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한 전통에 젊은 감각 접목, ‘2019 패션 어워즈’ 4개 부문 상 받으며 ‘깜짝 영웅’

류서영의 명품이야기/보테가 베네타 ③
보테가 베네타의 부활을 이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리.
사진 출처 : GQ Brazil
보테가 베네타의 부활을 이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리. 사진 출처 : GQ Brazil
현재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를 이끄는 맨 앞에 두 그룹이 있다. 첫째는 베르나르 아르노가 이끄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이다. 2020년 매출이 440억 유로(약 61조8200억원)에 달한다. 둘째는 프랑수아 앙리 피노가 이끄는 케링그룹으로, 2020년 매출은 131억 유로(약 18조4000억원)였다. LVMH 그룹이 소유한 명품 브랜드는 루이비통·크리스찬 디올·펜디·에밀리오 푸치·지방시·겐조·마크 제이콥스·셀린느·태그 호이어·쇼메·불가리·로로피아나·티파니 등이다. 케링그룹은 구찌·보테가 베네타·생 로랑·알렉산더 맥퀸·발렌시아가·부쉐론·브리오니·스텔라 매카트니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케링그룹은 2001년 보테가 베네타 브랜드를 인수한 뒤 토머스 마이어를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했다. 그 뒤 보테가 베네타는 명품 브랜드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지켜 나갔다. 마이어는 위기의 보테가 베네타를 살리기 위해 미니멀한 콘셉트의 디자인 위주로 콘셉트를 바꿨다. 기존 액세서리 브랜드에서 여성복·남성복·향수 등으로 영역을 넓혀 나가면서 토털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다. 그의 베스트셀러 아이템은 ‘까바백(사각형의 양가죽으로 만든 조금 큰 사이즈의 토트백)’과 ‘놋백(어깨끈이나 손잡이가 없는 여자들이 손에 드는 작은 형태의 가방으로 다양한 잠금장치를 장식으로 사용)’을 손꼽을 수 있다.

그는 또 라 스쿠올라 델라 펠레테리아라는 가죽 제품 장인 양성 학교를 세우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17년간 보테가 베네타에서 일한 마이어는 몇 년 동안 매출이 저조해 2018년 5월 회사를 떠났다.
다니엘 리 영입 이후 보테가 베네타 매출 ‘껑충’
 2019년 선보인 버터 카프 파우치 (일명 만두백) 
사진 출처 : instagram  voguekorea
2019년 선보인 버터 카프 파우치 (일명 만두백) 사진 출처 : instagram voguekorea
마이어가 보테가 베네타를 떠난 뒤 2018년 7월 그를 이어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서른세 살의 다니엘 리다. 그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 칼리지 오브 디자인을 졸업한 영국 국적의 디자이너이다. 메종 마르지엘라·발렌시아가·DKNY에서 일했고 보테가 베네타에 합류하기 전에는 셀린느에서 여성복 경력을 쌓았다.

리가 셀린느에서 여성복 디자이너로 일하던 당시 LVMH의 셀린느 인수와 창립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어수선했던 상황에서 피비 빌로가 수석 디자이너에 임명됐다. 빌로가 이끄는 셀린느의 컬렉션은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큰 성공을 거두며 패션계에서 다시금 자리 잡게 되는 계기가 됐다. 리는 빌로를 보좌하면서 큰 공을 세우게 됐고 여성복을 다루는 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이렇다 할 두각을 보이지 않았던 무명 디자이너나 다름없던 리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18년 빌로가 셀린느를 떠나면서 리도 함께 보따리를 쌌다. 당시 추락을 이어 가던 케링그룹의 구찌 브랜드는 알렉산드로 미켈라가 부임하면서 완벽하게 부활했고 생 로랑 브랜드는 에디 슬리먼이 만들어 놓은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확고한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룹 내 2위를 유지하던 보테가 베네타가 문제였다. 심지어 생 로랑에도 밀리는 상황이 나타나면서 브랜드의 입지가 약해졌고 결국 17년간 일한 마이어를 해고하기까지 이르렀다. 보테가 베네타의 훌륭한 품질과 클래식한 상품 구성, 인트레치아토 기법은 그동안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소비자들에게 점차 올드함으로 여겨졌다. 케링그룹이 리를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를 낳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직을 맡아본 적이 없는 리를 선택한 것은 케링그룹으로서도 일종의 모험이었을 것이다.

리는 보테가 베네타에서 처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직을 맡았고 2019년 가을 컬렉션을 발표했다. 의상은 미관이 거칠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액세서리는 대히트했다. 부드러우면서 형태가 딱딱하지 않은 파우치 백은 가죽 백의 유행을 선도했고 네모난 발가락을 가진 펌프스와 샌들은 히트 아이템이 됐다. 그의 새로운 인트레치아토 기법 패턴(기존보다 넓고 굵은 형태의 꼬임)과 틀을 깬 형태의 가방(일명 만두백)과 신발은 대성공했고 뉴 보테가 베네타 시대를 열었다.

2021년 봄여름 ‘보테가 그린’으로 유명해진 초록을 브랜드의 상징 색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클래식한 보테가 베네타에 젊은 감각을 더해 새로운 느낌의 ‘뉴 보테가 베네타’를 만든 것이다. 첫 컬렉션을 발표한 해 영국 패션협회에서 주최하는 ‘2019 패션 어워즈’에서 올해의 디자이너 상을 비롯해 총 4개 부문의 상을 받으며 패션계의 깜짝 영웅이 됐다. 리가 발표한 파우치 백(일명 만두백)과 카세트백은 베스트 셀러 아이템이 됐고 2019년 보테가 베네타의 매출은 껑충 뛰어 올랐다.
다니엘 리 떠나자 “너무나 충격적 헤어짐” 평가
 2022년 나온 카세트 백 
사진 출처 : bottegaveneta.com
2022년 나온 카세트 백 사진 출처 : bottegaveneta.com
2021년 11월 리는 보테가 베네타를 떠난다고 공식 발표했다. 뉴욕 타임지는 “너무나 충격적인 헤어짐이다”라고 평가했다. 브랜드를 성공시킨 디자이너가 떠나기엔 재직 기간이 너무 짧았다. 보통 하우스 디자이너는 브랜드의 고유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잘 바꾸지 않는다. 더욱이 브랜드를 성공시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면 더욱 그렇다.

케링그룹은 공식 성명을 통해 리와 보테가 베네타의 작별은 공동의 결정이라고 발표했다. 보테가 베네타의 최고경영자(CEO) 레오 롱고네(Leo Rongone)는 “지난 3년간 리가 하우스에 보인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그는 50년의 전통을 가진 보테가 베네타를 존중하면서도 신선한 시각과 현대적인 감각을 하우스에 제공했습니다. 지난 3년간의 괄목할 만한 성장은 그의 크리에이티브의 성공을 증명합니다”라고 말했다.

리는 “보테가 베네타에서 경험한 시간은 제게 정말 놀라운 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엄청난 재능의 팀원들과 함께 일한 것에 감사하며 우리의 비전을 창조할 수 있게끔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 하우스가 써 내려가는 일부가 될 수 있어 진심으로 행복했습니다”라고 화답했다. 그는 버버리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옮겼다.

리의 후임으로 마티유 블라지가 결정됐다. 블라지는 ‘라프 시몬스’ 남성복으로 시작했지만 마르지엘라에서 여성복을 맡았고 셀린느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가 리와는 또 다른 보테가 베네타의 매력을 보여줄지 행보가 기대된다.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학과 교수