산운용은 앞서 지난 9월 2일 공개 주주 서한을 통해 SK디스커버리가 SK케미칼 주식 약 92만 주를 공개 매수한다고 공시한 것을 두고 공개 매수 가격이 SK케미칼의 적정 주가(25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과도하게 낮은 수준이라면서 15만원으로 올릴 것을 요구했다. 이날 SK케미칼의 주가는 11% 넘게 급등했다.
KT&G가 독자 혁신 기술을 적용한 전자담배 '릴 에이블(AIBLE)'을 11월 16일 전국의 '릴 미니멀리움' 5개소와 전용 온라인 몰 '릴 스토어', 서울 편의점에 출시한다. 사진=KT&G 제공
KT&G가 독자 혁신 기술을 적용한 전자담배 '릴 에이블(AIBLE)'을 11월 16일 전국의 '릴 미니멀리움' 5개소와 전용 온라인 몰 '릴 스토어', 서울 편의점에 출시한다. 사진=KT&G 제공
SK그룹의 지주사인 SK(주)는 지난 8월 31일 2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에 나섰는데 이날 주가가 2.42% 올랐다. 가치 투자의 대가 이채원 의장이 이끄는 라이프자산운용이 지난 4월 보낸 공개 주주 서한에서 SK 주가의 저평가 원인으로 관습적 디스카운트와 주주 가치 제고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을 꼬집으며 “SK가 보유한 자사주의 10%에 해당하는 180만 주를 소각하라”고 요구한 데 화답한 것이다.

한국 행동주의 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3월부터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를 상대로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개인 회사인 라이크기획과의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공개 주주 서한을 여러 차례 보냈고 결국 SM이 백기를 들었다. 2000년부터 22년간 SM에서 라이크기획에 흘러간 돈을 합산해 보면 총 1486억원이다.

같은 기간 벌어들인 영업이익(4207억원)의 35%에 해당한다. SM이 올해 라이크기획에 지급한 라이선스 금액도 240억원에 달한다. SM이 9월 15일 라이크기획과의 프로듀싱 라이선스 계약의 조기 종료를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날 SM의 주가는 장중 20% 넘게 날아올랐다.10월 14일 계약 종료를 공식 선언하자 주가도 급등했다. 조기 종료 시점은 오는 12월 31일이다.


[돋보기]

“교보생명·어피니티 사례처럼 경영권 공격 세력 돌변하기도”

정부가 자본시장법, 상법 등을 개정해가며 사모펀드나 국민연금의 기업경영 참여를 촉진하는 상황에서 사모펀드 등의 지분 확대로 기업 경영권 방어에 비상이 걸렸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2011년 대비 2021년 자산 100대 기업 주요주주 지분 변동 조사’에 따르면 사모펀드나 국민연금이 보유한 대기업 지분은 지난 10년 평균 7.2%포인트 오른 21.6%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오너 지분은 43.2%에서 42.8%로 0.4%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사모펀드는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금융계열사를 매각할 때 이를 인수하거나 기업이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빠졌을 때 긴급 자금을 수혈해주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교보생명과 어피니티 컨소시엄과의 분쟁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초기에는 재무적 투자자로서 경영자에게 우호적이다가 이후 주주 간 계약을 빌미로 경영권을 위협한 사례도 나오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이 외국 기업사냥꾼들의 먹잇감이 되는 이유는 해외보다 취약한 경영권 방어 환경이 지적된다. 미국, 유럽, 일본 등과 달리 한국에서는 상법상 차등의결권, 포이즌 필(신주인수 선택권), 황금주 등 적극적 방어 수단을 활용할 수 없다.

차등의결권은 1주 1의결권 원칙의 예외를 허용하는 것으로, 창업주의 경영권을 보장하는 제도다. 포이즌 필은 경영권이 위협받는 경우 기존 주주들에게 회사 신주를 낮은 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는 콜 옵션을 부여해 인수 시도 자체를 저지할 수 있는 조항이다. 황금주는 단 1주만으로 주총 안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주식이다.

전경련이 2021년 기준 자산 상위 100대 기업(금융사 포함) 정관을 분석한 결과 경영권 방어 조항을 채택한 기업은 8곳에 불과했다. 도입한 방어 수단도 이사 해임 규정을 상법 특별결의 요건보다 조금 더 강화하거나 시차임기제 정도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시차임기제를 도입하면 이사진의 임기가 일시에 만료되는 것을 막을 수 있어 경영권 공격 세력이 주식 과반수 매집에 성공해도 경영권 확보를 지연시킬 수 있다.

전경련은 “한진칼이나 교보생명 사례처럼 지배구조에 일시적 균열이 발생했을 때 사모펀드들이 이를 틈 타 기업 지배권을 위협하고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준하는 방어 수단 확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